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 전략화 시급하다

by 글곧

2024년 여름, 한국의 한 중견 해운사 대표는 중국 조선소를 방문했다. 벌크선 5척을 발주하기 위해서였다. 국내 조선소에도 견적을 받았지만, 중국 조선소 제시가는 척당 3,000만 달러로 국내보다 1,000만 달러 가까이 저렴했다. “애국심만으로는 회사를 지킬 수 없다”는 그의 한숨 섞인 말은, 한국 조선업이 직면한 구조적 딜레마를 압축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중국 조선·해운 산업의 불공정 행위에 관한 301조 조사」. 보고서는 중국의 조선·해운 지배력이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불공정 개입으로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이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렸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는 물론 국가 안보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평가였다.

조선·해운업을 시장 논리에만 맡겼을 때 나타난 국가의 위험노출 결과이다.


중국의 압도적 부상과 미국의 붕괴

숫자는 명확하다. 중국의 조선 시장 점유율은 1999년 전 세계 톤수 기준 5% 미만에서 2023년 50% 이상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상선대 보유 비중 역시 전 세계의 19% 이상으로 확대되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23년 전 세계에서 건조된 컨테이너선의 62%, 벌크선의 68%, LNG선의 31%가 중국 조선소에서 나왔다. 중국은 상하이, 대련, 광저우 등지에 초대형 조선소를 집중 배치하고, 연간 2,000만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이상의 건조 능력을 확보했다. 한국(1,400만 CGT)과 일본(500만 CGT)을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이러한 지배력이 정부의 불공정 개입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조선업 중장기 발전 계획’을 추진하며 토지 무상 제공, 저리 융자, 수출 보조금, 세제 혜택 등 다층적 지원을 쏟아부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조선업에 투입된 직간접 보조금은 최소 1,320억 달러(약 180조 원)로 추산된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과 일본의 조선 지원 예산을 합친 것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반면 미국은 지난 20여 년간 조선과 해운업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하다. 미국은 현재 글로벌 선박 건조 능력의 0.1%만을 보유하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미국은 세계 조선 시장의 17%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소형 경비함과 해군 함정 외에는 사실상 건조 능력이 없다. 2023년 미국에서 건조된 상선은 단 7척, 모두 합쳐도 10만 톤이 안 된다. 같은 해 중국은 2,300만 톤 이상을 건조했다.


뒤늦은 각성, 미국과 일본의 반격

위기를 인식한 미국은 급선회했다. 2025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해양 지배력 회복(Restoring American Maritime Dominance)’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조선·해운업 재건에 나섰다. 행정명령은 200억 달러 규모의 조선업 재건 신탁기금 조성, 자국 내 건조 선박 의무화 확대, 국방부와 에너지부의 선박 건조 국산화 등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 조선업은 이미 건조 야드, 설계 기술, 숙련 인력 기반까지 붕괴된 상황이다. 대부분의 상선건조 조선소들은 문을 닫았고, 뉴포트뉴스 조선소등에서 항공모함과 잠수함만 건조할 뿐이다. 상선 건조 경험이 있는 숙련 용접공과 배관공은 거의 은퇴했거나 타 산업으로 이동했다. 미국이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 미국 내 조선소 재건을 위한 투자를 요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한화오션과 HD한국조선해양은 미국 정부와 미국 내 조선소 합작 투자 가능성을 논의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2024년 12월, 일본조선공업회, 일본선주협회, 일본해사협회, 일본선급협회 등 해사 클러스터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조선업 재생을 위한 긴급 정책 제언」을 정부에 제출했다. 제언의 핵심은 조선업을 ‘경제안보 차원의 전략산업, 경제안보산업으로 재정의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에너지·식량·자원 등 핵심 전략물자를 일본에서 만든 선박과 일본 해운 회사를 통해 운송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선박 강재비 차이를 보전하는 보조금 제도와 1조 엔 규모의 조선업 혁신 기금 조성을 요청했다.


애덤 스미스도 인정한 조선업의 특수성

흥미롭게도 자유무역론의 아버지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조차 『국부론』(1776)에서 조선업을 국가가 지원해야 할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로 언급했다. 그는 “조선업은 영국 해군력의 기반을 마련하고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핵심 산업이므로,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스미스가 『국부론』 제4편 2장에서 언급한 항해법(Navigation Acts)에 대한 지지는 이례적이다. 그는 평소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을 비판했지만, 국방에 기여하는 조선업과 해운업만큼은 예외로 두었다. “국방은 부(富) 보다 훨씬 중요하다(Defence is of much more importance than opulence)“는 그의 유명한 문구는 조선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압축한다.

