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의 붉은 속살, 육회

태성실비식당

by 글곧

강원도 태백은 오래도록 석탄의 도시였다. 탄광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떠나고, 도시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러나 태백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발 700미터 고원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인근 강원랜드를 찾는 발길을 따라 도시는 조용히 새 삶을 열었다. 그리고 그 새 삶의 한 축에는 뜻밖에도 한우가 있었다.

태백 시내를 걷다 보면 한우집이 참 많다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한 블록에 두세 집씩, 저마다 ‘태백 한우’를 내세운 간판을 내걸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관광지 특유의 포장이겠거니 싶다. 대도시 번화가 어디서나 보던 그 익숙한 풍경처럼.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진짜와 가짜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날은 여름 바캉스 시즌의 금요일이었다. 일주일의 피로를 태백 산바람에 털어내려 인근 콘도에 짐을 풀었고, 저녁 무렵 소문으로만 듣던 태성실비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외관부터 소박했다. ‘실비식당’이라는 이름처럼, 꾸밈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테이블마다 손님이 가득 차 있었고, 주문은 단순했다. 육회, 그리고 갈빗살.

육회가 나왔을 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고기의 빛깔이 달랐다. 흔히 육회에서 보는 그 약간 탁한 붉은빛이 아니었다. 선명하고 깊은 자홍빛을 띠고 있다. 깨와 마늘이 소박하게 얹혀 있었지만 양념은 어디까지나 조연이었다. 주인공은 고기 그 자체였다.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왔다. 결이 부드러웠고, 비리지 않았으며, 혀 위에서 천천히 녹아들며 담백하고도 깊은 풍미를 남겼다. 신선한 한우 본연의 맛, 그것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갈빗살 역시 훌륭했지만, 내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은 결국 육회였다.


다음 날 오후 여섯 시, 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전날의 그 맛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식당 문이 닫혀 있었다. 문 앞에 손으로 쓴 짧은 메모 하나. “오늘은 고기가 떨어졌습니다.”

태백 시내에는 그날도 수십 곳의 한우집이 불을 밝히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만 문을 닫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어딘가 수긍이 가기도 했다. 다른 집들은 고기가 어디서 왔든 ‘한우’라는 이름을 붙여 팔 수 있었겠지만, 이 집은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일정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 우연히 다시 그 앞을 지났다. 이번에도 문은 닫혀 있었고, 메모 한 줄이 붙어 있었다. “고기가 없어 오늘 쉽니다.”

관광지의 한복판에서, 가장 바쁜 주말에, 팔 고기가 없다는 이유로 연거푸 문을 닫는 식당. 이 장면 하나가, 그 어떤 설명보다 이 집이 어떤 곳인지를 말해주었다.


음식에는 종종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긴다. 제철 재료를, 정해진 양만큼만 쓰고, 그것이 떨어지면 미련 없이 문을 닫는 것. 얼핏 보면 무심해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가장 진지한 고집의 형태다.

태백에 가거든, 한 번쯤 이 집을 찾아보시길. 다만 미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두어야 한다. 운이 좋으면 문이 열려 있을 것이고, 운이 나쁘면 짧은 메모 하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메모 앞에서 느끼는 약간의 허탈함마저도, 어쩌면 이 집이 건네는 진심의 일부일지 모른다.

육회 한 점이 혀 위에서 녹아들던 그 감각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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