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새긴 세계의 지문(指紋)

한민족 언어의 흔적을 따라서

by 글곧

언어는 민족이 걷고 간 발자국이다

역사는 문서 속에만 잠들어 있지 않다. 때로 그것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땅의 지명 속에, 낯선 민족의 의례적 구호 속에, 사라진 제국의 황제 이름 속에 살아 숨 쉰다. 언어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주목해 온 진실이 하나 있다. 민족이 이동하면, 말이 남는다는 것이다. 씨앗처럼 땅에 박혀 그 민족이 사라진 후에도 싹을 틔우는 말의 화석들. 그 화석들이 동쪽으로는 일본 씨름판에서, 북쪽으로는 연해주 산맥의 이름에서, 서쪽으로는 거란 황제의 칭호에서, 그리고 놀랍도록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박물관 진열장에서까지 발견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저서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 흔적들을 들여다보자.


일본 씨름판에서 들리는 고구려의 함성 — “다가라!”

도쿄의 료고쿠(両国) 씨름 경기장. 두 거구의 선수가 서로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이는 순간, 부채를 든 심판이 소리를 지른다. “다가라, 다가라(だがら)” — 일본 관중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수백 년을 이어온 스모의 의례적 구호이지만, 정작 일본 학계에서도 어원을 명쾌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이 구호에 대해 이영희의 저서 『노래하는 역사』는 스모 경기 중 심판이 외치는 “다가라, 다가라”가 우리말 “다가가라, 다가가라”에서 유래한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함께 사용되는 “핫키요이(はっきよい)“라는 구호 역시 우리나라 북쪽 지역 방언의 “하기요(합시다)“에서 온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일본 학계에서도 두 구호 모두 그 어원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흥미롭다.

수백 년 전 고구려 유민이 일본 열도로 건너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씨름 장면이 선명히 새겨져 있으며, 씨름과 스모의 구조적 유사성은 학술적으로도 인정되어 있다. 고구려 유민들이 가져간 씨름의 원형과 말 조차도 스모로 박제되어 있는 것이다.


연해주의 가장 높은 산 “크나빠”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 나온다. 러시아인들은 그 산을 “크나빠(Кнапа)” 라고 부른다. 러시아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 이름이, 우리말 “큰아버지”의 음성 변형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산이 위치한 연해주는 단순히 19세기 이후 한인이 이주한 땅이 아니다. 거란, 고구려, 발해의 역사 문헌에서도 이 일대에 한반도 계통 문화권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음이 확인된다. 발해(698~926년)의 행정구역 솔빈부(率賓府)가 바로 이 연해주 지역에 해당하며, 이 일대는 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의 생활권이었다.

지명(地名)이란 그 땅에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말을 담는 그릇이다. 러시아인들이 이 지역을 점령한 것은 1860년 북경조약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산 이름을 붙인 사람들이 “가장 높은 산”을 자신들의 언어로 “큰아버지(가장 높은 어른)“라 불렀고, 러시아인들이 그 발음을 그대로 옮겨 “크나빠”로 표기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거란 황제의 이름 속에 살아 있는 “아버지”

916년,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떠오른 한 인물이 황제를 선포하며 요(遼)나라를 건국했다. 그의 이름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거란족 8부를 통합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이 이름의 후반부, “아보기(阿保機)”가 범상치 않다.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Alexander Vovin)은 야율아보기의 이름이 한국어 ‘아버지’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했다. ‘阿保機’를 현대 중국 북방어 계통관화로 발음하면 ‘아바오지’ 정도가 되는데, 거란족을 위시한 북방 유목민들은 아보기가 살았던 시기에도 이를 현대의 관화와 유사하게 발음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단순히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라, 부족의 대인(大人), 지도자, 보호자를 뜻하는 호칭이었다. 고대 동북아시아 유목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를 “아버지”로 부르는 문화는 폭넓게 퍼져 있었다.

거란국은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틈타 8 부족을 통일한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916년에 건국되어, 9대 210년 동안 존속하다가 1125년에 천조제(天祚帝)가 여진에 생포되면서 멸망하였다. 이 거대한 제국의 창업주 이름 자체가 “아버지”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것은, 거란족과 한반도 문화권 사이의 언어적 접촉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시사한다.


아파치족의 이름과 “아바치“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뉴멕시코 일대를 호령했던 아파치(Apache)족. 제로니모의 불굴의 저항으로 유명한 이 부족의 이름은 어디서 왔는가.

주류 서양 역사학계에서는 아파치족의 이름이 “적”을 의미하는 주니어(語) 단어 ‘아파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시각이 있다.

우리말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친족어가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부족장·대인(大人)·지도자를 부르는 존칭으로 쓰였으며, 한국어 어원 연구에 따르면 그 고형(古形)은 ‘아바지’ ‘아바기’ 형태였다. 여기에 벼슬아치, 장사치, 사냥아치처럼 사람을 가리키는 존칭 접미어 ’-치’ 가 결합되면 “아버지+치” 즉 “지도자인 분”이라는 의미가 구성된다. 서양의 탐험가들이 이 부족을 처음 만났을 때, 부족민들이 자신들의 족장을 “아바치(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그것을 종족명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파치족의 전투적 기질과 기동력은 놀라웠다. 19세기에 인디언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유명한 조지 크룩 장군은 그들을 “호랑이와도 같은 인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는 동북아 기마민족의 전투 전통과 정확히 겹친다. 고구려, 거란, 여진, 선비, 몽골로 이어지는 동북아 기마민족의 정신과 아파치족의 그것 사이에는 묘한 공명이 있다.


