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사는 항상 금전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지만, 사실 성실한 남편 덕에 평생 누구 밑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다.
문맹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자리를 구할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보다 열한 살이나 많은 남편의 수입은 나이가 들며 점점 줄어들었고,
노후 준비랄 것도 없이 현재를 사는 것조차 힘겹게 살아온 최여사는 일흔이 넘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배운 것 없고, 경험이 부족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가장 만만한 것이 아파트 청소 일이었다.
내가 한글을 알려주겠다고 설득을 해도 매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던 최여사가 처음으로 나에게 이름 쓰는 걸 알려달라고 했다.
이유인즉슨 아파트 청소를 하러 갈 때 매일 근태기록부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여사는 연필을 꼭 쥐고 내가 써준 세 글자를 반복하며 따라 썼다.
몇 번 써보더니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제는 본인 이름을 쓸 수 있다며 자신감 있게 노트를 치우라고 했다.
처음 아파트 청소를 해본 최여사는 초반 몇 주간 대걸레질과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꽤나 힘들어했다.
그리고 차츰 육체노동에 적응을 하게 되었고, 오히려 집에서 살림을 할 때 보다 더 활기차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 이제 일 좀 할만해?”
“처음에는 온몸이 다 아팠는데, 이제 좀 괜찮아~”
“출석 체크는 잘하고 있어?”
“응! 일 갈 때랑 나올 때 이름 잘 쓰고 있지~”
말을 끝내자마자 최여사는 나에게 노트와 펜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이름 석자 쓰는 것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나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 제대로 쓰는지 봐봐!”
최여사는 베실 베실 웃으며 자신감과 쑥스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비장하게 펜을 움켜쥐었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린아이 같아서 나도 모르게 엄마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알았어. 써봐”
최여사는 입으로 자기 이름을 한 글자씩 말하며 종이 위에 글씨를 천천히 써 내려갔다.
입으로는 “최~”
(하지만 종이 위에 써진 글자는 ‘촤’.)
다시 입으로는 “순~”
(종이 위에 써진 글자는 ‘손’.)
최여사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글자 “자~”
(종이 위에 남은 글자는 ‘저’.)
“푸하하하하하하”
나는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배꼽 잡고 웃는 나를 보며 최여사도 같이 웃음이 터졌다.
“왜!! 틀렸어?”
“촤손저래!! 하하하하하 엄마, 지금까지 이렇게 썼어?”
“틀렸어? 아~ 쪽 팔려서 어떡하냐”
지금도 이 날을 떠올리면 아무리 우울한 일이 있어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날 이후, 최여사는 더 이상 근태기록부에 이름을 쓰지 않는다.
동료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대신 적어달라고 한단다.
틀렸어도 다시 연습하고, 스스로 고쳐나가야 하는데…
남에게 부탁하고, 시키는 것에 익숙한 70대의 늙은 어린이를 난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
내가 아이를 키워보진 않았지만 70대 육아도 참으로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