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머하벤 해양박물관 앞에서 항만투어버스에 올랐을 때, 나는 이것이 단순한 관광 프로그램이 아님을 직감했다. 버스는 일반인에게 폐쇄된 항만구역 깊숙이 들어갔다. 거대한 컨테이너 크레인들이 서있고, 수많은 컨테이너가 바둑판처럼 정렬된 터미널을 지나며, 가이드는 상세한 해설을 쏟아냈다.
"저 크레인의 높이는 138미터입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한 번에 2만 TEU를 실을 수 있습니다. 저 배는 마침 아시아에서 왔고요..."
놀라운 것은 가이드의 전문성이 아니었다. 버스를 가득 채운 브레머하벤 시민들이었다. 노부부는 손을 맞잡고 창밖을 응시했고, 젊은 부모는 아이에게 컨테이너선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자신들의 도시를 이해하려는 시민들이었다.
한국에서 항만은 대개 산업시설이다. 출입이 통제되고, 소음과 먼지를 배출하며,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그런데 브레머하벤에서는 시민들이 돈을 내고 항만을 구경한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녁, 나는 브레멘 공과대학 교수이자 해운경제물류연구소(ISL)의 연구위원인 홀거(Holger) 교수와 만찬을 함께했다. ISL은 1954년 설립된 유럽 최고의 해운물류 연구기관으로, 브레멘과 브레머하벤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02년 제가 함부르크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 " 홀거 교수가 와인잔을 들며 말했다. "브레머하벤은 작은 조선소와 어촌 정도였습니다. 인구는 줄어들고, 젊은이들은 떠났죠."
그의 회상은 정확했다. 1966년 5월, 미국 선박 FAIRLAND호가 독일 항만에 최초로 컨테이너를 가져왔다. 그것은 혁명의 시작이었다. 1971년 브레머하벤에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부두가 개장했고, 1968년 28만 4천 TEU에 불과하던 물동량은 1983년 69만 2천 TEU로, 1990년 110만 TEU로 폭증했다.
"중요한 건 위치였습니다." 홀거 교수가 덧붙였다. "함부르크는 엘베강을 50킬로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강물이 얕아지고, 대형선박은 조수 시간을 맞춰야 하죠. 반면 브레머하벤은 바다에 직접 면해 있습니다. 수심이 깊고, 언제든 입출항이 가능합니다."
2024년 기준 브레머하벤은 힘부르크에 이어 독일 제2의 컨테이너 항만이지만, 브레머하벤의 성장률은 더 가파르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홀거 교수가 설명을 이어갔다. "건물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생기고,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레스토랑, 박물관, 연구소가 들어섰죠. 브레머하벤은 컨테이너 덕분에 다시 태어난 도시입니다."
브레머하벤 시민들이 항만투어를 즐기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감사의 표현이다. 항만이 이 도시를 풍요롭게 만들었고, 일자리를 주었고, 미래를 약속했다. 컨테이너 크레인은 단순한 산업 장비가 아니라, 도시를 다시 살린 생명선이다.
한국의 항만도시들—부산, 인천, 울산, 광양—은 어떠한가? 우리는 항만을 경제적 자산으로만 보지, 도시 정체성의 일부로 여기지 않는다. 항만은 관광지가 아니라 물류시설이고, 시민의 자긍심이 아니라 환경 갈등의 원인이다.
그러나 브레머하벤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항만은 도시를 만들 수 있고, 도시는 항만을 사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산업시설의 규모가 아니라, 그것이 도시와 시민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투어버스에 탄 시민들의 눈빛, 항만을 설명하는 가이드의 자부심, 컨테이너 크레인을 가리키는 아이의 손가락—이것이 진짜 항만의 가치다.
항만은 도시의 번영을 실어 나르고, 도시는 항만에 감사를 보낸다. 그 순환 속에서 브레머하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