체로키족의 “오세요”

노스캐롤라이나주 스모키산맥 국립공원 근처, 체로키(Cherokee) 인디언 보호구역의 박물관. 그곳 전시실에 걸린 물건들이 한국인 방문자들에게 충격을 준다. 바가지, 채, 챙이, 맷돌, 절구. 우리 시골 부엌에서 할머니가 쓰던 그 물건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체로키 주식인 hominy(옥수수 가공식) 제조 과정에 사용된 도구들이다. 그런데 이 옥수수 가공체계가 한국 농가의 절구–맷돌–체–바가지 체계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의 인사말이다. 체로키족의 전통 환영 인사가 “오세요”와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말 ’오세요’는 “어서 오세요”와 함께 손님을 맞이할 때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이 말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메리카 원주민의 환영 인사와 음성적으로 유사하다는 관찰은, 민속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다.

물론 이것이 언어적 차용의 직접적 증거가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유사한 음절 구조는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생활 도구들의 형태 유사성은 또 다른 이야기다. 물 긷는 바가지, 곡물 찧는 절구, 곡물 가는 맷돌은 특정 생활 방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동일한 형태에 도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다. 이런 물건들이 동시에 발견될 때, 우리는 적어도 가능성의 문은 열어 두어야 한다.


애리조나 투손 인디언 박물관의 윷과 윷판

SNS에 올라온 글이다. “제 친형이 애리조나 투손에 살고 계실 때 놀러가서 인디언 박물관에 갔더니 윷과 윷판이 있더라구요. 보는 순간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요...”

애리조나주 투손(Tucson)의 인디언 박물관. 그곳 유리 진열장 안에 윷과 윷판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 놀이 윷놀이의 도구와 판이 아메리카 원주민 유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다.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고도로 구조화된 게임이다. 4개의 윷가락과 특정한 기호 체계로 이루어진 말판, 그리고 각 위치에 부여된 이름들. 이 복잡한 구조가 두 문화권에서 독립적으로 탄생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윷판의 구조가 고대 우주론을 반영한다는 연구도 있다. 윷판의 중심은 북극성을 상징하고, 28개의 말자리는 28수(宿) 별자리를 나타낸다는 해석이다. 이 우주론적 세계관이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와 공유된다면, 이는 단순한 놀이도구의 전파를 넘어 세계관의 이동을 의미한다.

아스텍 문명과의 연결을 연구한 배재대 손성태 교수는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에 아스텍 원주민들은 820년경 아스땅(阿斯達, 아사달)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다”라고 주장한다. 아사달은 고조선의 도읍지 이름이었다. 만약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9세기경 만주에서 어떤 한반도 계통의 집단이 베링해협이나 태평양 루트를 통해 아메리카로 이동했고, 그들이 가져온 놀이와 문화가 원주민 문화로 편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스텍 전사의 상투와 굿하는 여인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의 아스텍 벽화들. 그 속에 등장하는 전사들의 두식(頭飾)이 낯설지 않다. 상투를 튼 모습, 우리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들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한 형태. 그리고 또 다른 벽화에는 굿하는 여인의 모습이 있다. 무속 의례를 행하는 인물의 동작과 복식이 한국의 무당굿 장면을 연상시킨다.

손성태 교수는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Mexico”라는 이름이 우리 민족 집단 맥이족(貊夷族)에서 왔다는 것이다. 맥이족은 고구려와 부여의 핵심 구성 부족 중 하나로, 중국 문헌(『삼국지』 위지동이전)에도 등장하는 동북아의 실재했던 부족 집단이다.

아기를 등에 업는 육아 방식, 수유 시 “찌찌”라고 부르는 표현, 사주와 점복 문화, 정한수 의례의 유사성도 함께 지적된다.

나와틀어(아스텍어) 연구자들은 “Mexico”의 어원을 달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유사성의 관찰 자체는 흥미로운 연구 자극제가 된다.


열린 가능성으로서의 역사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을 하나의 지도 위에 펼쳐보면, 그 점들은 동쪽으로는 일본, 북쪽으로는 연해주, 서쪽으로는 거란 제국,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궤적을 그린다.

물론 이 궤적을 “한민족의 대이동”이라는 하나의 서사로 묶는 것은 성급하다. 일부 주장은 탄탄한 문헌 근거를 갖추고 있고, 일부는 흥미로운 가설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또 일부는 주류 학계와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 불균질 한 증거들을 아예 무시하는 것 역시 지적으로 정직하지 않다. 역사는 주류 학계가 인정한 것만이 사실이 아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통하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한때는 이단적 가설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문화인류학적 상상과 호기심으로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다. 왜 일본 스모의 심판 구호는 일본어로 해석되지 않는가? 왜 애리조나의 박물관에 윷판이 있는가? 왜 체로키 박물관에 우리 부엌 도구들이 걸려 있는가? 왜 거란 황제의 이름과 러시아의 큰 산 이름은 “아버지”처럼 들리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증명되지 않았으니 무시하거나, 증명되지 않았으니 연구하거나. 역사의 지평을 넓혀온 것은 언제나 후자의 태도였다.

다시 대학을 다닌다면 이라는 비현실적 질문에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했을 것이다. 아주 옛날 한민족이 걸어간 길의 끝이 어디인지, 흥미롭게 상상하는 일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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