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박 3일이 5박 6일이 되어버린 백령도 여행에세이

나를 가두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주 인천 서해 끝 단에 있는 백령도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수요일까지의 회사 일정을 마치고 목요일부터 2박 3일의 여행 일정이다.

요즘 유난히 회사 일이 많아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와중에, 가는 휴가라 어딜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한 8년 전 즈음 동생이 백령도에서 군 생활 하던 시절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짐을 싸고 새벽부터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데 안개가 자욱해 배가 뜨지 못한다고 하여,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목요일 새벽,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동생에게 전화해 오늘 배가 뜰 수 있느냐고 몇 번을 물었다. 그때마다 동생은 ‘하늘만이 알겠지’라고 대답했다.


선착장에 도착할 때 즈음, 동생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형 오늘 배 뜬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하늘을 바라보니 유난히 쾌청하여, 이번만큼은 백령도로부터 입도를 허락받은 기분이었다.

<유난히 맑은 인천 하늘>


인천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4시간 만에 백령도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배 타러 가기까지 땀을 뻘뻘 흘렸지만, 백령도는 도심보다 온도가 10도 가량 낮아 매우 시원하다. 사람과 차가 많지 않아 분주했던 정신이 차분해진다.


이러한 해방감도 오래가지 못하고 마음 한쪽에는 3일이라는 다시 또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백령도에서의 첫 끼는 중국 음식과 여행의 기분을 한껏 느끼기 위해 소주 1병을 시켰다. 짜장면과 탕수육, 짬뽕 국물을 안주로 단숨에 소주를 들이켰다. 안주가 무엇인지가 중요할까, 그냥 기존에 있던 곳에서 벗어나 마시는 술 자체가 즐겁다.


식사를 마친 후 두무진으로 향했다. 두무진의 절경은 신이 빚어 놓은 것 같다는 찬사를 받는다. 규암 성분의 바위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풍화작용에 의해 깎이고 갈라지고 부서지고 색이 바래서 생긴 것이 바로 두무진이다.


대체로 붉은 색깔과 다양한 무늬 절묘하게 바다를 배경 삼는 두무진을 보고 있으면, ‘정말 아름답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이곳의 추억이 당분간 살아가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힘이 되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여행 첫날은 마무리 되었다.

<절경이 너무 아름다운 두무진>


여행 2일 차에는 가족들과 해변을 찾았다. 오전에는 조금 쌀쌀해 해변에서 물수제비 놀이를 하다가, 오후가 되니 날씨가 포근해졌다.


우리가 찾은 해변은 사곶해수욕장이었는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해변과는 모래의 촉감이 달랐다.


사곶해변의 모레는 시멘트보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규조토로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달려도 바퀴가 모레에 빠지지 않는다. 규조토 해변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백령도, 전 세계 두 곳밖에 없다. 백령도는 아직 비수기인지, 해변에도 두세 가족만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사곶해변은 서핑을 해도 될 정도의 높은 파도가 친다. 파도와 한 번 맞서보겠다는 일념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볼까 하지만, 내 키만 한 파도가 나를 덮쳐 물을 마시고 나면, 다시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한다.


천연 파도 풀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주변을 둘러보면 나 혼자뿐이라 외롭게 느껴진다. 동생이나 동행한 형도 처음엔 같이 놀다가도 다들 돌봐야 할 처자식이있어 금세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이미 10년을 넘게 독립해서 살아왔는데, 새삼스러우면서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외로움이다.


산다는 게 결코 혼자서 완성할 수 없음을 알기에, 나 역시 돌아가야 할 곳이 필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런 마음의 헛헛함을 달래려는 거였을까, 저녁 식사는 내 돈을 들여서 내 가족과 여행에 동승한 가족을 대접했다. 물론, 고기를 굽고 자르고 배분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혼자서 여행에 따라온 내 몫이다.

<파도가 일품인 사곶해변>


세 번째 날, 아침 안개가 섬 전체를 가리고 있다. 오후 1시에는 인천행 배를 타야 하는데,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체크 아웃까지는 한참동안의 시간이 남았는데, 새벽 5시부터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배가 늦게 뜨면 어떡하지, 이미 토요일도 풀스케쥴 상태인데, 소화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누른다.


