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olovemoolove Feb 23. 2022
H가 서있는 맞은편,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길 건너에 공원이 있다. 그리고 그 건너 끝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겨울 끝 시린 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고, 누런 잔디밭 이곳저곳에는 듬성듬성 미처 녹지 못한 눈들이 얼어있다. 퇴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던 H는 그만 노을에 발걸음을 멈춰 서 있었다.
이미 I와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직감하고 있었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I가 싫어진 것도 아니었다. H는 여전히 I를 좋아했다. 그런데 뭐랄까, I와의 이별에서 비롯될 이 슬픔을 마치 겪어야 할 운명 같은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고 있었다.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그 과정은 이제 마음 한켠을 아리는 흔적으로 남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저 노을에 자동적으로 이끌리게 됐을 뿐이고, 지극히 겨울스러운 풍경을 드디어 아련하게 느끼게 된 것뿐이다. 그 특유의 색감과 추위와 냄새, 바람과 가로등과 텅 빈 도로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