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산업에서 여성 해기사 공간은 주로 크루즈선이나 페리 등 서비스 중심 영역에 머물러 왔다. 오늘날에는 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벌크선에서도 여성 선장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선박회사들은 이제 여성 인재를 대체 자원이 아닌 핵심 인재 풀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와 디지털화로 업무 환경이 개선되면서, 더 이상 근육의 힘이 아니라 셈세한 디지털 장비 조종에 의존하다 보니 배는 남자들의 거친 일터라는 오래된 통념도 서서히 힘을 잃고 있다.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가 여학생에게 문호를 연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상선 해기사 교육은 사실상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학생 입학 이후 30여 년 동안 여성 해기사가 조금씩 배출되어 왔지만, 한국 해운·항만 산업에서 여성 종사자의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최초의 여성 도선사가 탄생했다. 2018년 외국 선사 상선의 선장으로 임명되어 ‘한국인 최초 여성 선장’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구슬씨는 2023년 수습 도선사 시험에 합격한 뒤 실무수습을 거쳐 2024년 정식 도선사로 부산항에 배치되었다. 1958년 도선사 제도 도입 이후 66년 만에 탄생한 ‘한국 최초 여성 도선사’였다.
또한 우리나라 국적선사 현대상선(HMM)에서도 2019년 초대형 컨테이너선 현대 커리지호의 선장으로 전경옥씨를 임명하였다. 국적선사에서 여성 선장이 배에 오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 회사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선에 여성 선장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해운업계 첫 여성 기관장은 고해연씨로, 같은 2019년에 현대상선(HMM) 대형 컨테이너선 현대 콜롬보호 기관장에 임명되었다. 이 세 사람의 이름은 한국 해기사 역사에서 여성 최초라는 단어와 함께 오래 남을 것이다.
해기사 급여는 육상직원에 비해 높다. 육상직원의 경우 실제로 임원 자리에 오르는 비율은 5%가 채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해기사의 경우 세계적인 부족현상으로 본인의 의지에 따라 선장까지 지속 승진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게다가 40대 초반 선장의 월급은 육상직원 50대의 임원을 능가한다.
누적 소득을 계산해 보면 해양대학 졸업 후 60세까지 승선 생활을 유지한 해기사의 평생 누적 소득은 약 4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반면 일반대학 졸업자가 평균적인 직장 경력을 거쳐 60세까지 근무했을 때의 누적 소득은 약 25억~30억 원 수준이다. 물론 이 수치는 기업 규모와 개인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전반적인 구조 차이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도선사가 되면 이보다 훨씬 더 급여차이가 나게 된다.
두 경로를 비교하는 것은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결론이 아니다. 그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선원, 해기사‘라는 직업을 여전히 저평가하거나 잘 알지 못한 채 지나친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여성 해기사 직업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사회도 노력해야 한다. 여성 도선사의 탄생은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지 30여 년 만에 실질적인 결실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 해기사가 되기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중·고교 단계에서 해기사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기회는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에서 볼 수 있듯, 여성 해기사의 증가는 우연한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정책, 제도, 문화가 맞물린 결과일 때 비로소 속도가 붙는다.
이제 구슬 도선사, 전경옥 선장, 고해연 기관장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더 많은 여성 도선사, 선장, 기관장의 이야기를 예외적인 성공담, 영웅담이 아니라 가능한 경로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