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갈비 맛의 원점

봉운장 갈비

by 글곧

어린 시절, 맛에 대한 기억은 미각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아버지가 모임이 있어 외출하셨다가 늦은 오후 골목 어귀에 나타날 시간이 되면, 나는 어느새 대문 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빈손으로 오실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 정말 가끔은 — 누런 포장지에 기름이 배어 반투명해진 꾸러미를 한 손에 들고 들어오셨다. 소갈비였다. “혼자만 먹기 뭐 하다”는 말씀과 함께 내려놓으시던 그 두어 대의 갈비. 차갑게 식었어도 달고 짭짤한 양념이 뼈 사이에 촘촘히 배어 있던 그 맛은, 지금 생각해도 입안 어딘가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맛의 기억이란 묘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흐릿해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맛들 사이에서 자꾸 비교의 기준이 된다. 수십 년이 흘러 숱한 갈비를 먹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누런 종이 꾸러미의 맛을 향해 무언가를 재고 있었다.

그 기준에 처음으로 닿은 곳이 아직 세상에 소문이 나기 전 초창기의 이동갈비다. 연탄불 위에서 양념이 타들어 가며 내뿜던 연기, 그리고 갈비를 한점 밥 위에 얹어 먹던 맛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꾸러미와 어딘가 같은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맛은 어느 틈엔가 상업화의 물살에 쓸려 갔다. 음식이 유명해지는 순간, 원래의 맛은 종종 그 자리를 비워주어야 한다.


그로부터 또 수십 년이 지났다. 몇 해 전 춘천 CC에 골프를 치러 갔다가, 라운드를 마친 뒤 한 지인이 무심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시내에 오래된 갈빗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한번 가봤어요?” 봉운장이라는 이름이었다.

중앙로터리에서 도청 방향으로 올라가다 좌측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 이백여 미터를 걸어가면 있는 이 집을 찾아가면서 솔직히 기대는 반, 반신반의가 반이었다. 춘천 시내 골목 안쪽의 오래된 갈빗집이라니, 얼마나 대단하겠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첫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 맛이다!”

숯불 위에 올려진 커다란 갈비 두어 대가 직화에 구워지며 양념이 서서히 캐러멜화되는 그 냄새부터 달랐다.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갈비만 베어 물었을 때 — 간장과 배와 마늘이 오랜 시간 고기 결 속에 스며들어 만들어낸, 달거나 짜거나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깊은 맛 — 입안에 침이 서서히 고여 드는 그 느낌. 어린 시절 아버지의 누런 종이 꾸러미가, 초창기 이동갈비의 맛이 기억 속에서 동시에 깨어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봉운장은 단순히 오래된 집이 아니었다. 이동갈비를 비롯한 경기·강원 일대 양념갈비 문화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집이 나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부터 기준으로 삼아온 그 맛의 진짜 시작점이, 이 춘천 골목 안에 조용히 앉아 있었던 셈이다.


봉운장의 갈비는 간장과 식초에 저민 양배추, 얇게 썬 양파와 함께 먹어도 잘 어울린다. 고기의 달큰한 양념에 채소의 산미가 더해지면 입안이 가벼워지면서 다음 점을 자꾸 부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이, 갈비 그 자체만으로 먹는 방식을 고집한다. 맛의 원점을 느끼고 싶을 때는 군더더기가 필요 없다.

값은 솔직히 싸지 않다. 서울 강남의 갈빗집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가격이다. 그러나 1인분의 양이 다르다. 처음 주문했다가 접시를 보고 눈이 동그래지는 분들을 여러 번 목격했다. 소식가라면 혼자 1인분이 버거울 만큼 넉넉하다.


한 번은 혼자 그 맛을 누리고 돌아오는 길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 두고 온 사람이 생각났다. 1인분을 포장해서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포장지를 열어 오븐에 넣더니, 채 5분도 되지 않아 그 많은 1인분을 숨도 고르지 않고 비워버렸다. “냄새가 죽이지요? “라고 물을 새도 없었다. 아까 잔뜩 먹었다는 소리, 괜찮다는 말, 다 의미가 없었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갈비를 보며 나는 조용히 후회했다.

“2인분을 사 왔어야 했는데,,”


음식에 대한 에세이를 쓰다 보면 흔히 ‘추억의 맛’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추억의 맛이 정말 위험한 것은, 현실에서 그것을 다시 만났을 때다. 대부분은 실망으로 끝난다. 기억이 너무 아름다웠거나,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거나 하기 때문이다.

봉운장 갈비는 그 드문 예외에 속한다. 기억과 현실이 포개지는 순간, 어린 시절 대문 앞을 기웃거리던 아이와 지금의 내가 잠깐 같은 자리에 서는 느낌. 그것이 이 집 갈비가 가진 힘이다.

춘천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한번 찾아가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당부드린다., 반드시 2인분을 싸 가시길. 1인분은, 반드시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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