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관계

by 이인삼각

고객 K사에서 연락이 왔다. 협력업체 사장님들 모두 회의에 참석해달라고 한다. K사에서는 해당 업무를 8개 업체에 나눠 주고 있었는데 담당 본부장과의 정기 간담회 호출이었다. 집무실에 들어서니 긴 회의 테이블 자리마다 명패가 놓여있고, 오늘의 회의 순서도 깔끔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업체 사장님 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러나 매월 실적으로 등수가 발표되고, 매년 실적에 따라 업체의 한해 물량이 조정되고, 연말 꼴지 업체는 계약 해지되는 검투사들간의 쓴 웃음 교환이었다. 담당 과장의 회의 식순 안내로 시작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탁한 분위기였다. 다가오는 연말정산 성수기에 서비스를 잘 준비 해달라는 뻔한 당부 말씀이 주 내용이었으나 벌써 나는 한 귀로 빠져나가는 그의 격려를 흘려 보내고 있었다. ‘중간이나 하자. 어차피 티도 안 나는데 힘 빼지 말자’


새롭게 업무를 시작 해야하는 다국적 회사 A는 한국어/일본어/중국어 서비스를 모두 한국에서 제공해야 했다. 각 언어별 10명씩으로 시작 하지만 확대가 곧 예상되어 우리로서는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싱가폴에서 날라온 담당자 일본인 K는 영어도 유창했다.

“한국에서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채용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시도해 볼 수 있습니까? “네, 해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시고 혹시 어려우면 이야기를 해주세요. 같이 방법을 찾아보시지요. 언젠가는 다른 업체를 추가 고용해야 할 수도 있지만 현재는 귀사와 먼저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넵” 하는 내 대답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 눈빛도 죽기 살기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중국인 채용보다 특히 일본인 채용이 어려웠다. 채용 팀은 인터넷 일본인 카페로 시작, 일본 대사관으로 찾아가고, 일본인들이 주로 산다는 동부이촌동에서 찌라시를 뿌리기 시작했다. 필요 인원이 늘면서 곧 일본 현지로 날아가 동경, 오사카 등 채용박람회에서 직접 채용을 하기까지 모든 장면에 직원들의 열정이 넘쳤다. 믿어주고 기회를 준 고객에게 꼭 보답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중국인 300명, 한국인 300명, 일본인 200명 규모의 동북아시아 전체를 책임지는 유일한 서비스 파트너가 되어있었다.


K사는 하지 못했던 것, 즉 A사는 어떻게 해서 우리 을의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가?


첫째는 결과에 대한 최종책임을 자신들이 지겠다는 태도였다. 협력업체를 복수로 가져가는 순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여차하면 지지 않겠다는 진심이 드러난다. 실제 문제 발생시에 자신 때문은 아니고, 그들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책임이니 물량을 조정하고, 계약해지하고 새로운 업체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똥폼만 잡고 책임은 전가하는 비겁한 것이다. 복수의 업체를 쓸 수록 업체들의 책임감도 희석이 되고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된다.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서 누군가 쓰러졌을 때 오히려 돕는 사람이 적거나 늦게 나타나는 이유와 같다. 문제가 생겼을 때 희생양을 찾거나 꼬리자르기를 해온 것들이 학습이 되고 공정 경쟁이란 이유로 굳어져서 복수의 업체를 경쟁 시키는 방식이 관례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제조업체의 경우 라인의 down time 리스크를 고려 주요 자재의 경우 복수의 소싱을 가져가는 것은 합리적 의사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여차하면 잘린다는 두려움으로 협력업체들 끼리 검투사 싸움 시키는 것은 나쁜 경쟁이다.


협력업체가 만일 한 곳이라면 책임에서 도망갈 곳이 없어진다. 내 일이고 내 책임이니 도와달라 해야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갑이나 을이나 모두 자유로울 수 없으니 공동운명체가 된다. 한 방향을 보게 되고 함께 일 하기 시작한다. 머리를 맞대고 힘이 모아지기 시작한다


둘째는 나를 전문가로 인정 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정확히 어떤 일을 나눠 해야하는지 모른다. 역할에 대한 올바른 정의가 없으니 무엇을 기대해야 하고, 무엇을 위탁 해야하는지 공부가 되어있지 않다. 예를 들어 세탁소에 빨래나 다림질을 맡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세탁소에 맡겼다는 뜻은 직접 할 수도 있지만, 직접 하는 노력과 시간을 자신에게 더 중요한 곳에 쓰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는 세탁에 대한 관점도 이제는 어떤 옷을 구매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게 좋을까 로 생각이 흘러가야 맞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세탁소에 맡겨놓고 믿지를 못한다. 누가 더 싸게 하나 가격비교에 머물고 귀한 시간에 세탁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감시하는 꼴이다. 하청업체, 외주업체, 협력업체 라는 호칭 에서 상대를 전문가로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없다. 나에게 중요한 일이지만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해당 업무의 종결을 맡긴다는 신뢰의 첫 손을 내밀지 못한다. 열등하게 아래 업체로 바라보고 결국 그 아래 자리에 머물게 만든다. 상하관계가 익숙하다. 악순환이다.


음향효과를 만드는 후배에게 들었던, 최신 핸드폰의 벨 소리 제작을 요청 받아 S전자에 시연하러 갔을 때 이야기이다. 단순하고 간단한 모노톤의 벨소리에 S사 임원은 ‘악기들을 별로 안 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비싸냐’ 물었다 한다. 단순한 사운드가 왜 기능적 효과가 더 있는지, 왜 더 만들기 어려운지 설명하다가 지쳤다고 한다. 애플 핸드폰의 벨소리가 단순함을 추구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전히 자기 세계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전문가에게서 어떻게 최선을 끌어내는지 모른다.


신뢰를 주고 선순환을 시작해야 한다. 인정하고 나란히 일하는 Co-work 관계들로 개방 협력이 더 높아져야 전체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다.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소프트웨어 생산성은 실리콘밸리가 압도적으로 높다.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의 95%는 오픈소스인데 한국의 오픈소스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5%만 직접 만들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90%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여전히 직접 앉아서 양말 빨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경쟁은 활력을 주고 혁신을 촉발시킨다. 경쟁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경쟁이 나쁜 것이다. 나쁜 경쟁을 계속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고 자기 몫의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다. 무능한 것이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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