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여행가이자, 선장이다.
한동안 고민 해왔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답 없는 고민 같은 것이었다.
하루를 놓고 보면, 기지개 켤 여유도 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나면, 다시 또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어제와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목표한 인생을 위해서, 일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일 때문에 살아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 삶의 선장이 더는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른 것 같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부표? 혹은 뗏목?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이 복잡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 이런 고차원의 질문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라는 막막한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내 인생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것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마무리될지도 모른다. 마치 클라이맥스로 가지도 못한 영화가 급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말이다. 관람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오며 욕하겠지만, 감독과 배우에게는 의미가 다를지도 모른다.
인생은 나 자신으로의 여행 혹은 여정 같은 것이구나, 오직 나만이 기억할 수 있고 나만이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나만이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개인 모두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가이자, 배의 선장인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삶을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슬프고 걱정되면서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삶의 여정은 어떤 형태로든 끝난다는 것이다. 그건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대통령이나, 직장 상사나 모든 존재에게 해당된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 진리다.
결국엔,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 누리는 편이 낫다. 누리는 것은 내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삶을 누리지 못하면, 화려한 것을 소유하는데 마음을 쏟게 된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빈공간을 채우거나, 나를 증명하는데 화려한 것은 가장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유가 주는 마음의 만족감은 짧다. 진짜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마음의 공허함은 메워진다.
여정은 단순히 등산을 하는 행위가 아니다. 산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난다. 절망적이게도 정말 더 이상을 오르지 못하겠다고 포기할뻔한 산을 넘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보다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을 정복하는 데 마음을 쏟기보다, 한 발자국 내딛는데 집중해야 한다. 천천히 가거나 빠르게 가는 법을, 어떤 때는 주저앉아 쉬어야 하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어디든 도착할 수 있다. 가기만하면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고통으로 매여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직장인 APP 블라인드에서 한 글을 봤다.
‘산다는 것은 느린 자살을 하는 것 같습니다.’
슬프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민을, 그리고 상대의 고통을 가슴 한켠에 늘 두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어떤 다른 존재는 잃었다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내가 매일 먹는 밥도, 동식물 등 다른 존재의 생명력을 가져다 보충하는 행위다. 그래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부리면, 균형이 무너지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 주변도 불행해지게 된다. 우주와 자연, 사회는 균형을 찾으려 들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살아가는 것은 다른 존재에게 빚을 지는 것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