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의 추억
금요일 5교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교문 옆
좁다란 보도블럭 위
가로수와 그 다음 가로수 사이에
백발의 할머니께서
가스불에 달고나를 열심히 만들어 파신다.
아이를 데리러가는 발걸음들이
교문에 닿을 때쯤
코끝을 스치는 달고나 냄새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언제나 그곳에서 묵묵히 설탕을 부어
자그마한 국자에 잘 녹인 것을
철판에 턱하고 부어
모양틀로 꾸욱 늘러 얇고 바삭하게 만들어내는
할머니의 손놀림은 느리지만 몹시도 기계적이고 정확하다.
할머니 만드는 달고나는
몹시도 인기상품이다.
교문 반경에 슈퍼도 편의점도 카페도 없기 때문에
달고나 할머니의 달고나만이 유일한 간식이다.
오픈런처럼 빨리 하교해서 줄을 서거나
미리 엄마가 사두지 않으면
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정말이지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을 담아 만드는 수제 달고나는
이 근방에서 보기 드문 핸드메이드 불량식품이다.
까만 썬캡과
할머니 특유의 패션감각을 엿볼 수 있는 옷차림
그리고 꽤나 오랜 시간
할머니와 함께 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크지 않은 바퀴달린 손수레는
이 동네 명물이자 특산품 느낌이다.
달콤한 설탕 냄새에
마치 꿀에 꾀인 벌들처럼
현혹된 마음으로 모여드는 아이들의 성화에
까다롭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엄마들이
줄을 서서 공손히 현금을 드리며
달고나를 사가는 행렬은 정말이지
신기하고 진귀한 구경이다.
아토피가 걱정되어 유기농 원료만 먹이고,
이가 상할까봐 젤리나 초콜렛 또는 탄산 음료를 섭취하는 양을 제한하고,
불량식품은 일절 맛보이게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까탈스럽고 정확한 성격의 엄마들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할머니의 달고나 손수레를 지나
놀이터에 가보면
바삭바삭 아이들 입 속에서 부숴지는 달고나 소리와
달콤함을 맛 본 승자의 미소 옆에서 빛나고 있는
반짝이는 달고나 가루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지금 90년대인가 싶은 착각까지 든다.
사실 달고나를 만드는 국자도
아마 계속 같은 걸 쓰고 계신 듯 하고
휘젓는 막대도 설탕도
출처 불명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따지거나 파고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못 본 척 눈감고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짐작만 할 뿐이다.
문득 몇 해 전,
배우 김선아와 김희선 씨가 열연했던
<품위있는 그녀>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주인공 박복자(김선아)가 상류층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
김치로 준재벌이 된 회사의 비밀을 밝혀냈다.
서로 사가기 위해 한 달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김치 맛의 비밀은 바로 미원, 조미료였다.
조미료를 비밀 재료로 마구 휘저은 김치 덕분에
풍숙정 사장님은 건물주가 되며 사라지는데,
데자뷰처럼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진귀한 재료와 몸에 좋은 것만 섭취하는
재벌가에서 서로 사가려고 애쓰는 김치의 비결이
바로 조미료였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해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놀이터에 놀거나
유치원 친구와 만나 놀기로 하면
나는 늘 간식을 챙긴다.
슈퍼나 편의점에서 산 과자류,
카페에서 산 간식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마다 입맛이 다르겠지만,
종종 엄마가 이걸 못 먹게 해서
저는 괜찮다고 거절하거나
처음 먹어본다는 반응을 마주할 때면,
내가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만 같은
미묘한 죄책감이 들곤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길에서 만든
원료의 출처를 알 수 조차 없는
그리고 재료도 언제 씻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도구로 만든 달고나가
저렇게도 인기가 많다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에 괜시리 웃음이 났다.
어쨌든 대치동 달고나 할머니는
이 동네의 추억이자,
일주일에 한 번 허락되는
특별 간식을 만들어주시는 소중한 분이다.
정말이지 달콤하고 얇게 만들어
바삭하게 깨져 입 속에서 사라지는 달고나를
혼자 다 먹겠다며 먼저 걸어간
아이에게 한 입도 못 얻어 먹었지만,
초등학생의 입맛에 정말로 너무 맛있는 간식임에는 틀림없다.
다음주 역시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약간 흐린 눈을 장착하고
절대 카드결제와 계좌이체를 받지 않는
달고나 할머니께 드릴 현금을 미리 준비해야겠다.
가격 달고나 1개. 1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