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의 쿨러닝

그래도 살아 돌아왔다

by 유니버썰

좋은 날씨였다 모든게 아름다워 보였다 넓고 푸른 하늘과 적당한 구름에, 그저 오늘 퇴근이 빨랐기 때문은 아닐것이다 검은색 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목장과, 갈색 소가 있는 목장을 지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 밭을 곁에 둔채 골목길을 천천히 운전 했다 이내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어 숙소에 가까워졌을 때 멀리서 노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질려고 하는 여기 켄터키의 작은 마을은 노란 햇살이 마을을 감싸안고 있었다 집과 나무들의 그림자는 황금색 빛과 확실하게 구분이 되었고 거무스런 그림자 안 조차 겨울철 특유의 투명한 공기에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지금은 겨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따뜻한 차안의 오후는 나를 이상한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무척 따뜻한 겨울이다 오늘은 춥지 않은가 보네!’



운전석 창문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햇빛에 왼쪽 볼이 따가웠다 손을 들어 가로막고, 좌회전을 해서 마을 입구로 들어왔다 입구 부터 숙소 까지 약 150미터를 천천히 움직이는데 좋은 생각이 났다 올바른 생각이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별로 안추운거 같으니 따뜻한 햇살을 온 몸으로 맞으며 달리기를 하고 오자!’ 숙소 현관문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패딩 안에는 아직 차안의 온기가 가시지 않은 따뜻한 가슴으로 날씨를 다시 한번 확인 했다 차에서 현관문 까지 2초 정도 날씨를 체크 했을 때도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오늘은 달리기다' 현관문을 열어 숙소로 들어왔다 따뜻한 숙소는 나를 반겨주었고 히터가 신나게 돌고 있었다



지금은 일 때문에 잠시 미국에 와있지만,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노을 전문가 로서 창문 밖에 있는 나무 그림자 길이를 눈으로 측정 했다 실제 나무 길이 대비 이정도 그림자면 앞으로 30분 뒤에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진다는걸 예상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 갖고 있는 옷을 확인했다 츄리닝 바지 하나 갈색 면바지 하나. 츄리닝은 이번 출장 오기 전에 와이프가 사준 새옷이여서 여기에 고작 땀을 묻힐 수 없었다 갈색 면바지를 입고 가급적 안 신으려는 검은색 양말과 이번엔 진짜 버릴려고 가져온 왜 인지 크롭티가 되어 버린 휜색 무지티를 입었다 급했다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평소에 잘 안입는, 어찌됐든 땀을 잔뜩 흘려도 되는 옷으로 결정했다 빠르게 나가 저 따뜻한 해를 마주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더운데 추운 느낌을 느끼고 싶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머리속으로 오늘의 코스와 날씨를 시뮬레이션 하고 나만의 완벽함을 안은체 계단을 내려와 현관문을 열었다



마음속으로 지구야 조금만 천천히 돌아줘 나 금방 달리고 올게 라는 기도를 올리고 현관문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준비운동을 할 여유도 없었고 눈앞에는 황금색으로 바뀌어 버린 나무들과 집들이 보였다


처음 몇 미터 까지는 생각보다 춥다 라는 생각이 들더니 10미터도 못가 이내 아니 이거 너무 추웠다 20미터 쯤 갔을 땐 이미 팔꿈치 밑으로 감각이 없었고 피부는 검은 뱀살로 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손으로 느낌이 없는 피부를 문지르니 말린 오징어 처럼 하얀색 가루가 떨어져 나가는거 같았다 눈앞에 아름답던 노란 햇살도 찬 바람에 눈물이 자꾸 나 모든게 물에 번져 보이고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감각이 사라진 손으로 눈물을 닦고 때로는 볼에 흘러 보내며 팔을 앞뒤로 전진 하고 있었다 다음엔 신발과 무릎이였다 신발 밑창과 쿠션도 얼었는지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돌덩이 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나고 오른쪽 무릎이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작은 돌맹이들도 느껴질 정도로 예민해진 발바닥을 내딛고 눈물,콧물 쏟으며 달리는데 옆에 지나가는 픽업 트럭에선 ‘어머 저 사람봐' 라는 흥얼 거림이 들리는거 같았다



예상 보다 추운 날씨에 편의점 까지 비효율 코스에서 효율 코스로 계획을 변경 할 수 밖에 없었다 짧은 30분 달리기 였고 중간중간 걸어서 땀도 흘리지 않았다 10미터 간격으로 코를 힝 풀고 코로 숨쉬기엔 코가 너무 시려워서 입을 벌리고 뛰었다 덕분에 입안에 침이 계속 고여서 침을 계속 뱉었다 몸안의 수분이 눈물과 콧물 그리고 입으로 다 배출이 된 거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깊은 갈증을 느꼈던 나는 빠르게 숙소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30분간의 짧은 외출에 아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 라는 안도감이 흘러나왔고, 샤워를 하고 난 뒤의 상쾌한 기분과 해냈다는 느낌이 그래도 잘 달리고 왔다 하며 자신을 붇돋아 주었다 하지만 당시엔 비극같았고 진지했던 나의 달리기는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희극이였다 따뜻한 품을 가진 간호사 같은 시간은 진지한 나의 달리기 마저 당시의 상황을 하나하나 되네어 주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배꼽이 보일락 말락 하는 반팔티를 입고 갈색 면바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양말을 신은 아저씨가 눈물 콧물 쏟으며 달리는 아저씨의 모습은 평화로운 이 마을의 특이점 이였다 지나가는 차들의 구경거리 였고 동네에 사는 75살 루시 할머니는 운전 중 (STOP) 표지판 앞에서 대기중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눈빛이 뭔지 알거 같다 75살이 되었어도 눈빛은 숨기기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나의 일기장엔 달리기 하다 기절할 뻔한 두번째 이야기로 기록 되었다 그래도 살아 돌아왔다 다음엔 더 잘 할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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