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웃음, 생명이 쓰는 두 가지 언어

by 글곧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개나리의 노란 꽃과 진달래의 분홍 꽃이 아직은 앙상한 가지 끝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다. 겨울 내내 생명이 완전히 멈춘 듯 보였던 가지에 선명한 색이 스며드는 그 순간, 우리는 해마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묘한 감탄을 느낀다. 그것은 기적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생명이 스스로 써 내려온 치밀한 설계와 논리의 결과이기도 하다.


식물에게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꽃은 곧 그 식물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건네기 위해 준비한, 가장 극적이고도 공들인 무대 장치다. 향기와 색, 꽃잎의 배열과 모양, 피어나는 시기까지 모두 벌과 나비, 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전략이다. 오랜 세월 진화를 거치며, 식물은 이 전략을 조금씩 고쳐 쓰고, 경쟁력 없는 표현은 사라지고, 살아남는 방식만 남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봄꽃은 그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남은, 생존을 위한 완성도 높은 표현이다.


사람에게도 이와 비슷한 표현 방식이 있다면, 아마 ‘웃음’ 일 것이다. 우리는 웃음을 통해 상대를 안심시키고, 호감을 쌓고, 관계를 이어간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웃음과 미소가 원래는 긴장을 풀고 공격 의도가 없음을 알리는, 원시적인 표식에서 출발했다고 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표현은 점점 더 다채롭게 변해, 이제는 기쁨, 민망함, 사과, 호감, 심지어는 우월감까지도 미묘하게 나누어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웃음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나름의 ‘최적점’을 향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얼굴 근육의 배열, 치아의 모양, 목소리, 몸짓이 뒤섞여 어떤 사람에게는 수줍은 미소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호탕한 웃음이 가장 잘 어울린다. 억지로 연습해서 완전히 다른 웃음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마치 식물이 자기 종에 맞는 색과 모양으로 꽃을 피우듯, 사람도 각자의 몸과 삶의 경험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신만의 웃음을 ‘진화’시켜 온 셈이다. 웃음이 사람의 매력을 드러내는 언어라면, 꽃은 식물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웃음은 대개 억지로 웃어야지 하고 의식하기 전에, 어느 순간 저절로 터져 나온다. 뇌 안에서는 감정과 관련된 영역, 운동을 조절하는 영역, 소리를 만드는 영역이 한꺼번에 협력해 웃음을 만들어 낸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웃음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호감과 친밀감을 드러내는 웃음, 예의를 지키기 위한 웃음, 상대를 압도하거나 거리 두기 위해 짓는 웃음이 서로 다른 표정을 갖는다.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도 꽃과 닮았다. 흙의 산도가 수국의 색을 바꾸듯, 우리의 웃음도 상황의 분위기에 따라 피식 웃음이 되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폭소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애써 웃음을 거두게 되기도 한다. 편안한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고 넉넉한 웃음이 나오고, 긴장된 자리에서는 입꼬리만 억지로 올라간 웃음이 나온다. 똑같은 얼굴과 근육을 가지고도 주변의 ‘정서적 pH’에 따라 전혀 다른 웃음이 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봄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 더욱 경이롭게 느껴진다. 죽은 듯 보였던 겨울나무의 가지 속에서 유전자의 명령이 다시 작동하고, 분자의 춤이 시작된다. 흙 한 줌에서 비롯된 단순한 원소들이 생명의 언어로 다시 배열되어 찬란한 색으로 피어나듯, 우리의 몸과 뇌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회로들이 작동해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웃음을 피워 올린다. 그 두 가지 언어가 같은 봄빛 아래에서 나란히 빛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생명의 논리는 더 이상 차갑고 건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정교하게 계산된 아름다움의 공식에 가깝다.

매거진의 이전글우리나라 여성 최초 선장, 기관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