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에서 비트코인까지, 군중, 도박, 투기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대체로 시장을, 계산과 정보가 만나 가격을 형성하는 장소로 배운다. 교과서나 경제 기사의 문법 속에서 시장은, 사적 욕망이 공적 질서로 번역되는 비교적 차가운 장치로 그려지며, 그 안에서 움직이는 행위자들은 저마다 다른 판단을 내리되 결국에는 숫자와 사실 앞에서 수렴하는, 종종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투기와 도박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그리고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주식시장과 가상자산 시장, 혹은 그와 맞닿아 있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의 리듬을 잠시만 관찰해 보아도, 시장은 좀처럼 그렇게 단정한 공간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곳에는 계산이 있으나 계산만 있지는 않고, 정보가 있으나 정보만이 가격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개인들이 흩어져 있으나 그 흩어짐이 어느 순간 매우 빠른 속도로 집합적 정동으로 응결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시장은 개인들의 총합으로 설명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 개인들이 혼자일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반응하며 서로를 닮아가기 시작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투기의 역사를 읽는 일은, 단순히 경제적 실수나 비합리적 과열의 사례를 모아보는 일이 아니라, 근대 사회가 어떻게 군중을 만들고, 또 그러한 군중이 어떤 조건에서 가격과 결합하여 하나의 현실을 잠시나마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는 일에 가깝다. 현대의 군중행동 연구가, 군중과 집합행동을 단지 혼란이나 일탈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도 일정한 패턴과 의미를 가진 방식으로 함께 움직이는 현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장이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시장이 단지 재화와 화폐가 교환되는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 선망과 시기, 조급함과 안도감이 서로에게 옮겨 붙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군중심리라는 말은 오랫동안, 다소 가벼운 일상어로도, 또 보다 엄숙한 사회이론의 어휘로도 널리 사용되어 왔는데, 오늘날 심리학에서도 그것은 거리의 군중, 폭도, 대규모 집합체와 같은 상황에서 개인이 보이는 특유의 정신적·정서적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 다만, 이 개념이 널리 쓰인다는 사실 자체가 곧 그것이 충분한 설명이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군중에 대한 논의는, 19세기 말 유럽 사회가 대중 정치와 도시 군집, 혁명과 파업, 언론과 여론의 팽창을 경험하던 시기부터, 근대 사회가 자신을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거의 반복적으로 호출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군중은 한편으로는 위험하고 감염적인 열광의 이름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가 낳은 새로운 집합성의 형식이 되었다. 따라서 시장의 군중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왜 때때로 어리석게 행동하는지를 비난하는 차원에 머무르기보다, 왜 근대 사회는 끊임없이 군중이라는 형식을 낳고 또 필요로 하는지를 묻는 일과 분리되기 어렵다. 집합행동 일반을 다루는 사회학 역시, 군중, 공중, 유행, 패닉, 운동과 같은 여러 형식들을 한데 묶어, 개인적 동기만으로는 충분히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행동의 층위를 설명해 왔다.
군중에 관한 가장 널리 알려진 고전적 이름은 역시 귀스타브 르봉이다. 1895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군중심리 』는, 근대의 도시와 정치가 더 이상 고립된 개인들의 무대로 이해될 수 없으며, 군중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사회를 좌우하기 시작했다는 감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로 남아 있다. 르봉에게서 군중은, 개별 인격의 의식적 층위가 약해지고 감염과 암시, 모방과 흥분이 우세해지는 상태를 뜻했으며, 그 안에서 개인은 혼자일 때보다 더 충동적이고 정서적이며 비판적 판단에 취약해지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그림은 후대의 대중사회론과 집합행동 연구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고, 군중심리가 위험한 대중적 열광의 다른 이름처럼 쓰이게 되는 데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르봉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그가 최종적으로 옳았다는 뜻과는 다르다. 오히려 오늘날 다시 읽어볼 때 르봉이 중요한 이유는, 군중을 병리로만 보았기 때문에가 아니라, 근대 사회가 이미 개인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집합적 정동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문제는, 시장이라는 장면에 르봉의 도식을 그대로 옮겨놓을 때, 우리는 설명되는 것만큼이나 설명되지 않는 것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는 데 있다. 