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도 셔틀도 지원되지 않는 대치동 학원가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
보통의 교문 앞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
하교 인파로 늘 붐빈다.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저마다 서로 다른 일정으로 바쁜 오후 일정을 돌보기 위해
부모, 조부모 또는 이모님, 삼촌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대치동에서는
대부분의 학원들은 셔틀을 운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동선을 따라가줄 누군가가 꼭 필요한 실정이다.
맞벌이 가정이라면
셔틀의 유무가 학원 선택에 있어 주요한 원인이지만,
안타깝게도 대치동에서는 셔틀을 운행하는 곳 자체가 적다.
아이가 혼자 다닐 수 있는 정도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누군가 한 명은 동행해야만 하는 구조이다.
우연히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을
데리러 온 이모님이 수첩을 보여주셨는데
빼곡히 날마다 적힌
그날의 아이 일정과 간식 시간들
게다가 요일별로 서로 다른 시간대로 구성된
일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빙글빙글 도는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대치동 학원 대부분은 '셔틀'을 운행하지 않는다.
대치동 학원들은 '우리는 교육에만 집중하겠다'는 자신감이자
올 테면 오라는 콧대 높은 시스템은
부모들로 하여금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학원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해
라이딩 지옥에 더욱더 깊숙히 빠져들게 만든다.
이 학원, 저학원이 대로변과 자그마한 골목들에
빼곡한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보니
운전 실력도 나날이 좋아지고
무개념 운전자에게 놀라 심장이 두근거리던 나약한 마음도
점차 강해져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눌리거나
창문 열고 인상을 찌푸리고 심하면
소리를 지를 수 있을 정도의 강심장이 되어가도록 만들어준다.
학원들은 계획된 일정으로 돌아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깥의 교통 체증 쯤은 알아서 잘 해결해
학원에 등원하라는 전제 하에 수업을 진행한다.
특정 시간에는 나랏님도 대중 교통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인파와 차량이 몰려든다.
물론 30분 일찍 길을 나서는 여유나
지하철과 도보만 이용하는 경우는 막힐 염려가 없지만.
어쨌든 아이가 제일 편안하게 학원에 도착하게 하기 위해서는
셔틀이 아닌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흡사 대형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차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에 초조해 1분 1초를 계속 시계를 보며 진땀 흘리고,
마땅히 주차해둘 곳이 없어
주차 단속을 피해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녀야만 하는
불편한 시간을 인내하는 것은 필수이다.
게다가 곳곳에 주차단속까지 엄격하기 때문에
자칫 벌금 딱지를 받는 일도 허다하다.
어쨌든 대치동은 영어 유치원이 아닌 이상
셔틀을 기대하면 안된다.
학원을 문의하며 '셔틀 있나요?'라고 질문하는 것은
몹시도 내가 무능력한 못난 사람이 된 것 같으니
함부로 묻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그런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엄청나게 규모를 키운 한 영어학원 프랜차이즈도 있다.
한티역 대로변에 엄청난 행렬의 노란 차량이
끝없이 캐리어를 끌고 있는 아이들을 쏟아내는데
바로 대치동 한복판에서 셔틀을 운영하는
대담함을 선보였다.
게다가 셔틀의 범위는 탄천을 넘어 송파구, 강동구까지 이어지기에
범대치권을 넘어 대치동 영어학원 수요를 사로잡은 것이다.
다른 지역의 아이들까지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셔틀 버스에 붙은 번호만 해도
40번 대를 넘어가니 못해도 마흔 대의 버스가
이 프랜차이즈 영어 학원에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게다가 실력이 향상되면 상위 학원으로 진급시키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럴 경우에도 당연히 셔틀 이용이 가능하니
학부모들의 입맛을 모두 사로잡았다.
특이하지만 수요가 넘치는 셔틀 운행 덕에
셔틀버스의 수는 계속 늘어가고,
셔틀 기사님부터 셔틀 마다 반드시 필요한 차량 탑승 선생님들,
셔틀을 내리면 학원 내부까지 인계하는 선생님들,
엘레베이터를 태워는 선생님들 등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며 거대한 인력풀을 함께 돌리는
실로 엄청난 규모의 학원이 되었다.
그리고 셔틀을 당연하게 운행하는
줄넘기 학원, 태권도 학원, 축구나 생활체육 학원 들은
멋진 관장님들이 교문 앞에서
더운 날도 추운 날도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셔틀에 태워 학원으로 데려가주기 때문에
인기 만점이다.
셔틀을 운행하는 학원 같은 건물에 또다른 학원이 있다면
도어 투 도어처럼 학원 투 학원으로
선생님이 데려다주는 시스템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틈새 시장을 공략한 대치동 서브 학원들도
셔틀에 대한 갈망을 이용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모님을 쓰든 부모님이 하든
아이를 학원에 대려다줄 수 있고,
숙제를 위한 새끼 과외 선생님을 쓰든 부모님을 갈아넣든
아이의 수준 높은 숙제를 다 봐줄 수 있고,
셔틀의 유무보다는 학원이 수업하고자 하는 커리큘럼과
수업 후의 아웃풋을 중시하는 미덕을 가진 자만이
대치동 학원에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풍토 속에 블루오션처럼
셔틀을 운행하는 학원들의 인기도 많아지고 있으니
맞벌이 가정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점차 이런 수요를 반영해 '셔틀 있나요?'고 물어보는 내 자신이
왠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때가
언젠가 오기를 내심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