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고 있는 학원을 묻지말라

대치동에 왔다면 지켜야 할 에티켓

by 대치동 비둘기

대치동은 수많은 학생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녀가고

방학 시즌이면 전출입생들로 학교가 북적인다.

적당한 익명성과 적당한 거리 유지가 가능한 대치동에서

친해지기 전에는 (아마 친해진 후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은 사는 곳도 아니고 부모님 직업도 아닌

바로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이다.



즐비한 간판들에 수많은 학원들이 있다보니

어디를 다니는게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암호명 같은 학원 이름이든 알파, 오메가 같은 지구 과학에서나

튀어나올 것만 같은 반 이름과 레벨도

먼저 말해준다면 모를까

묻지 않은 것이 불문율이다.



고작 학원 이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학원명과 반(레벨)은 그 아이의 현재 위치와 수준

그리고 과거의 노력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아이들이 걸어온 길에 따라서
갈 수 있는 학원이 다르다



'커리를 탄다'고 표현하는데

어른들의 'Career'가 직업적인 분야를 통칭한다면

아이들의 과거 그러니까 더 어린 시절의 사교육 정도에 대한 척도를

지금 학원 이름을 묻는 순간 판단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치동이다.


대치동 길

영어 유치원을 3년동안 다닌 아이들과

일반 유치원을 다니다가 영어 유치원을 1~2년 다닌 아이들

일반 유치원만 다닌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레벨테스트를 받고 들어갈 수 있는 학원들이 세분화되어 나누어져 있다.



쉽게 말해

영어만 두고 보자면,

영어를 하루종일 습득하고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과제를 소화해내며

친구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과

일반 유치원에서 누리과정을 배우며 즐겁게 생활한 아이들이

입학할 수 있는 학원은 성격과 레벨이 전혀 다르다.






대치동 학원은
돈을 준다고 해서,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영어 학원의 레벨테스트의 경우

아이의 학습 경험

다시 말해, 어떤 유치원을 얼마나 다녔고

읽기 수준이 미국 기준 초등 몇 학년인지 검증받아야 겨우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인기 학원인 경우 몇 개월을 대기해야 하고,

입학하더라도 계속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Top3로 불리우는 영어 학원들의 레벨테스트는

보통의 평범한 어른들이 풀더라도

입학 여부는 미지수일 정도로 어렵다.

아마 포기하고 문 밖으로 나오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를만큼 고난이도 수준이다.



물론,

학원을 묻지 말아야할 에티켓에도 불구하고

정보수집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엄마들은

비밀스러운 친구들의 학원 현황을 손바닥처럼 꿰뚫고 있다.

즉, 자녀 친구들의 수준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엄마들도 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때로는 친구들을 무리짓고 일정을 조율하고

마치 과거에 고등학교 팀과외를 짜듯

팀을 만들어준다.



대놓고 공개석상에서 밝히지는 않지만,

대체적인 자녀 친구들의 수준과 부모의 교육관, 성향은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꽤 유용하고 유의미한 자료로 사용된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아이들도 자기가 다니는 수학학원, 영어학원이라고 표현할 뿐

특정 학원의 이름이나 반을 거들먹거리거나 자랑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힘들게 입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다니는 중 수준 미달이나 시험 점수가 모자랄 경우

반이 강등되고, 레벨이 내려가고, 보충학습을 해야만 한다.



결국 지금 다니는 학원과 반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도 학부모도 잘 알기 때문에

굳이 알릴 이유도 물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명품백, 사는 곳, 타는 차가 자랑이듯

아이들에게 남들이 선망하는 학원에 입학하고 다니는 것이

크나큰 자랑이다.



물론 학부모에게도 굉장한 자신감을 주고

행복감을 안겨주기에 결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요소이자

불안과 초조함을 안겨주는 장본인이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잣대로 평가받고

자신의 유년기가 헛되지 않았고 틀리지 않았음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배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요즘 대치동 아이들의 가장 큰 자신감의 원천이자 믿음은

바로 다니는 학원에 있기 때문에

자칫 상대방에게 경솔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다면

함부로 먼저 묻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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