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숙제가 싫다

그래도 숙제는 해야되니까

by 대치동 비둘기

요즘 학원은 '알아서' 가르쳐주고 다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알아서' 공부시켜보내야 한다. 학원에서 수업시간에 비례하여 숙제의 양이 늘어나고, 그만큼 숙제와 씨름해야하는 시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교시간, 책가방을 메고 우르르 나오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 조부모 또는 이모님 어깨에는 또다른 가방이 걸려있다. 특정 학원 마크가 찍힌 가방, 수영가방, 바퀴가 달린 가방 등 저마다 다른 모양의 가방이 아이들을 맞이하는데 이는 아이들의 다음 스케쥴을 짐작하게 해준다.



남의 학교 놀이터


엄마, 나 놀이터에서 놀아도 돼?


자그마한 소원이 담긴 이 문장은 종종 하교하는 아이들이 애타는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하는 질문인데, 운이 좋다면 잠깐의 시간을 내어 놀이터를 환승역처럼 거쳐갈 수 있지만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안돼'이다.



안돼. 학원 숙제 해야돼.



몇 일 전,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놀고 있는데 지나가던 엄마가 애타게 놀고 싶어하는 아이의 얼굴에 학원 숙제를 학원 가기 전에 끝내야하니 놀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짠하게도 아이는 금새 끄덕이며 별다른 반항없이 집으로 향했는데 아마도 조금 놀게 되면 그만큼 더 뒤늦게 숙제를 시작해서 학원을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대치동 밤거리


학원에서는 뭘 배우는 거야?



예전 우리 때, 그러니까 내가 학창시절인 그 시절과 크게 다른 점은 '학부모'는 본인 자녀가 어떤 것을 배우고 진도는 어떻고, 잘못하고 어려워하는 것은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종합학원, 주산학원 등 별다르게 특별한 학원들의 구분이 크지 않았지만 요즘은 세부적으로 특화된 학원들이 분야별로 나눠져있어 선택부터 케어까지 엄마가 온통 안테나를 세우고 다녀야만 한다. (예를 들어 수학 학원은 사고력, 연산, 교과, 경시 등등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음)



그래서 매일 학원을 다녀오면 엄청나게 많은(그러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양) 숙제가 딸려오는데 빼곡히 적힌 숙제를 다하려면 어림짐작해서 매일 1시간 이상은 책상에 아이를 앉게 해서 꾸준히 해야 겨우 다할 수 있는 정도이다. 난이도가 높은, 그러니까 레테를 보고 대기를 하고서야 들어가는 최상위 수준의 학원의 경우에는 학원 수업이 주 6시간이라면, 숙제는 그것과 비례하여 1.5배에서 2배 이상의 시간이 들어간다.



아이의 실력이 학원에서 잘 가르치기 때문인지
숙제를 잘 해가서인지 알 수가 없다.



학원 숙제를 함으로써 아이들은 매일 1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예습과 복습을 해야만 한다. 이는 사실 배움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한데, 루틴처럼 학원 숙제를 받아와 아이와 같이 하고 있으면 아이의 아웃풋과 성과가 차차 높아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는 '학원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우아한 백조의 물 위의 모습을 위해 부단히 수면 아래에서 허우적대야만 한다.



그런 의문과 더불어 드는 생각은 '과연 이 숙제는 아이의 숙제가 맞는가'하는 점이다. 솔직히 아이의 숙제가 점차 나의 턱 끝까지 따라온다는 것을 느끼는데 이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나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의 'writing' 부분은 엄마인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영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매번 자괴감과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혼란함이 뒤섞여 밀려든다.



그리고 정말로 '아이의 숙제는 결국 엄마의 숙제이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번 밀려든다. 어른도 하루에 매일 루틴처럼 '공부'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아한다. 그런데 아직 열 살도 안된 아이가 '숙제 하기 싫어'라는 말을 꺼내면 왜 화부터 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꽤 안 좋은 표정을 하고 앉아서 답답해하며 왜 이해를 못했냐, 학원에서 배운 건데 왜 모르냐는 둥의 잔소리를 꺼내고야 마는 것이다. 결국 짜증이 폭발해서 '하기 싫으면 하지마. 그냥 학원가'라고 외치고는 정색을 하며 아이를 마주한다.



동네 화단


솔직히 엄마도 하기 싫어



아이랑 씨름하며 책상에 앉아 주어진 숙제를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으면, 드러누워 핸드폰이나 야구 경기 따위를 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보인다. 매일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숙제는 도와주지 못할 망정, 아이의 숙제 시간을 본인 휴식시간으로 알차게 잘 사용하는 모습이 참으로 얄밉다. 가끔은 저녁먹고 좀 놀고 있는 아이에게 숙제해야되지 않냐며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마치 엄마인 나에게 애 숙제 시키라는 말로 들려 괜히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더해 학원 간섭이나 아이의 성적에 대한 질문이나 조언을 하기라도 한다면, 절대 친절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는 그정도로 공부를 안했다느니, 요즘 애들을 불쌍하다느니, 아동학대라느니, 아직 어린데 너무 시킨다느니, 학원 숙제 수준이 너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시시콜콜한 참견은 정말이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아빠들은 모순적으로 아이가 학교에서 성적을 못 받거나 무언가 이해를 못하면 학원을 그렇게 다니는데도 못하는 거냐며 핀잔을 주기까지 하니 주의를 요한다.



이상하게도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육아, 교육에 있어 총책임자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빠가 숙제를 '도와준다'하더라도 결국 정리하고, 확인하고, 가방을 챙겨주는 역할을 엄마는 또 해야만 하는 것이다. 솔직히 엄마도 뒹굴거리며 핸드폰을 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있고픈 본능이 있다. 아이가 숙제를 하든 말든 그냥 냅두고 엄마의 자유시간을 엄마도 가지고 싶다.

물론, 정말 기계적으로 본인의 루틴을 챙기는 엄청난 엄마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만.



학원 갯수는 그만큼 비례하여 많아지는 숙제의 갯수를 의미한다. 대치동에 가서 학원을 많이 다닌다는 말은 그리 좋은 의미만은 아니다. '아이가 그만큼의 숙제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는 달리 말해 '아이의 엄마가 그만큼의 숙제를 다 해내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학원을 많이 보내려면 학원에서 주는 숙제를 감당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대치동이나 학군지에 가는 '엄마'의 마음은 엄청난 다짐없이는 갈 수 없게 만든다.



어쨌든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파도 숙제를 하고, 학교에서도 숙제를 하고, 잠을 줄여서라도 숙제를 해야한다. 왜냐하면 미루거나 안하면 그만큼 계속 빚처럼 쌓이고 쌓여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학원에서 주는 칭찬 티켓이 '학원 숙제 pass'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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