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주어져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던 시간을 마무리하며.
기회가 주어져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었던
공군에서의 1456시간 비행을 마치며.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는 여러 선택의 순간들이 찾아오게 된다.
나의 선택지 중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선택이 있다면 24살에 수송기 조종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과 그 결과로 C-130H 항공기의 조종사가 된 것이다.
비행대대에 전속온 후 선배들의 야탑 환영식과 거대한 첫인상의 C-130H의 부조종석에 앉은 순간부터 대대와 항공기에서의 시간 대부분이 좋았다.
공군의 조종사는 수백 시간에서 수천 시간까지 자신의 기종 항공기 좌석에서 지내기 때문에 조종사 정체성의 일부가 항공기와 닮은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2,3년마다 부대를 옮겨야 하는 군인의 인사 정책과는 별개로 맡은 항공기를 조종하기 위해 자신의 비행대대에 수년간 머무르기에 대대의 기풍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나 또한 대대의 할 바는 해내는 선배들의 모습을 닮고 싶었고, 후배들에게 전해주려 노력했다.
항공기에서는 조종사 부조종사와 항법사, 정비사, 적재사가 연결된 통신 공간에서 혼자만의 헛소리를 멈추고 조용히 듣는 겸손과 조화로움을 익힐 수 있었다.
또 하나 배운 점은 한반도와 동남아, 알래스카까지 이역만리를 비행하며 창 밖으로 펼쳐진 가없는 수평선과 밀림을 바라보며 세상은 넓고, 넓음에도 준비만 잘 된다면 어디든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장 승급이 끝남과 동시에 울분의 잔을 마시며 성남과 C-130H를 떠나야 했던 순간도 찾아왔다.
당시에는 사랑하는 비행대대와 항공기, 인연과 추억을 모두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이는 지구에서 사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원리를 충분히 몰랐기에 오는 울분이었을 테다.
그 원리란 삶의 먼지 한 톨도 빠짐없이 영원한 내 것은 없으며, 잃는 것이 있어야 새로이 얻는 것이 있다는 간단함이다.
그런 면에서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삶을 지배하는 원리의 은총으로 비행대대와 항공기를 떠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추억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을 만들 수 있었던 기회는 가히 하늘이 내려준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얼마 전 선배, 동기, 후배들의 배려로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비행을 모 비행대대와 C-130H 수송기로 할 수 있었다.
시작과 끝을 함께한 대대와 사람들, 항공기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마지막 착륙 경로에 위치한 한강과 서울, 롯데타워를 바라보았다.
언제 봐도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착륙 경로였다.
다시 한번 더 찾아온 선택의 순간, 떠나는 결정과 그 결정으로 만나게 될 것들을 기대한다.
또한 많은 후배들도 멋진 공간을 통해 착륙하며
안전한 비행을 지속하고, 삶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