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걸음: 같은 나이, 다른 출발선
해양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처음 배에 오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그는 승선근무예비역으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것이다. 비(非)승선근무예비역 사관들과 업무가 구별되는 건 아니고, 해운회사에서 받을 연봉도 그대로 받는다. 이 시기의 월급은 3급 해기사(초임) 기준으로 연 4천만원 수준이다. 배는 항만을 떠나고, 육지는 멀어지고, 그는 파도 위에서 자신의 첫 직업 생활을 시작한다.
4년제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중견기업에 취업한 동갑내기는 어떨까. 그는 연봉 계약서에 3,200만 원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첫 출근 날 사원증을 목에 건다. 처음부터 배위의 친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초봉이다. 이것은 시작일뿐이다. 직업 경력이란 출발선이 아니라 전체 구간을 봐야 한다.
10년의 항로: 누가 더 빨리 올라가는가
일반 기업에서 입사 후 10년은 ‘대리에서 과장으로 가는 시간’이다. 빠른 승진으로 주목받는 직원이라도 30대 초중반에 과장이 되면 ‘잘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봉은 6,000만~8,000만 원 수준으로 오른다. 기업의 허리 역할을 맡기 시작하고, 이름 석 자가 조직 안에서 인식되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 10년 동안 배 위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진다. 3급 해기사로 시작한 이후 30대 초반에 2등 해기사로 승진하고, 연봉은 6,000만 8,000만 원 수준이 된다.또한 경력 10년 차가 되는 30대 중반, 해기사는 1등 해기사 직책에 오른다. 선박 운항과 선원 관리 전반을 책임지는 이 직위의 연봉은 1억 원 내외로 오른다.
이야기의 핵심은 40대 초반에 드러난다. 해양대학 졸업 후 15년 전후의 승선 경력을 쌓은 해기사는 선장(master)으로 승진한다. 선장은 선박의 최고 책임자다. 수십만 톤의 화물과 수십 명의 선원, 수백억 원에 달하는 선박의 운항과 안전을 전부 책임지는 자리다. LNG선이나 VLCC(초대형 원유 운반선)의 선장이라면 연봉 1억 5,000만~2억 원 이상은 일반적인 수준이며, 일부 선사와 선종에서는 그 이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육상직장인의 경력비교
같은 나이, 일반 기업의 동갑내기는 어디쯤 있을까. 운 좋게 빠른 승진을 거쳤다면 과장에서 차장으로 올라서는 시기다. 연봉은 8,000만~1억 원 수준이다. 임원이 되려면 아직 10년 이상을 더 버텨야 하고, 그마저도 전체 직장인 가운데 실제로 임원 자리에 오르는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에 비해 해기사의 경우 세계적인 부족현상으로 본인의 의지에 따라 선장까지 지속 승진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2022년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과장급의 평균 연봉은 7,800만 원, 차장급은 9,500만 원 수준이다. 임원급이 되어야 비로소 1억 5,000만 원을 넘기 시작하는데, 그 시점은 빠르면 50대 초반이다. 반면 선장은 40대 초반부터 그 소득 구간에 이미 진입해 있다. 그리고 이 소득 구간을 약 15~20년간, 즉 60세 전후의 은퇴 시점까지 유지한다.
누적 소득을 계산해 보면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해양대학 졸업 후 60세까지 승선 생활을 유지한 해기사의 평생 누적 소득은 4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반면 일반대학 졸업자가 평균적인 직장 경력을 거쳐 60세까지 근무했을 때의 누적 소득은 약 25억~30억 원 수준이다. 물론 이 수치는 기업 규모와 개인 역량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전반적인 구조 차이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같은 숫자, 다른 무게
그러나 이 비교에는 중요한 맥락이 빠져 있다. 소득이란 언제나 무언가와 교환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해기사의 높은 소득은 특수한 조건과 교환된다. 한 번 승선하면 평균 4개월 정도를 바다에서 보낸다. 가족과의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의 첫걸음마, 부모의 수술, 친구의 결혼식—이런 순간들이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 직업이 구조적으로 요구하는 대가다. 해상이라는 환경 자체가 내포하는 위험, 고립감,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의 씨름은 어떤 연봉표로도 환산하기 어렵다.
경력 설계라는 관점에서
두 경로를 비교하는 것은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선원, 해기사라는 직업을 여전히 저평가하거나 잘 알지 못한 채 지나치기 때문에 이를 알리고자 함이다.
해기 직업은 비교적 짧은 교육 기간으로 전문 자격을 취득하고, 20대에 커리어를 시작해 40대 초반에 이미 최고 직책에 오를 수 있는,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경력 경로를 제공한다. 누군가에게 이 경로는 최적의 선택일 수 있다. 특히 해양과 항해에 흥미가 있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을 즐기며,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근무하고 하선 후 긴 휴가를 갖는 사이클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커리어는 자신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파도 위에서 시작하든, 사무실에서 시작하든—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자신의 삶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다. 그리고 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라면, 바다가 품고 있는 커리어의 실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