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해운, 선사만의 숙제가 아니다

by 글곧

2050 넷제로, 바다에서 시작된 혁명

2024년 7월, 런던 IMO(국제해사기구) 본부에서 역사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2050년까지 해운 분야의 ’넷제로(탄소 중립)’를 달성한다는 목표와 함께,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에 금전적 부담을 지우는 규제가 승인된 것이다. 바다는 이제 더 이상 공짜 배출구가 아니다.

유럽은 한발 더 앞서 움직였다. EU는 2023년부터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해운업에 적용해, 유럽 항로를 지나는 모든 선사에 온실가스 할증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2024년부터는 유럽 항만에 기항하는 선박들에 저탄소·무탄소 연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FuelEU Maritime’ 규제를 시행 중이다. 함부르크나 로테르담 항에 입항하려면 이제 친환경 연료 증명서가 필수가 된 것이다.

숫자로 보면 그 파급력이 더 명확하다. 국제해운회의소(ICS)에 따르면, 전 세계 해운업계가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려면 향후 30년간 약 3조 달러(약 4,00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한국 선사들이 EU 규제만으로도 연간 5,000억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친환경 연료, 비싼 게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해운업계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화석연료를 버리고 친환경 연료로 전환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친환경 연료는 메탄올, 암모니아, 바이오연료, 액화천연가스(LNG) 등이다. 그런데 메탄올의 가격은 기존 벙커C유 대비 3~4배 높다. 머스크가 2023년 인도받은 세계 최초의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은 연료비만 연간 1,500만 달러(약 200억 원) 이상 추가로 든다. 암모니아는 아직 상용화 단계도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바이오연료도 벙커C유에 비해 2배 이상 비싸다.

바이오연료는 기존 화석연료에 30% 정도 혼합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인데, CMA-CGM이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바이오연료 30% 혼합 시 항해당 연료비가 약 40% 증가한다. 1만 TEU급 컨테이너선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운항할 경우, 기존 연료비 80만 달러에서 112만 달러로 뛰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공급망이다. 2024년 현재 전 세계 주요 항만 중 메탄올 벙커링(연료 공급) 시설을 갖춘 곳은 싱가포르, 로테르담, 앤트워프 등 10곳도 안 된다. 한국은? 울산항에서 시범 사업을 준비 중일뿐이다.


누가 이 비용을 내야 하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이 천문학적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해운업의 구조는 이렇다. 선박을 소유한 ‘선주’가 있고, 화물을 싣는 ‘화주’가 있다. 화주가 선박을 임대(용선)해 자기 화물을 운송하는데, 항로와 속도, 연료 선택 등 실질적인 운항 결정권은 화주나 용선자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온실가스를 실제로 얼마나 배출할지 결정하는 쪽은 화주라는 얘기다.

환경경제학의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에 따르면, 오염을 발생시킨 주체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화주가 “빨리 가라”라고 하면 선박은 속도를 높이고 연료를 더 태운다. 화주가 “싼 연료 써라”라고 하면 탄소배출이 많은 연료를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로 인한 환경 비용과 벌금을 화주가 분담하는 게 합리적이다.

실제로 EU는 탄소배출권거래제 규정에서 선사가 화주와 비용을 분담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그리고 글로벌 선사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세계 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2023년부터 ‘ECO Delivery’ 프로그램을 통해 친환경 연료 비용을 화주에게 전가하고 있다. 화주가 바이오연료 사용을 선택하면,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을 TEU당 부담금으로 받는 방식이다. 2024년 기준으로 부산-로테르담 항로의 경우 컨테이너 1개당 150~200달러의 친환경 할증료가 붙는다.

스위스 MSC(세계 1위), 프랑스 CMA-CGM(세계 3위), 일본 ONE도 마찬가지다. MSC는 2024년부터 ‘Green Fuel Surcharge’라는 이름으로 모든 유럽 항로에 환경 할증료를 부과하고 있다. 화주들은 거부할 수 없다. 대체 선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미 경험했다

사실 한국에도 선례가 있다. 2020년 1월 IMO가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 이른바 ‘IMO 2020’을 시행했을 때다.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기존 3.5%에서 0.5%로 낮추면서, 저유황유 가격이 급등했다. 톤당 200달러 하던 벙커C유가 450달러까지 뛰었다.

한국해운협회는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화주 단체와 수개월간 협의를 거쳐 ‘저유황유 할증료(LSS: Low Sulfur Surcharge)’ 도입에 합의했다. 컨테이너 1개당 30~50달러의 할증료를 화주가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삼성전자의 한 물류 담당자는 당시 “환경 규제 준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며 수용 입장을 밝혔다.

이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합리적 근거와 투명한 협의 과정만 있다면, 화주들도 환경 비용 분담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비용 폭탄이 온다

당초 IMO의 새로운 규제에 따르면, 5,000톤 이상 국제 항로 선박들은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초과할 시 톤당 100-200달러(1차 위반), 최대 480달러(반복 위반)의 부담금을 지불해야 한다. 1만 TEU급 컨테이너선이 부산-로테르담을 한 번 왕복하는 데 약 3,000톤의 연료를 소비하는데, 만약 기준을 초과하면 30만 144만 달러(약 4억~19억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2025년 이 조치의 결의를 1년 유예하면서 당초 계획대로 2027년부터 부과하려던 규제가 지연될 것이지만 조만간 본격적인 비용 부담이 다가올 것이다.


화주 함께 가자

결론은 명확하다. 선사와 화주가 친환경 전환 비용을 합리적으로 분담해야 한다.

첫째, 투명한 비용 산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해운협회와 한국무역협회가 공동으로 ‘친환경 연료 할증료 산정 위원회’를 구성해, 연료 종류별, 항로별 실제 비용 증가분을 객관적으로 계산하고 공개해야 한다. 2020년 저유황유 할증료처럼 말이다.

둘째, 단계적 부담 분담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갑자기 큰 비용을 화주에게 전가하면 반발이 클 것이다. 2025년 10%, 2026년 30%, 2027년 50% 식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셋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는 친환경 선박 건조에 대한 보조금(현재 선박당 최대 100억 원)을 늘리고, 친환경 연료 공급 인프라 구축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부산항, 인천항, 광양항에 메탄올·암모니아 벙커링 시설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넷째, 화주 기업들의 ESG 경영과 연계해야 한다. 삼성, 현대, LG 같은 대기업들은 이미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사 제품을 운송하는 선박이 친환경 연료를 쓰도록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ESG의 일부다. 실제로 애플은 2023년부터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아이폰을 운송할 때 머스크의 바이오연료 선박을 이용하고,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닥쳐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 여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을 기록했다. 해수면은 매년 3.4mm씩 상승하고 있다. 해운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를 차지한다. 비행기(2%) 보다 많다.

친환경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선사만의 책임도 아니다. 화주,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비용을 나누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50년 넷제로는 30년 앞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이 30년 후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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