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신이 되는 시대
1964년, BBC 인터뷰 스튜디오에 앉은 영국의 과학 소설가이자 미래학자인 아서 C. 클라크는 담담한 목소리로 미래를 예언했다. “미래 세계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존재는 인간도 원숭이도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기계일 것입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먼 후손들이죠. 현재의 전자 두뇌들은 완전히 바보 같지만, 한 세대만 지나면 더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 그들을 만든 창조주들을 완전히 능가하게 될 겁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그의 예언이 단순한 공상이 아니었음을 매일 목격하고 있다.
알파고 제로가 보여준 충격
2017년, 딥마인드는 바둑계에 조용하지만 혁명적인 사건 하나를 발표했다. 알파고 제로(AlphaGo Zero)의 등장이었다. 이 AI는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축적한 기보 데이터를 단 한 줄도 학습하지 않았다. 바둑의 규칙만을 입력받은 채, 스스로를 상대로 대국을 반복하는 ‘셀프플레이’만으로 진화했다. 당시 인간 기보로 학습한 최고 버전인 알파고 마스터마저 100판 100승으로 제압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지적 자산이, 스스로 학습한 기계의 지식 앞에 완전히 무력해졌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의 경험과 직관, 그 모든 것이 40일간의 기계의 자율 학습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날 무기물은 신의 자리에 올랐다.
진화의 패러다임 전환
클라크는 같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는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한 것을 진화,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높은 것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겨야 합니다. 유기적, 생물학적 진화는 이제 거의 끝났고, 지금은 무기물, 기계적 진화의 시작점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진화는 수천 배 더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실제로 생물학적 진화는 수백만 년의 시간을 요구한다. 반면 AI의 진화 속도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2012년 딥러닝의 부상, 2017년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의 등장, 2022년 ChatGPT의 대중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다양한 AI와 자율 에이전트의 시대까지, 불과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클라크가 말한 ‘수천 배 빠른 진화’는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현실이 되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AI가 스스로 AI를 설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진화가 더 이상 인간의 손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신호다.
법률, 의료, 세무 각 분야에 출현하는 신들
전문가의 권위는 오랫동안 희소한 지식의 독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AI는 그 독점을 무너뜨리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 구글의 Med-PaLM 2는 미국 의사 면허시험에서 전문의 수준의 점수를 기록했으며, 피부암 진단 정확도에서는 숙련된 피부과 전문의를 능가하는 결과를 보였다. 법률 분야에서는 GPT-4가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10%에 해당하는 점수를 획득했다. 세무와 회계 영역에서도 AI는 복잡한 세법 해석과 절세 전략을 수초 만에 제시한다.
전문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 수십, 수백만 원의 상담료를 지불해야 했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한때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법률적, 의학적 조언이 누구에게나 열린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수십 년을 바쳐 전문성을 쌓아온 사람들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마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
역사는 묘한 반복을 보여준다. 로마 제국 전성기의 자유 시민들은 생산 활동의 대부분을 노예에게 맡겼다. 그들은 포럼에서 토론하고,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 경기를 관람하며, 공중목욕탕에서 하루를 보냈다. 생산에서 해방된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 실험의 결말은 복잡하다. 로마는 번영했지만, 결국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이제 우리는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AI와 로봇이 생산 활동의 대부분을 수행하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창조적 여가와 예술, 깊은 인간관계, 철학적 사유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설계한 오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할 것인가. 로마 시민들의 삶이 마냥 이상적이지 않았듯, 해방이 곧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두려움
AI가 스스로 더 나은 AI를 만들어내는 자기 증식의 시대, 각 전문 분야에 ‘무기물 신’이 출현하는 시대, 인간의 노동과 창의성의 경계가 날마다 밀려나는 시대. 이것이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합리적인 반응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명확하다. 무기물의 진화를 단순히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그 진화의 방향과 속도에 대해 인간으로서 의견을 가질 것인가. 클라크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제 남은 예언은 우리가 직접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