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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7. 2017

Part 3. 2 네파 아틀라스 등반대

겁쟁이 뮬아 일어서라!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등반 원정이다. 등산복 브랜드 '네파'에서 후원하고, 노시철 대장이 이끄는 네파 중동 빅월 등반대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1시간의 비행으로 날아온 곳, 여기는 중동 카타르 도하이다. 2022년 월드컵 개최지이면서, 사막과 이슬람의 매력으로 뭉친 중동의 반도 국가이다.

 배터리 충전 스테이션에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분 전까지 해도 우리 팀에게 제일 중요한 물건인 자일을 수화물로 옮기다가 도하 공항 세관에 빼앗겨 한참을 공항 직원과 말다툼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어느 나라든 정부 관리의 고지식함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남은 방법은 대사관의 공식적인 압력 혹은 도움일 것이다. 과연 이렇게 완강한 사람들에게 통할지 모르겠다. 등반을 하러 가는 클라이머들에게 자일이 없다는 것,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지친 심신은 로프를 찾느라 더욱 소진되었다. 대사관의 입김과 끈질긴 구애로, 황소고집 콧수염 아저씨들의 마음을 돌려 자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원래 목적지 요르단의 수도 암만으로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예약해 두었던 차량 기사가 당시 이메일을 주고받을 당시의 영어 이름 James가 쓰인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복잡한 공항을 벗어나자 붉은 사막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요르단이라는 나라가 눈으로 코로 귀로 마구마구 들어온다. 히잡을 두른 여성, 빨간 체크무늬 두건과 긴 하얀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들은 여기가 중동이라고 알려준다. 현대, 기아, 삼성 등 우리 대기업의 로고와 광고에 반가움의 미소가 지어진다.


암만에서 페트라로 유명한 와디무사까지 5시간의 이동을 했다. 페트라는 나바테아 유목민이 사암의 협곡에 건설한 산악도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3편',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촬영지로 현재에까지도 수많은 여행객의 방문 리스트 상위에 있는 곳이다.


2천 년 사막의 신비를 뒤로하고 와디무사에서 와디럼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목적지 와디럼 '제벨 럼'에 도착했다. 거대 사암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 뒤로 붉은 사막이 모래바람을 날리며 우릴 환영해 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와디럼 전체를 둘러보았다. 영화 <마션>의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곳이다. 지프는 롤러코스터 버금가는 소리와 진동으로 출발을 알렸고, 도시를 떠나 금세 사막으로 접어들었다. 지프 운전기사이자 가이드인 마프레가 사막에 대한 갖은 지식과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사막과 거대한 바위들의 매력에 사로잡혀 하루를 보냈다. 높게 솟아오른 수직의 암벽은 저 하늘 위 구름에 맞닿아 있었다.  붉은 사막은 파란 하늘이 어울려 보랏빛 아름다운 수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를 먹었다. 금세 찾아온 어둠,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막과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뿐이다. 하지만 여기에 친구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라는 양념을 첨가하면 맛있는 요리가 된다.

비빔밥에 깨소금을 올리듯, 따뜻한 차 한 잔을 더하면 '낭만의 밤' 요리는 완성된다.


부끄럼쟁이 초승달은 잠시 우리의 이야기를 엿듣다 숨어 버렸고, 대신 호기심 많은 아기 별들이 귀 기울이며 더욱 반짝거린다. 자정이 넘어 피웠던 숯불도 꺼지고, 작은 온기를 주던 가스등도 사막의 어둠과 함께 색깔을 맞추며 이야기꾼들을 잠의 세계로 인도했다.


베두인 텐트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가고, 사막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광활한 붉은 대지만큼이나 아름답다.


오늘은 제벨 럼 등반을 가는 날이다. 제벨 럼은 와디럼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 그곳으로 접근하는 길이 쉽지 않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명을 달리할 수 있는 코스의 연속이다. 더구나 트래버스(옆으로 이동하는 것을 일컫는 등반 용어) 구간은 아찔하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긴장의 땀이 식을 틈 없이 3시간을 올랐다.


