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었다

by 율팬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잘 쓴 글이 어떤 글인지는 잘 몰랐지만

1993년 광고기획사에 들어가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는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카피, 정말 멋지고 인간적인 광고 카피를 쓰고 싶었고,

1994년부터 1996년 무렵까지 출판사와 잡지사를 다닐 때에는

취재 기사에 인터뷰 기사를 쓰며 바르고 곧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 무렵, 좀 더 매끄럽고 깔끔한 글을 쓸 수 있도록 교정, 교열 보는 법을 공부했고,

1999년 다시 광고회사를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사보와 사사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몇몇 기획사를 거치면서는

대학이나 공공기관, 회사들이 요구하는 책, 브로슈어, 팸플릿 등을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익한 홍보물을 만들까 고민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남들이 카피라이터로, 취재기자로, 기획자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올리며

그 깊이를 더해갈 때, 나는 얕은 지식으로 임기응변하듯 세상을 건너고 있었다.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남들은 괜찮은 기획물이라고 칭찬을 할 때도

그 다음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내 바닥이 보일까 자신이 없어졌고,

정말이지 단 한 줄도 글을 쓸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그야말로 다 바닥에 되었다 싶을 때,

2009년 7월 무렵 일을 쉬게 되었다. 그리고 1년쯤 집에 있으면서

나는 간간이 들어오는 일을 하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면서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아니, 2009년 연말 한글학회 일을 하면서 서울을 오가고,

2010년 들어 평생 붓글씨 하나로 살아온 남석 선생님께 좋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무언가 선명하지 못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왜 그랬는지를,

아이와 함께 동생네로 휴가를 다녀오면서 나는 아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제껏 나는 단 한 번도 내 삶에 자신이 없었다. 어린 시절을 빼면

마흔이 넘도록 나는 내 마음이 편히 쉬도록 단 한 번의 휴가도 주지 않았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나는 늘 세상이 슬펐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 듯한 일 앞에서도 나는 늘 주저주저했을 뿐,

단 한 번도 그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부모님이 정해준 선생님이라는 길을 가지 않고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나오면서 나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정한 용기를 내지 못했구나 하는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글을 잘 쓰고 싶었고,

기타를 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도 싶었다.

마음이 담긴 옷이든, 소품이든 내 손으로 무언가 뚝딱 만들어 내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 많은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다.

아니, 한 번쯤은 해 보았지만, 오래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늘 먹고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내 삶에 어느 것 하나 절대로 의미 없이 나타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겠다. 집에서 쉬면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본 인간극장의 수많은 이야기도,

아침마당에 나와 이야기하던 사람들 이야기도, 중국어 수업에서 새로 알게 된 많은 언니들도,

생전 TV라고는 잘 안 보는 내가 ‘제빵왕 김탁구’에 빠져 눈물을 흘리게 된 것도,

아이와 같이 뮤직뱅크를 보고 인기가요를 보게 된 것도,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절대 그저 온 것이 아니었다.


아침 설거지를 하는데 매끈한 타일 벽과 엎어놓은 그릇들이

그 부드러운 표면을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걸고,

불려놓은 밥알을 닦아내는 까실까실한 수세미와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왜 거기, 그렇게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먼저 마음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알려준 ‘연두 부부’와

예쁜 수세미에 동전 지갑을 만들어준 혜경 언니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단지 고마워서

선생님께 떡을 보냈을 뿐인데, 그 작은 하나로 선생님께도, 아이 친구에게도 감사 인사를 듣고

아이도 자신감을 더 찾은 듯해서 그렇게 행동한 내게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날마다 차를 태워준 명숙 언니에게 전화를 넣고, 숙경씨에겐 다음 주에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해야지.

그리고 살면서 내가 느낀 이 행복과 고마움을 글로든, 그림으로든 나타내며 살아야겠다.


이렇게 행복한 것을, 이렇게 고마운 것을. 나는 이 사실을 진심으로 깨닫는 데

사십 년이 넘게 걸렸구나. 정말 길고 긴긴 터널을 지나왔구나......

납작하게 바람이 빠져 있는 튜브에 처음으로 빵빵하게 바람을 넣은 듯,

나는 앞으로 내 삶이 그렇게 탱탱하고 탄력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쓰는 글들이 참 기분 좋아지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기를 바란다.


2010년 8월 6일 금요일의 일기

decorated-3561710_192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찾아가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