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 0.1
차안에서 잠자기 시즌이 오고 있다 길었던 영하권의 날씨는 내 뒤통수 방향으로 멀어지며, 언제 추웠냐는 듯 나는 정면을 바라 보며 따뜻해진 노오란 공기를 코로 들이쉰다
지금 까지 44번의 겨울을 보낸 베테랑 답게 조금이라도 온도가 바뀌면 먼저 겉 옷 부터 확보 하기 시작 한다 아침마다 옷장 안 오르트 구름 까지 갔다오고, 좀 더 안 쪽 까지 진입 하면 집안 물건들의 빛 까지 흡수하는 블랙홀이 숨어 있다 더 깊은 안쪽 구석에는 작은 우주 괴물이 숨어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 하다
옷을 아내의 잔소리에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10년 전부터 입은 옷 부터, 불과 한달 전에 산 옷 까지 우주의 탄생 만큼 옷장안은 어마어마한 세월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옷장 안에서 잊어버렸던 별의 기억을 찾아 0.1초 정도의 그리움을 느끼고, 0.2초 정도의 저 옷의 역사를 생각 한다 10분정도를 뭐 입을까 고민하고 적당히 얇은 옷을 입고 나온다 살갖을 애리던 푸르디 푸른 차가운 바람 대신 하늘색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묵직한 바람이다
차안에는 동그랗고 길쭉한 고양이 벨트커버가 돌아다니고, 마이크로화이버 재질의 페르시아 풍 보라색 이불이 뒷자리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고양이 벨트 커버는 살아 움직이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거의 80퍼센트 확률로 내가 어제 놓은 그 자리에 없다 보통 바닥에 떨어져 있고 뒷좌석 사이에 빠져있다(뒷좌석은 독립 시트다) 어디에 있든 감각만으로 눈을 감고도 찾는다 차안을 돌아다니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구의 중력과 관성과 몇 가지 물리학이 필요하다 간헐적인 급브레이크과 특정 속도를 유지한 우회전이 고양이를 움직인다 종이 비행기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과 비슷하다 어떤 바람이 올지 모른다 내 기분이 어떻고, 상황이 어떻고, 도로에 자동차 현황이 어떤지는 매일매일이 다르다 고양이가 움직인다
이불은 뒷쪽에 대충 뭉개뭉개 핀 구름 처럼 동그랗게 말려있다 적어도 내 차안은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 후 이불을 칼같이 각을 줘서 개지 않는다 대충 돌돌 말아 뒷좌석에 이불을 높게 포갠다 최대한 닥터 슬럼프에 나오는 응가 모양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사용 후 오늘의 조각 점수를 매기고, 어느 정도의 응가 이불 조각의 경지에 오르면 아내와 아들에게 자랑을 할 날을 상상한다 아내가 화나는걸 넘어 인정할 정도의 실력을 쌓을려고 한다 한 동안은 어딘가로 이동 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불의 위치와 고양이의 위치를 확인 후 좌석을 뒤로 밀기 시작 했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눕혀지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고무고무를 외치며 신라시대만큼 먼 이불을 잡아 땡긴다 뒷좌석 밑 바닥을 훑고 지나온 긴 이불은 발목 까지 꼼꼼히 덮어 고양이를 내 목 뒤에 장착 한다 이제는 눈이 달린 나의 손이 중앙에 있는 콘솔 박스를 열어 안대를 찾아 머리에 고정 한다 머릿속엔 완벽하다는 단어와 함께 아늑하고 어딘가에 낑겨 있는 듯한 안점감이 몸을 감싼다 몸의 근육을 이완 시켜 밝게 비춰주는 햇빛 아래 안대의 어둠과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