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roblem

by 율팬

한동안 삶이 나를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였다. ...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너무도 원론적인 문제를 두고
날마다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시절,
그 때의 그 우울과 어둠, 무미건조한 생각들이
다시 함께 걷자고 내 곁에 와 선 것이다.


답도 찾지 못하고, 방향도 잡지 못한 채

가시에 찔리고 허우적거리다 지쳐서
제발 가라고, 제발 떠나달라고 애원을 할 때는
제 탓이 아니라는 듯 물끄러미 보고 섰다가
‘떠날 때는 말없이’ 영화 제목처럼
시나브로 그렇게 총총 사라져가더니만


‘반기지도 않는데, 왜 다시 찾아왔는가?’


아는 척 하기도 그렇고, 모른 척 하기도 그렇고,
어정쩡하니 쭈뼛거리며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그 옛날 침울한 감정들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얼굴 없는 귀신처럼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왔다.
은행, 도서관, 시장, 가게, 회사, 심지어 화장실까지.


싫어도 싫다고 말을 잘 못하는 나는
큰소리를 지를 용기도 없고.
그래도 내 뜻은 전해야 할 것 같아
며칠이 지난 뒤 속으로 말했다. 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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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내 꿈은 달라졌다
나는 지금 달리기도 바쁜 사람이다
너를 보고 반갑다고 울고불고 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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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바삭바삭 부서지는 그 바랜 감정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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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나를 너무 야박하다 생각지 마라.
안 친하고 싶은 사람, 안 친하고 싶은 생각
그냥 너희 가고픈 곳, 멀리멀리 가라는 거지
절대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지도 모르지만
그때도 그냥 우리, 지금처럼 지나가자.
아니, 그때는 웃으며 인사도 하고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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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을이 갔다.
바람이 불고,
겨울이 깊어간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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