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년을 항해한 상선아카데미
그리스 아테네에서 남쪽으로 페리를 타고 한 시간, 에게해의 사로니코스만을 가로질러 도착하는 하이드라(Hydra)섬은 첫눈에 범상치 않다.
2025년 6월 국제해운회의소(ICS) 총회 참석차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그리스선주협회의 주선으로 하이드라섬을 갈 수 있었다. 자동차가 단 한 대도 없는 이 섬에서는 당나귀가 짐을 나르고, 항구 위로 회색 화강암 저택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저택들 중 하나, 항구 바로 위에 자리한 차마도스 맨션(Tsamados Mansion)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상선 아카데미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정식 명칭은 ‘Marine Academy of Hydra(하이드라 국립상선 아카데미)’. 설립 연도는 1749년이다.
필요가 낳은 학교
하이드라는 척박한 섬이다. 농사 지을 평지도, 내세울 천연자원도 없었다. 섬 인구의 거의 절반이 어떤 형태로든 해운업에 종사했으며, 조선·항해·금융·경영이 섬 안에서 수직 계열화되어 있었다. 바다 아니면 굶주림, 하이드라 사람들은 전자를 택했고, 그 선택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에 투자했다. 1749년, 이오아니스 수름파스(Ioannis Sourmpas)라는 하이드라 주민이 학교를 세웠다. 처음에는 ‘성(聖) 니콜라오스’라는 이름의 일반 학교였지만, 1800년 무렵에는 항해·상업·경제·언어 교육을 아우르는 진정한 해양 아카데미로 진화했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럼에도 하이드라 사람들은 굴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는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출신의 외국인 교사들이 항해 이론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지식이 곧 자유였던 시절, 이 섬의 아이들은 망망대해로 나가기 위해 책을 펼쳤다.
혁명과 전쟁을 이긴 학교
아카데미의 역사는 그리스 근대사의 굴곡과 정확히 겹친다. 1821년 그리스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하이드라 함대는 독립운동의 핵심 해군력이 되었고, 아카데미에서 항해를 배운 이들이 그 선박들을 몰았다. 이탈리아어 교사였던 펠리체 카세르타는 1817년부터 1821년까지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다가,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하이드라 선박에 올라 직접 싸웠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학교 건물마저 빼앗겼다. 독일-이탈리아 점령기 동안 건물은 이탈리아군에 징발되어 사령부로 사용되었고, 학교는 아테네와 피레우스 등지를 전전하며 명맥을 이었다. 1949년 11월 1일, 드디어 첫 두 학급이 하이드라로 ‘귀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정 안의 위령비
학교장이 우리 방문객을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교정 한편에 조용히 서 있는 전몰자 위령비다.
교정에 자리한 이 위령비는 2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아카데미 졸업생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그 희생의 규모를 짐작하려면 당시 그리스 상선의 운명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는 약 600척의 상선과 2만 명의 선원을 전쟁에 투입했고, 전쟁이 끝날 무렵 그리스 상선 선대의 60퍼센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그 선박들의 선원 피해가 컸었다고 한다. 이 숫자들 안에는 하이드라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선교(船橋)에 올랐던 젊은이들도 있었다. 학교장이 방문객을 위령비 앞에 먼저 세우는 것은 이 학교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이 학교를 거쳐 간 사람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가장 먼저 기억하자는 다짐이다.
세계 최강 선단의 뿌리
미국이 상선 교육기관을 처음 설립한 것은 1891년 펜실베이니아 해양학교가 생기면서인데, 이는 하이드라 아카데미보다 무려 140년이 늦은 것이다. 그 선두 출발의 이점은 복리로 쌓였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전쟁 잉여 선박인 리버티십과 빅토리십을 우호국에 저렴하게 매각하자, 그리스 선주들은 이를 전면적으로 매입했다. 글로벌 재건과 국제 무역 성장의 물결을 타고 그리스 해운은 크게 성장하여, 1970년에 이르러 그리스 상선대는 세계 최대 규모를 달성했고, 이 지위는 이후 50년간 이어졌다.
오늘날 세계 선복량의 약 3분의 1을 지배하는 그리스 해운의 저력 뒤에는, 수백 년에 걸쳐 유능한 해기사를 배출해 온 이 작은 섬의 학교가 있었다.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학교장 집무실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창밖으로는 에게해가 펼쳐지고, 실내에는 1800년대에 제작된 쇠로 만든 선원용 짐 트렁크가 놓여 있다. 이 무거운 철제 트렁크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한때 이 학교를 나온 선장들이 세계의 바다로 떠나며 품었던 꿈의 무게와 같다.
최근에는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Stavros Niarchos Foundation)이 아카데미를 지원하고 나섰다. 재단의 지원에는 역사적 건물의 보존·업그레이드 공사, 교실 첨단 기자재 도입, 국제 교육 기준에 부합하는 최신 브리지 시뮬레이터 설치, 그리고 졸업생을 위한 해외 장학금이 포함되어 있다. 275년 된 건물에 최신 항해 시뮬레이터가 들어선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이보다 더 선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을 상상하기 어렵다.
보편적인 고민, 다른 출발점
다부진 체격의 학교장과의 대화는 뜻밖에도 친숙한 방향으로 흘렀다. 세계 선복량의 3분의 1을 좌우하는 해운 강국 그리스에서도, 정작 바다로 나가려는 그리스 젊은이는 해마다 줄고 있다고 했다. 일자리는 넘치는데 사람이 없고, 학교는 있는데 지원자가 없다는 것이다. 해기사 부족, 청년 세대의 해기직 기피, 고령화하는 현장 인력. 우리가 마주한 문제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하지만 출발점이 다르다. 하이드라는 275년의 기록과 전통을 갖고 있다. 그 무게가 때로는 짐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산이다.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선장 클럽’을 만들고, 세계적인 재단이 기꺼이 후원하며, 전쟁 중에도 피난처를 찾아 수업을 이어간 학교. 그 이야기 자체가 가장 강력한 모집 공고다.
바다는 여전히 세계 무역의 90퍼센트를 실어 나른다. 하이드라의 교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내일의 선장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