250년 전 영국이 그랬듯, 21세기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도 같은 깨달음에 도달하고 있다. 조선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경제 안보와 국가 안보를 동시에 떠받치는 전략 산업이다.


한국의 선택: 지금 아니면 늦는다

미국과 일본의 조선업 부흥을 향한 절박한 움직임은 머지않아 한국에 닥칠 상황일지 모른다. 지금처럼 조선업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경우, 한국 또한 미국처럼 주요 선박 건조를 모두 중국에 넘겨주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들 모든 선박 건조에 대해 정책적 지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다음 몇 가지 부문에 대해 중국과의 선가차이를 보전해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첫째, 한반도 혹은 주요 수출입항로에서 전쟁 등 유사시 필수 전략물자인 에너지, 곡물, 생필품 등을 수송해야 하는 선박은 국가안보 및 경제안보를 위한 전략상선대로 이들 선박의 국내 건조를 위한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의 봉쇄가 빈번해지고 있는데, 지금처럼 외국선박에 과다하게 의존할 경우 에너지 등의 수송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우리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우리 선원이 승선한 우리 국적 선박이 필요한 이유이다.

둘째, 시장 실패가 두드러진 벌크선·유조선·중소형선 건조부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실패를 바로 잡기 위해서 이들 선박 건조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2024년 벌크선 수주 척수를 보면 중국 936척, 일본 352척에 비해 한국은 고작 1척에 불과하다. 케이프사이즈(Capesize) 벌크선의 경우, 중국 조선소는 척당 6,000만 달러에 건조하지만, 한국은 7,800만 달러를 받아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30% 가격 차이는 시장 경쟁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

문제는 가격만이 아니다. 벌크선은 전쟁 등 유사시 곡물, 철광석, 석탄 등 전략 물자를 운송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이 중단되자 글로벌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 만약 한국이 벌크선 건조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다면, 유사시 곡물과 자원 수송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는 국가 안보 공백이 발생한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중소형선의 건조가 거의 사라졌다. 이에 따라 다양한 선종과 선형에 맞는 선박기자재 산업 등 해사 클러스터 산업이 붕괴되기 일보 직전에 있다. 해사틀러스터의 붕괴는 조선업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다. 주로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산재해 있는 이들 해사 클러스터 복원을 위해 중소형 컨테이너선, 중소형 유조선, 중소형 벌크선, 특수선 등의 건조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조선업계의 노력도 필요하다. 특히 조선소간 분업을 전제로 대형 조선소와 중소형 조선소간의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원가 절감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정부지원을 바탕으로 대형조선소와 중소조선소를 합병하는 수직계열화를 만들었다.

전략산업 격상, 선택이 아닌 필수

조선업과 해운업은 안보와 국방, 무역과 직결되어 있는 산업이다. 특히 조선과 해운은 대미 통상현안에 대응하는 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키는 등 조선·해운업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만큼,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 국방부는 국가 차원의 통합 발전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하고, 이를 통합조정할 수 있는 국가조정자 역할기구도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조선정책과 해운정책은 주무부처가 분리되어 있어 정책 연계성을 찾기 어렵다. 조선과 해운 정책을 연계시키고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운영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조선·해운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격상하고 「조선·해운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둘째, 전략상선대와 벌크선·유조선·중소형선 등 시장 실패 부문에 대한 직접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중국과의 건조가격 차이가 보전되지 않으면, 국내 건조는 불가능하다. 중국과의 선가 차이 20~30%를 정부가 일부를 선사 또는 화주에 보전하는 ‘해운조선 경제안보기금 조성이 필수적이다.

셋째, 해운·조선·기자재 등 해사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선박용 엔진, 항해장비, 추진 시스템 등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선박 설계·해양 엔지니어링 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뒤늦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은 아직 세계 2위의 조선 강국이지만, 중국의 추격으로 중저가 시장 잠식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10년 후 한국도 미국처럼 “조선업을 되살려야 한다”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이미 늦다. 조선·해운업은 시장에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산업이다.

이전 05화중국 저우산 조선소에서 본 뼈아픈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