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과 원점
술이 덜 깬 일요일 아침이다 식탁위 음식을 한쪽으로 치우고 앉아 아내에게 주말 편지를 쓰고있다 식탁 건너편엔 내 키만한 창문이 하얀색으로 가득차 있다
창문 밖 세상은 온통 하얀 눈과 보이지 않는 바람으로 뒤덮여 있고, 나는 따뜻한 커피향으로 가득찬 주방 가운데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창을 경계로 세상과 단절된 나는 편지를 쓰며 지구반대편에 있는 아내에게 닿고 싶었다. 그리고 창 밖의 눈과 함께 이리저리 날아가고 싶었다
추운 마음과 함께 눈은 창 밖 풍경에 머물러 있었다
눈은 곳곳에서 출발한 롤러코스터가 만석이 되어 내려와 여기서 올 겨울을 보낸다
오른쪽으로 ‘와아’ 하며 내려가고, 왼쪽으로 ‘어머!어머!’ 하며 떨어진다
낙하산을 탄듯이 정직하게 내려오는 눈이 있고,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내려 오는 눈은 ‘이제 그만!’ 이라는 외침이 들리는듯 하다
그렇게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들은 무리를 지어 함께 왁자지껄 투명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걸 볼 수 있다
자기와 같은 모습을 한 친구들과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땅에 닿을 때쯤
어떤 눈은 나뭇잎 위에, 어떤 눈은 창문 방충망에, 자동차 위와 인도, 차도에 이 정신없는 미끄럼틀의 종착점이 된다
이 미끄럼틀은 경로가 수시로 바뀌어 어딘가에 떨어진다 거기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걸 겪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미끄럼틀이 바람에 휘어지고 구부러지며 땅에 도착한 눈 친구들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자기들끼리 뭉쳐 하나의 얼음이 된다
날이 추워질 수록 더욱 단단한 얼음이 되어 긴 겨울을 친구들과 같이 버티고 봄을 기다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땅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구름속에서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은 겨울동안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 하며 다시 지상으로의 여행을 기대한다
다시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날을 기대하면서 다음 겨울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