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성 부른 떡잎만 뽑아가는 학원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어린 시절의 모습과 재능이
성인이 된 이후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만약 떡잎이 튼튼하고 건강하다면,
큰 나무로 성장했을 때
풍성한 잎, 든든한 가지, 아름다운 꽃
그리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힐 확률이 높다.
마치 식물처럼
아이들도 저마다의 떡잎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키울 식물의 떡잎이
될 성 부른 나무인지 아닌지를
너무도 이르게 확인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레벨테스트는 대치동 학원을 다니기 위한
필수 관문이다.
몇 몇 소수 학원을 제외하고는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무조건 등록할 수는 없다.
학원이 요구하는 레벨을 충족할 것
학원이 원하는 레벨,
그러니까 학원에서 교육하고 있는 교육과정을 따라올 수 있는지,
따라올 수 있다면
최상위반부터 하위반(하위라고 지칭하지는 않지만 가장 낮은 반) 중
어느 반에 배정 받을 수 있는지
레벨테스트를 신청하고 정해진 날에
시험을 보러 가야하는 것이 학원 입학의 전제조건이다.
결국 학원은
학원에 와서 수업을 받기에 적합한 아이들을 선별해 받고,
선별받아 들어간 아이들은
학원의 수업을 대체로 잘 따라가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내며 아웃풋을 보여준다.
학원이 잘 가르치는 것인지
그 아이가 잘해서인지
판단이 어렵다.
레벨테스트 비용은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보통 환불받을 수 없다.
만약 붙는다면 학원비에서 감해주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 약 2만원 선이다.
레벨테스트를 위한 예약도 쉽지 않은데,
인기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약 뺨치는 난이도를 가진 입금전쟁부터 시작된다.
분초를 다투는 일이기 때문에
매크로를 활용하는 업체에 대행 수수료를 주고 맡기기도 하고,
순번에 들지 못했지만 혹여나 올지도 모르는 순번을 위해 입금을 해두기도 한다.
학원이 제시하는 요일과 시간에 응시 신청을 하고
유의사항을 숙지해서 가야한다.
유아라고 하더라도 보통 40분 이상의 시험을
부모와 분리된 상태로 봐야하며
책상이나 의자는 학원의 시설을 그대로 사용한다.
(만 6세 때 집 앞 영어학원에 가려고 레테를 처음 경험하며
한시간 반 혼자서 시험보고 나온 딸은 펑펑 울고 나왔다)
문제는 레벨테스트 신청을 잘 해서
날짜를 배정받는다 하더라도
'학원이 바라는 학생상'이 되기 위해 또다른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라,
원하는 학원에 입학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레벨테스트의 학원별 유형과 수준을 파악해
미리 연습해가야하 한다.
특정 인기 학원들은 레벨테스트의 유효기간(등록일까지의 한도기간)을 부여하고
떨어진 후 몇 개월동안 재응시 자격을 박탈한다.
그리고 1년의 기한 내 또는
평생동안의 레벨테스트 신청 횟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학원에 합격하기 위한 준비가 따로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져있으며 과외부터 준비해주는 프렙 학원까지
유형별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한정된 시간과 횟수 내에
아이의 능력을 보여줘야 하다보니
준비하기 위한 외주는 필수다.
게다가 남들이 다 가고 있으니 우리 아이도 보내볼까 생각할 때에는
이미 늦은 때인 경우가 많아,
대기가 1년을 넘어갈 수도 있다.
수준 높은 영어 학원의 경우 연계된 영어 유치원이나
유아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합격율이 높다고 홍보하기도 하며,
레벨테스트 준비를 위한 과외의 경우
해당 학원 출신의 강사일 경우
시간당 교습비가 고등학생 과외금액을 뺨친다.
유명한 레벨테스트 전문 과외선생님의 블로그를 보면
합격 감사 인사와 선물이 포함된 카톡 캡쳐화면,
겸손하고 우아한 선생님들의 발음과 수업 영상,
아이를 칭찬하는 코멘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7세 고시라고 하는 초등학교 입학 전 이루어지는 레벨테스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계속해서 수준을 확인받아야만 한다.
수학 레벨테스트의 경우 특정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또다른 학원들이 입학시험 대비반을 운영할 정도이다.
우습게도 때로는 인기많은 학원 입학시험날 전과 당일
급작스럽고 쌩뚱맞은 교외체험학습 신청서가 제출된다.
통상적으로 교외체험학습은 3일 이전에 사전 신청을 해야한다.
그런데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주말 전날인 금요일도 아닌데
아이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날이 생긴다.
게다가 장소마저 의심스러운데
차가운 계절인 11월 또는 12월에
주말도 아닌 평일에 놀이공원을 간다던지
경기도 근교 나들이를 간다던지하는 식이다.
(물론 정말 가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합리적 의심은 계속된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머리에 넣기 위한 것일까
종종 점심 급식 시간에
긴장되서 밥을 못먹겠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이 있다.
왜 그런지 자초지종을 물어보면
학원 레벨테스트날이라 혹시 떨어질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어제 분명 시험을 보고 온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묻지 않는 것이 선생님인 나에게도
당사자인 아이에게도 좋다.
때로는 레벨테스트 당락 여부에
선물이나 여행이 걸려있고 보상으로 제공되기도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보상은
아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주어지는 안도감과 기쁨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