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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제니 Jun 27. 2021

우리 집 주소는 제니네, 우리 엄마 이름은 제니 엄마.

자립하지 못한 70대 엄마와 30대 딸

한 동네에서 40년 가까이 산 최여사는 나름대로 이 동네의 마당발이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의 외식이라곤 일요일에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이었다.

그러면 최여사는 단골 중화요릿집에 전화해서 이렇게 주문하곤 했다.


“어~ 나 제니 엄만데, 우리 집으로 짜장면 둘, 짬뽕 둘 보내줘요~”


또한 음식 하는 손이 큰 최여사는 식재료도 많이 주문하기 때문에 가정집임에도 불구하고 배달 서비스가 가능한 특권이 있었다.


“아저씨, 나 제니 엄마. 갈치가 오늘 물이 좋은가? 자반고등어랑 조기도 사야 하는데~”

“여보세요오~? 예~ 여기 제니네예요! 오이지 좀 하려고 하는데 오이 가격이 요즘 어떻게 해요~?”


채소가게에서 채소로만  번에 10 원어치도 사던 최여사의 스케일 때문에

 , 동네 시장 사람들은 최여사가 음식점 운영하는 사람인  알았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거래해온 사장님들 덕분에 문맹인 최여사는 주소를 불러주지 않아도 ‘제니네’라는 치트키로 간편하게 주문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단골 가게 사장님들이 점점 장사를 접거나, 동네를 떠났고.

과한 식재료 구입에 대해서 잔소리하는 자식들 때문에 최여사의 치트키를 사용할 수 있는 업체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최여사는 혼자서 짜장면 배달 하나도 주문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게다가 요즘은 배달음식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택배로 물건을 받는 게 더 자연스러운 시대가 아닌가.

한글을 모르고 주소를 외우지 못하는 최여사는 간단한 것 하나 마음대로 주문할 수 없어서 모든 게 답답해졌고, 결국 나에게 부탁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최여사는 지인을 통해서 전라도에 있는 쌀집 한 군데를 알게 되었다.

쌀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최여사는 앞으로 쌀은 이곳에서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첫 거래는 내 도움을 받아 업체에 주소를 알려주고 주문을 했다.







휴일이라서 늦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

잠결에 최여사가 쌀집에 두 번째 거래를 시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최여사는 핸드폰 폴더를 착! 열고, 번호를 하나하나 열심히 누르며 쌀집 사장님께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영~육~삼~……”

그리고 사장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여보세요오~? ~ 사장님, 여기 얼마 전에  주문했던 제니네인데요~”


맙소사! 최여사, 한번 주문했는데 거기 사장님이 여길 어떻게 알겠어.

역시나 쌀집 사장님은 제니네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고, 아마 주문자 이름과 주소를 되물었던 것 같다.


“음... 여기가… 제니 엄마요! 여기 서울에 제니네인데, 기억 안 나세요~?”


나는 순간 신경질이 확! 올라왔다. 짧은 순간에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 끓어올랐다.

매사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최여사에 대한 짜증도 있었고, 또 그런 최여사를 누군가 우습게 볼까 싶어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 그 사람이 내 이름을 어떻게 기억해!!”


몰래 엄마 화장대에서 말썽 피우다가 들킨 어린아이처럼 최여사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내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잠에서 막 깬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낚아채 쌀집 사장님께 다시 설명을 드렸다.

그리고 주문을 끝낸 뒤 아무 말 없이 최여사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 내 방으로 퉁명스럽게 들어와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문 밖에서 혼잣말로 자책하는 최여사 목소리가 들렸다.

“에휴~ 못 배워먹어서 뭐 하나 주문도 못하고, 내가 얼른 죽어야지”


스스로의 무능함에 기죽은 최여사의 서러운 감정이  방문 너머에서 느껴졌다.

‘아, 내가 또 욱했구나’ 뒤늦은 반성과 미안함 때문에 나는 다시 잠들 수 없었다.

결국 이불을 걷어 차고 나와 최여사에게 말을 건넸.


엄마,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전국에서  주문할  있는 세상이잖아.  사람들이 판매하는 데가 얼마나 많겠어. 근데 엄마가  한번 주문해놓고, 서울에 제니네라고 하면 어떻게 기억해?  일어나거든 전화해 달라고 하지 그랬어~”


“너 자는데 깨워서 말하기가 그래서 그랬지~”


“엄마도 주소를 외워야 해. 글씨를 몰라도 주소는 외워야지. 주소랑 엄마 주민등록번호랑 핸드폰 번호는 외우라고 말했잖아.”


기본적인 인적사항에 대해서 외우라는 말을 여러 번 하고, 최여사를 앉혀놓고 글자를 따라 써보라고 한 적도 많았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최여사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공부를 했다면 머리가 좋았을 거라고 하는데, 맨날 뺀질뺀질 핑계 대며 간단한 거 조차 배우려 하지 않는 최여사를 보면 어릴 때 학교를 다녔어도 꽤나 속 썩였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집중력 없고, 고집  아이를  엄마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어째서 아기를 낳아보지도 않은 나는 70대의 엄마를 보며  키우는  이런 느낌일까? 라며 추측하고 있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어 마른 웃음이 나온다.


주문자 이름을 묻는 말에 제니 엄마를 먼저 말하는 최여사.

많은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나면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지만 미혼인 나는 특별히 체감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최여사 역시 이름 석 자를 잃은 채 지내고 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최여사라고 부르거나, 가끔은 장난치며 엄마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으로 빙의하며  ‘순자 씨~’, ‘순자야~’라고 부른다.

그러면 최여사는 가자미 눈을 뜨면서도 소녀처럼 웃는다.

이상하게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를 때 보다 ‘최여사’ 또는 엄마의 이름을 부를 때 같은 여자로서 더 존중하게 되는 느낌이 든다.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할 땐 감정적이지만, 엄마의 이름을 부르면 좀 더 이성적으로 엄마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최여사에겐 우리 집 주소는 ‘제니네’, 이름은 ‘제니 엄마’라는 치트키를 사용할 때가 황금기였던 것 같다.

최여사가 본인의 이름도 되찾고, 내 도움 없이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스스로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진짜 어린아이도 아닌 80을 바라보는 70대의 엄마를 나는 어떻게 자립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깊다.

30대가 되어서도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나도 자립하지 못하였고,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최여사도 자립하지 못한 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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