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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Nov 12. 2023

폭군과 반찬공세.

무차별 반찬폭격의 부수적 피해에 관한 보고서.


부모님이 계시는 청주 본가에 갈 때마다 작용하는 부담 중 한 가지는 되돌아가려고 준비할 때쯤 시작되는 엄마의 무차별 반찬 공세다.

생활하며 집밥을 먹을 일이 많지 않기에 반찬이 상하기 일쑤인 데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주신 귀한 반찬이 상해버려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는 일에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이유로, 괜찮다, 이미 먹을 게 많다, 저번에 주신 것도 남아 있다, 집에서 밥과 반찬을 먹을 일이 별로 없다는 간곡한 외침과는 별개로 엄마는 이미 큰 박스에 반찬들을 차곡차곡 담고 계시다.

엄마의 반 강제적 반찬공세와 내 정중한 거절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되자, 나는 점차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심리적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엄마에게 짜증과 투정까지 부렸다.


위와 같은 현상은 비단 평화로운 우리 본가에서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군대에서 작전을 가르치며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2년 전부터 군 후배와 동기, 선배들에게 공군 작전을 가르치는 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의 삶의 궤적은 역시 예상할 것이 못 된다.


내가 아는 한 전쟁은 승리를 위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에게서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일련의 행위를 계획하고 시행하고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행위를 지속하며, 즉 적을 공격하면서 필연적으로 원하지 않던 일까지 벌어지는 데 이를 부수적인 피해라고 부른다.

전쟁 관련 뉴스에서 정밀하지 못하거나,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과 병원, 문화재, 외교적 시설이 피해를 입는 경우들이 부수적인 피해의 예로 들 수 있다.

언론과 통신이 발달하기 이전의 전쟁은 부수적인 피해가 있든 말든 무차별 공격으로 밀어붙여도 상관없었겠으나, 현대전에서 부수적인 피해 발생을 무시하면 전 세계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된다.

인터넷 포털 기사의 자극적인 문구에서 볼 수 있듯, 민간인 사상자를 비롯한 부수적인 피해를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무차별 공격을 하는 군과 지휘관을 우리는 ‘폭군’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우리 엄마는 ‘사랑의 폭군’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엄마가 설정한 목표와 의도는 자식들의 건강과 행복의 무한대 창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자식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맛난 거 많이 먹고 배부르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얻기 위해 지속하는 행위, 즉 엄마의 과업이 바로 본인이 땀 흘려 만든 무차별 반찬 공세인 것이겠다.

하지만 이러한 공세에도 어쩔 수 없이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는데, 무차별 반찬공세 결과 서두에 기술한 아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와 투정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누구인가, 교회 꽃꽂이라는 성스러운 업무를 위해 시티백 오토바이를 끌고 시내를 무차별 활보하는 기세의 장본인 아닌가.

아들의 치기 어린 투정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폭군인 엄마의 무차별 반찬공세는 계속된다.


역사적으로 증명 됐듯 이런 폭군에게는 빨리 무릎을 꿇고 백기를 흔들며 반찬을 맛있게 냠냠하는 것이 상호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책이다.

5일 뒤면 생일을 맞이하는 ‘폭군’의 무병장수와 반찬공세가 지속되길 기원한다.


‘폭군’께서 무차별 애정공세를 위해 손자를 면밀히 살펴보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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