실제 시장의 군중은 단지 거리의 소요나 혁명적 열광처럼 한곳에 밀집한 사람들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장 군중은, 동일한 거래소의 건물 안에 함께 있지 않더라도, 동일한 가격 차트를 주시하고, 같은 속도로 퍼지는 뉴스 알림과 게시판의 정동에 반응하며, 서로를 알지 못한 채로도 같은 순간에 비슷한 행동을 선택하는 분산된 집합으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을 둘러싼 집합성을 무턱대고 군중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되, 그만큼의 생략도 함께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기와 도박의 장면에서 군중이라는 말이 좀처럼 낡지 않는 까닭은, 가격이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숫자에 머물지 않고, 타인의 기대를 눈앞에 보이게 만드는 신호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군중의 본질을 단순한 물리적 밀집이 아니라 상호 참조의 고밀도 상태로 이해한다면, 시장은 군중이 태어나기에 대단히 적합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가 무엇을 믿는지를 우리는 직접 알지 못하지만, 그 믿음의 흔적은 가격의 형태로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번역되어 나타난다. 가격이 오르면 누군가가 사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고, 누군가가 사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산에 대해 내가 모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심, 혹은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조급함을 불러오며, 그러한 정동은 다시 매수 행동을 자극한다. 이처럼 타인의 기대가 가격을 통해 가시화되고, 그 가시화된 기대가 또 다른 기대를 조직하는 구조 속에서, 시장은 단순한 계산의 장소가 아니라 상호 모방의 가속 장치가 된다. 여기서 군중은,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돌진하는 비이성적 무리이기 이전에, 타인의 판단을 자신의 판단의 재료로 삼을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의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근대적 집합이다. 그러므로 투기의 군중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의 탐욕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보다 먼저, 왜 불확실한 세계에서 타인의 움직임이 그렇게 매혹적인 정보처럼 보이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시장은 단지 경제의 하위 영역이 아니라, 근대 사회 자체가 가진 평등과 경쟁, 익명성과 비교, 희망과 불안의 모순이 가장 또렷하게 압축되는 장소로 보이기 시작한다. 시장은 원리상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특히 금융시장은 오랫동안 신분과 혈통, 교육과 직업적 권위가 강하게 작동하던 다른 제도들에 비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장으로 상상되어 왔다. 바로 그 때문에 시장은, 민주주의가 약속했던 평등이 언제나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던 것과는 별개로,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더 급진적인 형태의 평등을 제공하는 공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에서는 왕도 노동자도, 전문가도 초심자도, 같은 가격표 앞에 선다. 물론 그 평등은 실제 역량과 정보 접근, 자본의 크기라는 차이를 지워주지 못하며, 많은 경우 오히려 그 차이를 더 가혹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계속해서 자신을 개방된 무대로 연출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개방성의 감각이, 군중의 형성을 위한 가장 강력한 전제 가운데 하나가 된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모두가 동시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군중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거의 제도화된 정동의 형식처럼 나타난다. 이때 군중은 합리성의 실패가 아니라, 근대적 평등의 약속이 정동적 형태로 출현한 장면일 수도 있다. 이 문제의식은, 훗날 시장 대중을 단순한 병리 현상이 아니라 근대적 사회형식의 일부로 읽으려는 논의들과도 이어진다.
따라서 앞으로 이어질 논의에서 우리가 다루게 될 튤립 투기, 미시시피 사건, 남해회사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파생상품, 그리고 비트코인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사례들은, 시대와 기술, 제도와 자산의 외양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나의 공통된 질문 아래 다시 읽힐 수 있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움직였는가, 그들이 산 것은 사물인가 약속인가 이야기인가,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집합적 기대는 어떻게 가격이라는 형태를 빌려 다시 사람들을 설득했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군중심리를 단지 광기의 설명으로 축소하지도 말아야 하고, 반대로 시장을 차가운 계산의 영역으로 정화해 버리지도 말아야 한다. 필요한 것은 이 둘 사이, 곧 정동과 계산, 모방과 기대, 이야기와 가격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현실을 잠정적으로 조직하는 중간 지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될 선행연구와 이론적 논의는 바로 그 중간 지대를 읽기 위한 도구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르봉은 물론, 보다 최근의 집합행동 연구, 수행성 논의, 내러티브에 관한 접근, 그리고 군중·대중·다중을 둘러싼 개념적 구분이 차례로 호출될 것이지만, 그 모든 이론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목적, 곧 시장에서 사람들이 왜 반복해서 같은 꿈을 함께 사게 되는지를 보다 정교하게 설명하기 위해 배치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