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행동

by 이인삼각

오전 임원회의 중이었다. 누군가 급하게 들어와서 소식을 전한다. 용산에 있는 S화재 팀 직원들이 출근해서 곧 업무 거부를 선언하고 모두 여의도로 향한다는 소식이었다. 맑게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말그대로 날벼락 이었다. ‘이유가 뭐냐’, ‘요구사항이 뭐냐’ 등 날 선 질문들이 용산 팀장에게 이어졌지만 파악된 것은 조각조각 추측들 뿐이었다. 동시에 고객사에서도 연락이 빗발치며 비슷한 질문들이 쏟아지는데 우리도 조각난 추측 들만 들려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던 것 같다. ‘제가 여의도에 가보겠습니다’. 아마 제일 젊은 임원이었기에 암묵적인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관할이나 책임을 따지기에는 우리가 무슨 큰 대기업도 아니었고, 기획 및 경영지원을 맡고 있으니 내가 직접 가보는게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백여명의 상담직원들이 여의도 금감원 정문 앞에서 시위를 준비한다는 소식 등이 실시간으로 중계 되었다. 일단 길을 나섰으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명감도 커지면서 콩닥콩닥 가슴도 크게 뛰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더 악화되면 어떻게 될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 물기 했지만, 처음 겪는 상황이어서 무엇이던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첫번째 대화 장면 이었다. 화가 나있는 무리의 직원들을 대하는 법은 배워본 적도 어디서 읽은 기억도 없었다. 금감원 근처 커피숖에서 일단 직원 대표들과 면담을 시작하기로 했다. 상기된 표정의 젊은 남자 직원 두 세명과 중년의 여자 직원 몇이 카페로 들어섰다. 직원들의 숫자가 수천명을 넘기 때문에 원래도 얼굴을 아는 직원들이 적기는 했지만, 그 아침에는 더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들이었다.


주자가 만루인 상황에서는 상대 투수도 나 못지않게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선다는 기아 이범호 선수의 말은 옳았다. 나도 긴장했지만 그들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 뚜렷했다. 바뀐 인센티브 제도를 철회한다는 약속을 먼저 하지 않으면 대화 없이 집회를 시작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은데, 철회하겠다 약속을 해버렸다. 일단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판단했다. 지나가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을까? 집안 싸움이 담벼락을 넘어 큰 소리 나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졌을까? 철회하겠다, 일단 회사로 돌아가서 다 털어놓으시라, 다 듣겠다 약속을 해버렸다.

세세한 내용을 잘 모른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첫번째 고비를 잘 넘긴 셈이 되었다. 감정들을 주고 받고 격해지고 단어나 볼륨이 의식적으로 자극적이거나 시끄러워지는 것은 피했다. 남들의 시선을 배제하고,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으로 이동은 도움이 되었다.


시작이 중요하다. 대부분 소수 강경파가 리드하게 된다. 오해이던 곡해이던 강한 주장을 센 단어로 시작하게 된다. 반면 그런 불순한 의도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내부 보고가 올라오면, 나도 자연스레 상대방이 불순하게 보이고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나를 비난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나도 강한 반박으로 세게 대응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시작하지 않으려는 다짐이 중요하다. 반드시 사실 한 조각은 긴 주장 안 어느 구석에 있게 마련이다. 그 사실에서 출발했고, 어떤 이유로 누적이 되어왔고, 불신이 되고 오해와 곡해가 덧씌워져 상대는 어느덧 무서운 얼굴을 갖게 되고 불순한 존재가 되었을 수 있다. 일부 직원들의 오해라고 해도, 나머지 직원들이 동조 했다는 것은 수면 밑에 켜켜이 쌓여진 여러 불만들이 상당기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늦게까지 1:1로 면담하고 각자가 갖고 있던 이야기들을 들어주었다. 결국 기존 인센티브 원복 원칙하에서 수정된 조건으로 인센티브 수정안을 합의하고 별빛 아래 퇴근을 했다. 현장에서 합의를 할 수 있도록 전권을 받았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아마 계산기 두드리고 따져보고, 보고하고, 결재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조기에 진화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을 진작에 내렸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신중하게 처리하지 못한 담당 임원의 잘못이 크지만, 제도 변경의 취지는 옳은 판단이었기 때문에 경징계로 마무리했다.

S여대 보안사업을 인수하고 기존 업체 소속의 경비 및 보안직원들의 고용승계를 약속했을 때였다. 갑자기 회사 앞에서 노조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하고, 몇몇 분들이 악덕기업 운운하며 직원들에게 찌라시를 나눠주며 시위를 시작했다. 첫 반응은 불쾌했다. 고용승계 및 요구사항을 동의했는데 왜 이러는 것일까? 목소리가 커지면, 기대하는 특정 메시지가 분명하게 내포되어 있을 텐데, 무엇일까 찬찬히 파악해보았다. 고령인원이 다수인 현재 직원들 입장에서 새로운 회사가 내세울 새로운 근무규정이 가장 큰 우려였다. 학교측은 그동안 고령 인원들의 근무태만 문제등을 이유로 새롭게 바뀐 업체에 근무규정 강화를 기대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인력의 자연스러운 교체를 기대하고 있었다. 강남역 성추행 사건 및 여대 화장실의 몰카 사건들이 이어져서 학교 및 학생들의 불안은 커졌으나 정작 경비보안 직원들은 대부분 60대이상 남자들이어서 화장실 몰카 검색들이 어려웠고, 간혹 근무중 음주나 수면 등으로 신뢰도가 매우 낮아져 있었다. 반면에 현행 규정은 해고사유가 매우 제한적으로 정의, 행동 변화를 강제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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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접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을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정년까지의 고용은 보장한다. 대신, 학생들의 고민은 속히 해결을 해나가자. 태권도 학과 출신 20대 여자 요원을 신규채용, 화장실 단속을 전담시키고, 카톡 신고채널을 신설 긴급출동할 수 있는 소수팀을 구성,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게 했다. 신임 여자 요원은 학교 학보에 이달의 인물로 소개될 만큼 반응은 빨랐다. 노조에게는 딸 같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해고사유 추가 동의를 얻어냈다. 근무시간 중 음주 등 근무 태만은 최고 징계가 가능해졌다. 원하는 조직의 모습에는 한참 부족할 수 있고, 요구되는 체력이 부족할 수 있지만, 부족한 부분은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 협업으로 채워나가면 된다. 일부 추가 투자가 발생해서 그만큼 수익은 줄겠지만, 새로운 사례를 만든 셈이고, 혹시라도 학교와 학생, 직원과 회사간의 신뢰가 조금 회복되었다면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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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느낌, 감정이 일어날 때 최대한 거리를 둘 일이다. 해석되고 보고되는 소위 상대의 의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는 좌파나 빨갱이, 악마도 아니고 하나의 명사로 총칭할 수가 없다. 물론 악의도 있을 수 있으나 악마화 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해야한다. 상대도 똑같은, 평범하고 욕망하고 두렵고 때로는 나처럼 찌질한 인간으로 바라보는게 시작일 수도 있겠다. 문제를 처음에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해결책은 무궁무진 다양하게 존재하고 찾아낼 수 있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는 금새 쉽게 악화된다. 힘들고 불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직원들이 누구를 찾아갈 것인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회사는 직원들이 제일 먼저 찾아오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왕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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