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에서 비트코인까지, 군중, 도박, 투기에 대한 이야기
투기와 도박의 역사를 하나의 계열로 묶어 읽으려는 시도는 자칫 서로 다른 제도와 자산, 시대와 기술을 무리하게 평준화하는 위험을 안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교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건들이 반복해서 동일한 구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에는 희귀한 꽃구근이, 어느 경우에는 식민지 무역회사와 국가부채가, 또 어느 경우에는 주택담보대출을 재료로 가공한 구조화증권과 신용파생상품이,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중앙은행도 금속도 아닌 디지털 코드가 그 매개물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내부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가 현재의 가격을 선도하고, 그 가격 상승이 다시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며, 이러한 강화된 신뢰가 더 많은 참여자를 끌어들이는 순환은 놀라울 만큼 익숙한 형식으로 되풀이되어 왔다. 그렇게 볼 때, 투기의 역사는 자산의 역사이기 이전에, 집합적 기대가 경제적 사실처럼 조직되는 방식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보면, 튤립 투기는 오랫동안 상상되어 온 것처럼 단순히 어리석은 대중이 꽃 한 송이에 나라를 말아먹은 사건으로 읽기 어렵다. 16세기 중반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유럽에 들어온 튤립은 네덜란드에서 희귀성과 변종의 아름다움, 원예 지식과 식물 수집 문화가 결합한 특수한 취향의 대상이 되었고, 특히 1630년대 중반에는 보기 드문 품종을 둘러싼 수요가 거래를 과열시켰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꽃의 미적 가치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일정 시점 이후 거래는 이미 손에 쥔 구근을 교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장차 인도될 구근에 대한 계약과 재판매의 연쇄로 확대되었으며, 이 때문에 거래 참가자들은 눈앞의 사물을 사는 동시에 미래의 더 비싼 판매 가능성을 함께 사고 있었다. 대중적 서사 속의 튤립은 흔히 완전한 집단 광기와 전사회적 파산의 상징처럼 소비되어 왔지만, 앤 골드가의 연구가 보여주듯 후대의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상당 부분 과장해 왔고, 적어도 네덜란드 사회 전체가 단숨에 무너졌다는 식의 묘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비교적 제한된 네트워크 안에서, 명예와 안목, 취향과 신용이 서로 얽혀 있던 상인·수집가 집단이 희귀성과 유행의 상징 자본을 가격의 형태로 번역했다는 점이며, 바로 그 때문에 튤립 투기는 순수한 경제사건이기보다 미적 판단과 사회적 합의, 그리고 거래 가능한 미래가 서로 접속된 문화적 사건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다시 말해 이 시기 거래된 것은 단순한 식물이라기보다, 희귀한 것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의 안목과, 남들보다 먼저 다음 가격을 예감하는 사람의 위치였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튤립 투기가 후기의 금융 버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정교한 시장 장치 위에서 벌어졌음에도, 이미 군중심리와 내러티브, 그리고 수행성의 핵심 요소를 모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름답고 희귀한 품종에 대한 평가가 빠르게 가격으로 번역되고, 그 가격 상승이 다시 그 품종이 특별하다는 확신을 강화했으며, 그 확신이 다시 거래를 부추겼다는 점에서, 튤립 투기는 가격이 정보를 반영하는 결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시 의미를 생산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사건은, 훗날 찰스 맥케이류의 이야기에서 군중의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교훈담으로 굳어졌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실제 사건과 그것에 대한 후대의 기억이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버블이 언제나 붕괴 순간에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붕괴 이후 그것을 서술하는 방식 속에서도 재구성된다는 점을 뜻한다. 즉, 튤립 투기는 하나의 경제적 사건인 동시에, 근대 사회가 스스로의 투기적 충동을 어떻게 이야기의 형식으로 기억하고 도덕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적 사례이기도 하다.
