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물류 대란 당시, 한 중견 제조업체의 구매담당 이사는 절박한 심정으로 여러 포워딩 업체를 수소문해야 했다. 반도체 부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LA항에 도착했지만, 내륙 운송과 통관 처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결국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외국계 포워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운송비는 평소의 3배 가까이 치솟았다. “국내에도 포워딩 업체가 수천 개인데, 왜 위기 상황에서는 선택지가 이렇게 좁을까?” 그의 한숨 섞인 질문은 한국 물류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물류의 설계자들
국제 물류 주선 업체, 이른바 ‘포워더(forwarder)’ 또는 ‘포워딩사’는 글로벌 무역의 숨은 설계자다. 이들은 화주를 대신해 운송 경로를 설계하고, 가장 비용 효율적인 화물 운송 방식을 선택한다. 서류 작성부터 통관, 포장, 창고 보관, 보험 가입, 최종 유통까지 배송 과정의 모든 업무를 통합 관리한다. 특히 국제 복합 운송의 주체로서 복잡한 국경 간 운송 및 각국의 규제 준수 사항을 다루는 기업들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부산의 한 자동차 부품 제조사가 독일 고객에게 제품을 납품한다고 가정해 보자. 포워더는 부산항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함부르크까지의 해상 운송을 선택하고, 함부르크에서 뮌헨까지의 철도 운송을 연결하며, 각 단계의 통관 서류를 준비하고, 운송 중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비한 보험까지 처리한다. 화주는 단 하나의 창구를 통해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을 해결할 수 있다.
포워더는 선박 등 운송 자산을 보유한 해운 업체와 긴밀히 협력하며, 화물 운송을 최적화하고 글로벌 무역의 복잡성을 해결한다. 화주를 대리해 물류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화물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며, 복합 운송의 담당자로서 선사의 해상운송 노선까지 선택하는 영향력을 갖는다. 화주-포워더-해운사의 삼각 구도가 원활하게 작동할 때 비로소 효율적인 글로벌 무역이 가능해진다.
글로벌 대형화 vs 국내 영세화의 격차
국제 물류 시장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포워딩 업체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화하며 복합 운송을 위한 네트워크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의 DHL, 덴마크의 DSV, 스위스의 쿠네+나겔(Kuehne+Nagel) 같은 업체들은 연간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 세계 주요 거점에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국내 상황은 대조적이다. 2023년 기준 국내 등록 포워딩 업체는 5,221개에 달하지만,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다. 2025년 기준 세계 35대 글로벌 해상 포워더에 LX판토스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삼성 SDS와 CJ대한통운 등 대기업 계열사조차 글로벌 톱 티어와는 규모 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중소 포워딩 업체들은 특정 노선이나 품목에 특화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글로벌 네트워크 부족으로 위기 상황에서 대응력이 떨어진다. 국제 물류 산업의 세계화가 부진한 배경에는 제도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쪼개진 관할권, 표류하는 정책
현재 물류 관련 정부 부처의 역할 분담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국토교통부는 육상 및 항공운송, 그리고 택배 등 국내 물류를 담당하고, 해양수산부는 해상운송과 항만을 관장한다. 그러나 국제 물류 주선업의 경우, 항공화물 주선과 해상화물 주선이 각각 다른 부처 소관으로 나뉘어야 논리적이지만, 실제로는 국제 물류 주선업 전체가 국토부 소관의 ‘물류정책기본법’에 묶여 있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한국 국제 물류의 99.7%가 해상으로 이뤄지지만, 해상화물 주선업을 포함한 국제 물류 주선업 전반이 국토부 관할이다. 2013년 국토해양부가 국토부와 해수부로 분리될 당시, 물류정책기본법을 명확히 분화시키지 못한 결과다. 해수부는 해운 업체를 관장하면서도 그들과 가장 밀접하게 연계된 국제 포워딩 정책은 추진하기 어려운 기묘한 처지에 놓여 있다.
더욱이 물류정책기본법의 대부분 조항은 국내 물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제 물류 사업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조항은 단 1개(제61조)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택배, 화물차, 물류센터 등 국내 물류 현안에 집중하느라 국제 복합 운송이나 포워딩 산업 육성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국제 물류 산업은 명확한 컨트롤타워 없이 표류하고 있다.
법 개정과 조직 재편, 실현 가능한 해법
해법은 명확하다. 물류정책기본법 중 국제 물류 부분을 ’ 국제물류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가칭)’로 분리하고, 해상운송을 포함한 국제 복합 운송 주선업의 등록 및 관리를 해수부로 이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운사와 포워더의 정책적 연계성을 높이고, 국제 물류 산업 육성을 위한 전담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법적 체계가 정비되면 실질적인 산업 육성책이 탄력을 받는다. 물류 전문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 해외 물류기업 인수를 위한 금융 지원, 해외 항만 및 물류단지 개발 참여 촉진 등이 일관된 정책 목표 아래 추진될 수 있다. LX판토스의 사례처럼, 정부의 체계적 지원과 민간의 적극적 투자가 결합될 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물류 기업이 탄생한다.
부산의 사례는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보여준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계기로 시민과 해양 전문가들은 해수부의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제 물류와 국제 물류 주선업 관련 규정이 이관된다면, 해수부는 명실상부한 ‘해양·항만·물류 통합 컨트롤타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부산항은 단순한 환적 항만을 넘어, 해운과 연계된 국제 물류 및 복합 운송의 진정한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경쟁력은 통합에서 나온다
화주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인프라를 제공하는 해운사와 물류를 최적화하는 포워더가 모두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쪼개진 관할권과 산만한 법 체계 아래서는 이러한 협업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기 어렵다.
국제 물류는 이제 단순한 운송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부품을 제때 목적지에 전달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제조 역량도 무용지물이 된다. 법과 조직의 재편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결단과 신속한 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