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π)는 원의 둘레를 지름으로 나눈 값이다. 정의 자체는 단순하다. 그러나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이 숫자에 경이로움과 집착, 그리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 왔다. 3.14159265358979···로 이어지는 이 무한 소수 앞에서 인류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 — 그것이 너무나 '신적'으로 느껴졌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원을 신적 완전성의 상징으로 보았다. 플라톤은 원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도형이라 했고, 피타고라스 학파는 우주가 수(數)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러니 원의 비율을 지배하는 π는 단순한 상수가 아니라, 자연의 질서 그 자체를 담은 열쇠였다.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3세기, 원에 내접하고 외접하는 정다각형을 정교하게 다듬어 π의 값을 3.1408과 3.1429 사이로 좁혔다. 신의 영역처럼 보였던 수를 인간의 이성으로 포위하려 한 시도였다.
바다 위의 기하학
그런데 π의 진정한 힘은 철학 서재 안에서만 발휘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망망대해 위에서도 살아 숨 쉬었다. 대항해시대, 선원들이 육지를 벗어나 미지의 바다를 건널 수 있었던 배경에는 π를 바탕으로 한 정밀한 계산이 있었다.
당시 항해에서 가장 중요한 좌표는 위도(latitude)였다. 선원들은 밤하늘의 북극성이 수평선으로부터 얼마나 높은 지를 재어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다. 북극성의 고도각이 곧 그 지점의 위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의 위도와 오늘의 위도를 비교하면, 자신이 얼마나 북쪽 또는 남쪽으로 이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여기에 π가 등장한다. 지구는 구(球)이며, 그 둘레는 지름에 π를 곱한 값이다. 지구의 반지름은 약 6,378km이므로, 둘레는 2 × 6,378 × π 40,075km가 된다. 이 둘레를 360도로 나누면, 위도 1도에 해당하는 실제 거리가 나온다. 약 111km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1497년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향할 때, 그의 항법사들은 매일 밤 천체 관측 기구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로 별의 고도를 쟀다. 어느 날 저녁 북위 34도에 있던 함대가 이튿날 밤 북위 35도에 도달했다면, 그들은 남쪽으로 약 111km를 항해했음을 알 수 있었다. GPS도, 인공위성도 없던 시대에 π는 그들의 나침반이자 지도였다.
해리(海里), 바다를 재는 단위
항해가 정밀해질수록, 거리를 재는 단위도 필요해졌다. 선원들은 위도의 개념을 거리 단위로 변환했다. 위도 1도를 60으로 나눈 것이 '위도 1분(分)'이고, 이 위도 1분에 해당하는 거리를 1해리(nautical mile)로 정의했다. 계산하면 약 1.852km다. 선박의 속도를 나타내는 '노트(knot)'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1노트는 시속 1해리, 즉 시간당 약 1.852km를 의미한다.
이 단위 체계는 π에서 출발한 것이다. 지구가 완전한 구(球)이고, 원의 둘레를 π로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해리도 노트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은 대략 북위 35도, 제주 남쪽 해역은 북위 33도다. 두 지점의 위도 차는 약 2도, 남북 거리로 환산하면 약 222km, 해리로는 약 120해리가 된다. 오늘날 우리가 배로 제주를 오가는 거리가 사실은 π를 통해 계산된 수치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위도를 정복한 역사
항해의 역사는 어쩌면 위도를 정복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대서양을 횡단한 콜럼버스도, 인도양을 건넌 마젤란의 함대도 먼저 원하는 위도까지 북상 혹은 남하한 뒤, 그 위도선을 따라 동서로 항진하는 전략을 즐겨 사용했다. 특정 위도대에서 부는 무역풍이나 편서풍을 타기 위해서였다.
바다 위에서 선박은 포장된 길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라는 거대한 구의 표면, 즉 원 위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곡면을 계산하는 언어가 바로 π였다. 탐험가들이 미지의 수평선 너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용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 손에는 π로 완성된 계산이 있었다.
3월 14일, 파이 데이에 태어난 이들
흥미롭게도 3월 14일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생일이다. 1879년 3월 14일, 그는 훗날 상대성이론으로 우주의 곡률과 기하학을 다시 쓸 인물로 태어났다.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그의 통찰은 결국 원과 곡면의 언어, 즉 π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파이 데이에 태어난 사람이 우주의 기하학을 해명했다.
그런데 이 날, 또 한 명이 태어났다. 나의 손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태어난 시각이었다. 새벽 3시 14분. 출생 기록을 작성하던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 적혀 있었다 — 3월 14일, 3시 14분, 쌍파이다.
무한을 향해 손을 뻗는 몸짓
손녀에게 오늘은 화이트데이로 더 오래 기억될지도 모른다. 사탕이 오가는 날, π의 깊이 같은 것은 아직 그 아이에게 낯설 것이다. 그래도 좋다.
언젠가 자신이 태어난 날의 의미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수천 년 전 한 수학자가 원의 비밀을 계산하려 했고, 그 계산이 탐험가들을 미지의 바다로 이끌었으며, 동일한 수가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쓰였다고. 그리고 그 숫자의 날, 태어났다고.
π는 끝나지 않는다. 3.14159···는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반복하지도 않고, 완결되지도 않는다. 그것이 어쩌면 π의 가장 인문학적인 의미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삶처럼, 탐험의 여정처럼,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한 아이의 이야기처럼 — 끝을 알 수 없기에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