존 로의 미시시피 계획으로 오면, 투기의 문법은 훨씬 더 거대한 규모에서, 그리고 훨씬 더 직접적으로 국가와 화폐, 제국과 공공부채의 문제와 결합한다. 1716년 설립된 방크 제네랄, 그리고 그 직후 프랑스 식민지와의 무역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도록 설계된 회사는 처음부터 단순한 무역회사라기보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던 프랑스 국가를 새로운 신용 체제로 재조직하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었다. 존 로는 지폐 발행과 부채 전환을 통해 유동성을 확대하고, 국채를 회사 주식으로 바꾸는 구조를 통해 국가부채를 시장적 기대의 대상으로 전환하려 했으며, IMF의 장기 부채사 개관이 보여주듯 이는 일종의 debt-for-equity 전환을 국가 단위로 확대한 사례였다. 이때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는 단지 먼 식민지가 아니라, 아직 현실로 검증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거대하게 상상될 수 있는 미래의 부, 곧 프랑스가 재정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약속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이런 의미에서 미시시피 사건은 식민지 투기이기 이전에 국가신용의 연극이었다. 사람들은 배당이나 실물 교역의 성과를 보고 뛰어든 것이 아니라, 제국이 열어줄 부, 그리고 새로운 금융질서가 과거의 재정난을 지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꺼번에 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시장의 군중이 단지 사인들 사이의 모방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생산하거나 승인한 서사와 결합하여 증폭되었다는 데 있다. 프랑스의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 식민지에서의 막대한 부, 지폐를 통한 유동성의 확장, 그리고 주가 상승이 만들어내는 가시적 성공이 서로 하나의 회로로 묶이면서, 미시시피 회사 주식은 단순한 기업지분을 넘어 새로운 체제의 표지처럼 읽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투기는 도박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도박이라는 이름을 벗는다. 그것은 국가를 재건하는 금융혁신이 되고, 식민지의 미래를 선취하는 합리적 계산이 되며, 돈의 흐름을 근대화하는 개혁의 언어를 입는다. 그러나 이 모든 정당화의 바탕에는, 미래가 현재의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는 동일한 구조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금화로의 교환 요구, 지폐 신뢰의 흔들림, 인플레이션 압력과 같은 요소가 겹치기 시작하자, 바로 그 기대의 회로가 역방향으로 작동하며 빠르게 붕괴했다. 이 점에서 미시시피 사건은, 서사가 단지 가격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 그리고 국가가 서사의 후원자가 되는 순간 군중은 더욱 넓고 빠르게 조직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영국의 남해회사 버블은 미시시피 사건과 거의 같은 시기에 전개되었지만, 그 정치경제적 구성은 또 다른 변형을 보여준다. 남해회사는 스페인령 남아메리카와의 무역권을 명분으로 설립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영국 정부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1720년의 급등은 그 구조가 얼마나 강한 투기적 에너지를 내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케임브리지의 금융사 연구가 지적하듯 이 사건의 핵심에는 공공부채를 회사 주식으로 전환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있었고, 영란은행이 남긴 역사 자료 역시 남해회사와 국가부채, 그리고 주식시장의 열광이 강하게 얽혀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서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실제 무역 수익이 아니라, 제국적 교역의 확장과 정부 재정의 안정이 회사의 가치와 함께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다시 말해 남해회사 주식은 기업의 현재를 사고파는 증서가 아니라, 국가와 제국의 미래를 압축해 놓은 표지처럼 작동했다. 그리고 그 가격이 상승할수록, 그 표지가 말해 주는 미래는 더욱 그럴듯하게 보였다.
남해회사 버블을 조금 더 깊게 읽으면, 투기의 군중이 어떻게 근대적 평등의 감각과 결합하는지도 드러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은 주식시장, 국가가 뒷받침하는 듯 보이는 구조, 제국적 팽창이라는 대서사, 그리고 이미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눈앞의 신호는, 시장을 신분 질서의 외부에 있는 개방적 공간처럼 보이게 만든다. 물론 실제로는 정보와 자본의 격차가 존재했고, 신용을 활용한 거래 역시 특정 계층에 더 유리했겠지만, 형식적 개방성 자체가 사람들에게 강한 정동적 흡인력을 제공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최근 연구가 남해회사 시기 신용 제공과 마진 대출이 거래 행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당시에도 이미 단순한 현물 교환이 아니라 미래 가격을 향한 레버리지적 베팅이 시장을 확장시키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점에서 남해회사 버블은, 군중이 단지 거리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폭주가 아니라, 신용과 부채, 개방된 참여의 감각이 결합된 금융적 군중으로도 조직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제 시선을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미국 주택시장으로 옮기면, 투기의 문법은 더 이상 낭만적 제국 서사나 희귀한 상품의 수집욕이 아니라, 매우 일상적이고 심지어 건전해 보이는 가치, 곧 내 집 마련과 안정된 자산 축적의 욕망 속에 스며든다. 서브프라임 위기 이전 수년간 미국에서는 신용도가 낮은 차입자들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확대되었고, 이 대출들은 즉시 증권화되어 글로벌 투자자에게 판매될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되었다. 연준사 자료가 잘 보여주듯, 대출기관은 대출을 장기 보유하기보다 판매할 수 있었고, 투자은행과 시장 참가자들은 위험을 트랜치로 쪼개고, 일부 손실을 하위 구조에 몰아넣으며, 겉으로는 안전해 보이는 상위 등급 상품을 만들어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위험을 제거했다기보다, 상승하는 집값이라는 배경 속에서 위험을 잠시 잘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믿음은 차입자의 상환능력에 대한 우려를 가렸고, 유동성 확대는 다시 집값을 떠받쳤으며, 집값 상승은 다시 이러한 대출 관행을 정당화했다. 이처럼 주택시장은 단순한 실수요 시장이 아니라, 미래 가격 상승을 전제로 한 거대한 기대의 장이 되었다.
