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산박 개조 수리조선을 준비하자
세계 최대 수리조선 독, 그곳엔 한국 선박이 있었다
2019년 중국 저우산(舟山)에서 목격한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세계 최대 수리조선 독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확인하러 간 그곳에서, 나는 한국 조선업의 잃어버린 기회를 목도했다.
상하이를 거쳐 저우산공항에 내린 뒤 다시 배로 1시간. 육횡도(六橫島)라는 섬에 도착하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저우산 COSCO 해운중공업’, ‘저우산 신야조선소’, ‘저우산 롱샨조선소’. 해변을 따라 늘어선 조선소마다 대형 크레인이 하늘을 찌르고, 수리와 개조를 위해 들어온 초대형 선박들이 겹겹이 안벽에 계류되어 있었다. 그중 상당수가 한국 선사의 배였다.
당시 이곳이 북적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강화된 환경규제 때문이었다. 2020년부터 시행된 IMO 2020은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로 대폭 낮췄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항만 입항이 불가능하다. 선사들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비싼 저유황유를 쓰거나, 스크러버(scrubber·황산화물 저감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스크러버 설치가 경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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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산 COSCO 해운중공업은 원래 신조선과 수리조선을 7대 3 비율로 진행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독(dock)이 선박 개조와 정기 수리로 가득 차 있었다.
저우산 신야조선소는 더 놀라웠다.. 중국 내 5대 수리조선소인 이곳은 최근 길이 610m, 폭 91m의 세계 최대 수리조선 독을 완성했다. 초대형 유조선(VLCC) 2척을 동시에 작업할 수 있는 이 독에는, 내가 방문했을 때 한국 선사의 선박을 포함해 총 5척이 함께 수리 중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2만 TEU급은 물론, 앞으로 나올 3만 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까지 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독입니다.”
저우산 롱샨조선소는 케이프사이즈급 독 등 2개의 독으로 연간 200척을 처리하는데, 놀랍게도 그중 30%가 한국 고객이라고 했다.
신조선 호황기만큼은 아니지만, 수리조선 수요가 늘면서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 중국 각지에서 숙련공을 데려온다고 한다. 롱샨조선소는 수리와 개조에 필요한 기계, 전기 인력을 하청 주지 않고 직접 고용해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저우산 군도는 수많은 섬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정온(靜穩) 수역이다. 파도가 잔잔해 부두에 3중 접안까지 가능할 정도다. 자연이 만든 최적의 조선소 입지인 셈이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이 기회를 잡지 못했을까?’
저우산 COSCO는 신조선 시황이 나빠지면 개조와 수리조선에 집중하는 유연한 전략으로 조선소를 유지한다. 그런데 우리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성동조선, STX조선, 오리엔트조선 같은 중소 조선사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만약 이들이 힘을 합쳐 선박 개조 시장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구나 앞으로의 선박개조는 기존과 다른 고부가가치 작업이 될 것이다. 무탄소배출 친환경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선박이 당장 무탄소연료 선박을 건조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선은 저탄소배출 방식으로 선박을 짓고 추후 무탄소연료 선박으로 개조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물론 기존 선박의 친환경선박으로 개조수요도 커질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조선소 인근에 폐기물 처리 시설을 공동으로 구축하고, 합리적인 환경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선박 개조는 환경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황산화물 배출을 줄여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이다. 이를 시민사회와 공유하고 설득해야 한다.
인력 확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군산, 목포, 거제 등 조선소 밀집 지역에 수리·개조 전문 기술학교를 만들고, 재직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특성화고, 전문대와 연계해 청년들이 이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중소 조선소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한다. 중소 조선소들이 개별적으로는 중국과 경쟁하기 어렵다. 하지만 컨소시엄을 만들어 물량을 나눠 받고, 부자재를 공동 구매하고, 기술 인력을 공유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이를 위한 재정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사실 우리에겐 중국에 없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한국 선사들이다. HMM, 팬오션, 대한해운 등 국적선사들이 보유한 수백 척의 선박이 향후 몇 년 후 친환경 개조가 필요하다. 이들을 국내 조선소로 유도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면, 당장 일감이 생긴다.
우리의 기술과 품질은 세계 최고다. 부족한 건 시스템과 의지다. 중국 저우산에서 목격한 한국 선박들의 모습은, 우리가 놓친 기회에 대한 경고이자 아직 남아 있는 기회에 대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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