잠에 다시 들지 못하고 백령도 기상 상황을 반복적으로 새로 고침 한다. 인천에서 백령도로 오는 배가 오전 7시 50분에 출발해야만 오후 1시에 백령도에서 인천으로 돌아갈 수 있다.


7시 50분이 다 되었을 무렵, 배가 출발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자주 다녀, 30분에서 1시간 정도 연착되는 경우가 잦아 이번에도 조금 짜증은 났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근데 눈으로 봐도 백령도 내 안개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아 30분, 1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약속을 조금 미루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취소해버려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3일 이상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3일 이상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좀처럼 두려운 일이 아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을 다 해도 다시 또 해야 할 일을 만드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2박 3일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해왔다. 여행은 여행대로 다녀왔지만, 일상으로 다시 돌아와도 티가 안 나는 시간이 딱 그 정도다.


오전 11시 즈음, 오늘 인천에서 백령도로 배가 출항하지 않는다는 소식과 자연히 금일 예약된 배도 명일로 순연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행스러운 건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내일까지만 출발해도 회사로 출근하는 데는 무리가 없겠다 싶어 덤덤히 받아들였다.

<산신령이 나올 것 같은 백령도 안개. 해무라고 부른다.>


그다음 날도 새벽부터 정신이 또렷하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봤는데, 생각보다 안개가 심하지 않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마음을 진정하는 게 쉽지 않다.


내 예상과는 반대로, 오전 7시 50분에 인천에서 백령도로 배가 뜨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펜션 사장님도 그렇고 백령도에서 군 생활을 한 동생도 이 정도면 충분히 뜰 수 있다고 말했다.


30분씩 지연됐지만, 일요일에는 별다른 약속을 잡지 않아 괜찮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며 배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오늘은 어제보다 배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오후 2시까지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오후 2시 인천항 여객터미널의 운행현황이 안개 대기에서 운행통제로 바뀌었다, 결국 오늘도 배가 뜨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런 무기력하고 원망스러운 감정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먼저 회사에 전화했다. 목요일에 투자심의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마지막 박차를 가하여야 하는 시기에 섬에 가족여행을 간 것 자체가 스스로 하수 같다는 자책감에 빠졌다.


회사에서도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눈치다. 그럼에도, 목요일 일까지 그르칠 수 있으니 일단, 백령도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해보라는 결정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회사 측의 배려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돌렸다. 일을 다 처리하니 오후 3~4시 즈음이 되었다.


고립되었지만, 백령도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걸음걸이다. 그냥 여기 사람들은 이런 삶이 일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10분 단위로 계획하고 살아가는 분주한 여의도의 삶마저도, 자연 앞에서는 무의미해진다.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스스로 괴로울 뿐이라는 반응이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이 없어진 지금 주변을 더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아낌없는 호의를 보내주는 사람들.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 조심히 나오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육체적으로는 지금 백령도에 고립되었지만, 어찌 보면 내 삶은 분주함 속에서 이미 갇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나를 가두는 것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론에 다다랐다.


나를 가두는 것은 바깥의 철창이 아니라, 나 자신이구나. 내가 나에게 자유를 주지 못하면, 어디에 있어도 철창의 수용자가 되는구나.



<조카랑 6일동안 같이 시간을 보냈더니, 큰 아빠한테도 제법 잘 안긴다. 조카를 떠올리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운행이 통제되어 결국, 화요일에 섬에서 나올 수 있었다. 처음 2박 3일을 계획한 여행이 5박 6일이 되었다.


내 일상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어 분노, 슬픔, 우울 등의 감정이 순간순간 떠올랐지만, 마지막에 나올 때는 그래도 배운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떠나는 백령도, 잘 있어라.>


수요일에는 회사에 출근했고 목요일에는 투자심의를 무사히 마쳤다.


백령도에서 괴로워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일상은 순식간에 본래의 궤도로 돌아왔고 오래전 이야기같이 느껴진다.


여전히 여의도는 10분 단위의 삶으로 바쁘고 매일 해야 할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보다 살짝 많아 넉넉히 쉬는 시간은 부여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마음 한쪽에는 고립을 통해 깨닫게 된 그런 알량한 배움이 있다. 나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3세. 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