여기서 파생상품과 구조화금융은 투기의 집합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밀어 올렸다. BIS 연구가 정리하듯, 위기 직전 발행된 CDO의 상당수는 서브프라임 MBS로 구성되어 있었고, 여기에 CDO를 다시 기초자산으로 삼는 CDO-squared 구조까지 겹치면서, 위험은 분산되기보다 서로의 내부로 접혀 들어가 더욱 복잡한 형태로 축적되었다. 필라델피아 연은의 분석 또한, 이 상품들이 왜 '재앙적 손실(catastrophic loss)'에 취약했는지를 보여 주는데, 겉으로는 높은 등급과 정교한 구조가 안정성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상관관계 상승과 주택가격 하락이 동시에 닥칠 때 손실 흡수 구조가 빠르게 무너졌다. 이 지점에서 파생상품은 고전적 버블과 구별되는 동시에 다시 그것들과 닮아간다. 희귀한 꽃이나 식민지 대신 수학적 모형과 등급 체계, 구조 설계가 미래에 대한 믿음을 떠받치고 있었을 뿐, 실체는 여전히 현재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자신 있게 가격에 반영하는 문제였다. 다시 말해, 서브프라임 위기는 투기가 더는 군중적 열광의 언어를 쓰지 않아도, 리스크 관리와 금융혁신의 언어를 통해 얼마든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열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다 냉정하고 기술적인 어휘 속으로 잠입해 있었던 것이다.
이 사례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도박과 투기의 경계가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지워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도박에서는 사람들이 우연에 돈을 건다는 사실을 비교적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구조화금융의 세계에서는 동일한 베팅이 헤지, 분산, 신용보강, 정교한 가격화 같은 말들 속에 숨어들었다. 위험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더 넓게 퍼졌고, 그 과정에서 시장 참가자들은 자신이 우연에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조차 잃어버리기 쉬웠다. 그래서 서브프라임 위기는 고전적 버블보다 덜 극적이거나 덜 감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훨씬 더 현대적인 형태의 군중 현상을 보여준다. 군중은 더 이상 한곳에 모여 환호하지 않는다. 대신 같은 모델과 같은 등급, 같은 낙관적 전제를 공유함으로써, 조용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동일한 방향에 베팅한다. 이처럼 분산된 군중, 기술화된 군중의 개념 없이는 2008년의 위기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비트코인은 이 계보 위에 놓이면서도 또 다른 차이를 드러낸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백서에서 비트코인은 본래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는 개인 대 개인 전자화폐로 제안되었고, 작업증명과 분산 원장을 통해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술적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출발점만 보면, 그것은 중앙은행 화폐나 신용중개에 대한 불신을 우회하려는 인프라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David Yermack이 지적했듯, 실제 비트코인은 통상적 의미의 화폐가 수행해야 하는 교환수단, 가치저장수단, 회계단위의 기능을 안정적으로 수행하지 못했고, 오히려 높은 변동성과 투기적 수익 추구의 대상이라는 특징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이는 비트코인이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기술적 설계의 의미가 시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다른 서사로 재번역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즉, 비트코인은 결제 인프라이기보다 디지털 희소성, 국가 밖의 화폐, 검열 저항, 인플레이션 헤지, 시대정신의 선취라는 이야기들의 집합이 되었고, 이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가격의 정당화 자원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코인은, 고전적 버블과 달리 실물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순수한 내러티브 자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버블 일반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낸다. 류우와 치빈스키의 연구가 보여주듯 암호화폐 수익률은 전통적 주식시장·환율·원자재 요인들에 대한 노출이 크지 않으며, 대신 투자자 관심과 시장 내부 요인에 의해 더 잘 예측된다. 다른 연구들도 구글 검색량과 트위터 게시량 같은 주의(attention) 지표가 암호화폐 수익률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음을 확인해 왔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은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주목하는지가 곧바로 가격의 일부가 되는 자산이며, 그만큼 군중심리와 내러티브, 수행성의 구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새로운 통화혁명의 신호로 읽고, 그 읽기가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리며, 상승 그 자체가 정당화의 재료가 되는 구조는, 사실 튤립이나 남해회사에서 보았던 구조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차이는 그 매개가 정원과 항구, 은행과 증권사가 아니라 알고리즘, 거래소 앱, 소셜미디어, 온체인 데이터라는 점일 뿐이다.
이상의 사례들을 하나로 다시 묶어보면, 우리는 투기의 역사에서 네 가지 반복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거래의 대상은 언제나 눈앞의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이 약속하는 미래였다. 둘째, 그 미래는 언제나 서사의 형식을 통해서만 대중적으로 유통될 수 있었다. 셋째, 가격은 그 서사를 단지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강화하고 증폭하는 엔진으로 작동했다. 넷째, 참여자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 움직인 것이 아니라, 시대를 먼저 알아본 사람, 남들보다 앞선 사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함께 사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버블은 비합리성의 일회적 폭발이라기보다, 불확실한 미래를 다루는 근대적 방식이 과잉으로 드러난 순간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다음 장에서 설계하게 될 실험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왜 사실을 무시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이야기와 가격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집합적 기대를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가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