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국제선 출국장을 방불케하는 캐리어 부대
대치동에서 스스로 무거운 가방을 멜 수 있는
무겁든 말든 그리 크게 부모가 걱정하지 않는 나이가 된
중고등학생들을 제외하고
남녀노소 유행 아이템으로 끌고 다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바퀴가 달린 캐리어다.
흡사 인천공항 출국장을 연상하게 하는 캐리어 행렬은
특정 시간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
저마다의 방향으로 우르르 향해 사라진다.
여행온 것도 아닌데
뭘 저렇게 끌고 다니는지
대치동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한 장면이다.
도대체 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거야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시절
도대체 왜 캐리어를 질질 끌고다니며
어디를 저렇게 바쁘게 가는지 궁금하던 나의 호기심은
아이가 학원을 가게 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금액의 교재비를 결제한 후
주어진 교재들을 받아들고서야 해결되었다.
학원들이 수강료보다 교재비에서 많이 남긴다
수강료는 워낙 경쟁 학원들이 많다보니
상한선과 하한선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지만
교재비는 자체 제작 교재, 외국의 교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고 사들여서 책정할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실제 재무제표를 본 적이 없으니
교재비에서 많이 남는지 아닌지
사실여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교재가 어린이에게 한 달동안 필요한 것이라고 하기에
너무 권 수도 장 수도 많다.
사실 한 달에 한 권을 제대로 하는게
더 좋지 않나 생각되지만,
워크북, 단어장, 또다른 교재도
다 도움이 될테니까 그러려니 해야한다.
캐리어를 끄는 아이들 대부분이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중학년 정도인데,
도대체 그 아이들이 배우면 얼마나 배우길래
교재가 그리 많다 싶겠지만,
학원 스케쥴을 듣고 보면 이해가 된다.
기본 수업 시간 2시간 이상
과거 내가 학원 다니던 꼬꼬마 시절을 생각해보면
잠깐 갔다가 나오고,
수업을 하더라도 한 과목은 1시간 내외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학년에 상관없이
한 과목당 기본 2시간 이상을 운영한다.
(학원을 한 번 들어가면 적어도 1시간 30분 이상은 있다가 나온다는 말씀)
예를 들면,
1일 2시간 주 2회
1일 3시간 주 2회
2시간 주 3회 등
기본 단위가 과거와 무척이나 다르다.
그리고 인기가 많은 한 수학학원은
아이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올 수가 없으니
교육시간이 4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보통 하루에 2과목의 학원을 간다면
적어도 하루 4시간에서 6시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어른인 나도 2시간 연속 강의를 듣는 것은 고역인데
아이들은 미취학 시절부터 그런 일정에 익숙해져 있다.
비단 늘어난 것은 수업시간만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필요한 교재와 숙제양도 그와 비례하여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수업료보다 교재비로 남긴다는 후문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은
헛된 소문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의심이 든다.
주 교재 2권 (1권은 하드커버거나 두꺼워서 무거움)
보조 교재 2~3권 (워크북 형식의 숙제 또는 자체 제작 교재)
교재를 챙겨 꾸역꾸역 숄더백이나 쇼핑백에 넣은 상태로
한 손에는 아이 손을 잡고
다른 어깨에 유치원 가방을 메고 있노라면
진짜 너무 무겁고 가뜩이나 작은 키가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얼마나 현타가 오는지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솔직히 캐리어는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안 사고 있다.
핮지만, 땀을 뻘뻘 흘리는 내 옆으로
캐리어를 스무스하게 밀고 지나가는
우아한 엄마들의 모습을 마주하며 그 마지막 자존심이
거의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나도 모르게 아동 캐리어를 초록 검색창에 찾으며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는 나를 발견하고
왠지 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치동에 살며
동네 학원 다니는데
캐리어까지는 사지 않아도 되겠지 다짐했건만
이제 곧 사서 개봉샷을 후기로 남길 기세다.
문제는 하루에 한 과목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인데
하루에 2군데 이상이라면
챙겨야할 교재는 2배 이상으로 많아진다.
만약 인근 동네나 다른 동네에서
대치동에 라이드를 온다면
아이가 짊어질 책 권수만 약 10권 이상일테니
캐리어는 필수품일 수 밖에 없다.
그걸 어깨에 혼자 메고서 아이까지 챙기자면
너무 심하게 화가 나고 근육통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방 들어줄 이모님, 부모님, 조부모님 또는 삼촌이 있거나)
대치동에 이사온지 얼마 안된 어느 여름날
우리집에 놀러온 친정아버지가
일하느라 바쁜 나를 대신해 등하원길에 함께 다녀오셔서는
식탁에 앉아
한참 말이 없으셨다.
아이 학원 앞 벤치에 앉아
마칠 시간을 기다리는데
조금 더 빨리 끝난 다른 반 아이들,
옆에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바퀴소리를 드르륵 드르륵 내며
무표정으로 지나다니는 행렬을 보신 모양이다.
하필이면 학원이 몰려있는 큰 건물을 가셔서인지,
건물에서 일제히 쏟아져 나오는 캐리어 부대들과
서로 치이면서도 너무도 바쁘게
묵묵히 자기 갈길을 가는 아이들의 멍한 눈빛에서
아이처럼 순수함이 느껴지지 않고
피로감이 느껴져 힘들어보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손녀의 가방을 어깨에 10분 남짓 메고 오셨는데
아무래도 캐리어를 너도 사는게 좋지 않겠냐며 걱정해주셨다.
아마 그걸 어깨에 메고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딸 어깨가 걱정되셨나 보다.
어른 입장에서는
공항도 아닌데 정말 많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동네 풍경이
조금 기괴하고 이상해보일 수도 있다.
캐리어가 의외로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바퀴가 달려있다보니
때로는 전투 무기로
때로는 심심풀이 장난감으로
때로는 달리기하며 끌고다니는 도구로 사용된다.
가끔 감시의 눈을 벗어나
학원 복도에서 레이싱하는 것을 관람할 수도 있는데,
버젓이 복도에는 'No running'이라며 캐리어 그림에 금지 표시가 되어있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든 말든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놀잇감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학원 책가방걸이에 걸면
책이 무거워 가방이 쳐치거나 터질 수 있는데,
바퀴달린 부분을 세우면 편안하게 서있으니
교재나 필통을 꺼내기도 쉬워서 꽤 유용하게 쓴다.
대한민국 키즈캐리어는 여행을 위해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다
키즈캐리어는 아마 여행으로 구매하는 사람들보다
학원 가방으로 쓰기 위해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 달에 다 배우기에는 뭔가 너무 많은 것 같은 교재를
한 곳에 담아주는 유용한 물건이자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무거운 어깨의 짐을 잠시나마
덜어주는 보조기구로서 오늘도 판매지수를 높여가고 있다.
아무래도 고민 그만하고
나도 캐리어를 하나 구매해야 할 것 같다.
너무 덥거나 추울 때
솔직히 과하게 무거워서 성질이 나려 하는데
나의 온전한 성격 보존을 위해서라도
곧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