등반 개념도에 의하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가이드 없이 올라가는 것이 처음부터 어려움을 예고한 모험이었다. '이쯤 되면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 선택의 기로에서 수많은 고민에 휩싸이고,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또 몇 시간, 결국 우리는 길을 찾지 못하고 계곡으로 내려왔다. 담력이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면 길눈이 어두웠을까?

내려오다 만난 프랑스 등반팀은 계속 위로 올라갔다면 오른쪽 바위에 잘 생긴 볼트(암벽등반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설치해둔 확보물)가 암벽등반의 시작점을 알려줬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열 번도 넘게 길을 헤매고 자정이 되어서야 정상에 올라갔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방향을 돌린다. 시간상으로나 지금 상황으로나 끝까지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다시 오라는 와디럼의 뜻일까? 하산하기로 결정하니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이것저것 재정비를 한다. 뭔가 조금 더 움직이고 노력하는 것이 팀을 위해 좋지만, '사막의 고독 + 건조한 겨울의 추위 + 피곤함=게으름' 이란 공식이 성립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소중한 원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그마한 텐트 안, 헤드랜턴에 의지해 등반 도구를 챙기며 와디럼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감한다.


다음 목적지는 모로코다. 요르단 암만-카타르 도하 - 리비아 - 모로코 카사블랑카. 이틀에 걸친 이동으로 모로코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저 멀리 들려오는 강물 소리만큼이나, 저 하늘의 별들의 속삭임만큼이나 평화로운 아침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지만 지중해를 통해 유럽과 맞닿아 있어 특이한 분위기를 만드는 곳이다. 동명의 영화로 남부 유럽의 이미지는 하얀 집들이 가득한 해변가를 거니는 금발 여인을 생각나게 한다.


매력적인 도시지만, 현재 나는 관광객이 아닌 등반가이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하산 2세 사원의 웅장한 모습을 뒤로하고 등반 목적지로 향한다.


낡은 승합차에서 얼마나 졸았을까? 등반대상지 타기아에 도착했다.

도시와 멀리 떨어져 핸드폰도 소용없는 곳, 영어 한마디 통하지 않는 곳에 온 것이다.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했다. 일단은 몸풀기로 숙소 뒤편의 짧은 루트를 올라본다. 유럽에서 비교적 가깝고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럴까? 곳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작은 마을이지만 등반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3곳이나 있었고, 그곳에서 루트에 대한 개념도를 구 할 수 있었다.

클라이밍 루트에 반짝이는 볼트가 '어서 와서 한번 해봐!'하고 손짓한다. 그들의 부름에 답하여 갈색 석회암에 매달려 함께 춤을 춰본다. 아침 일찍 나와 하루 종일 등반한 후, 숙소에 돌아와서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꿀 맛이다.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산과 바위벽은 어둠을 일찍 불러왔지만, 그를 대신하는 '보름달 아가씨'는 예쁜 얼굴을 드러내고, 잔잔한 바람과 하얀 구름이 하늘이 운동장인 듯 뛰어놀기 바쁘다.


저녁 9시, 한국 같았다면 초저녁일 텐데 여기는 한밤을 향해 달려간다. 방안에 작은 말소리만이 들려올 뿐. 주인집 아기의 기침소리가 조금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편안한 밤이다. 저 멀리 개 짖는 소리, 나무 타는 냄새, 멀리 강물 흐르는 소리가 모여 자연 속 평화의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아틀라스산맥을 트레킹 하고자 했던 원래의 계획은 전날 늦게까지 이어진 등반 피로로 팀을 망설이게 했다. 약해진 마음이 삐걱거린다. 하지만 어깨를 한번, 두 번 털썩 털어내고 무겁지만 첫발을 힘차게 내딛는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뮬(당나귀와 말 중간 정도의 동물)의 근육질 엉덩이를 따라간다. 고도가 올라가고 그동안 거친 토양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남은 고목이 보인다.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도 평소 보기 힘든 동양인 트레커를 멀꿈멀꿈 구경한다. 멀리서 보이던 하얀 눈에 덮인 거대한 산맥이 눈앞에로 들어온다. 저 산맥을 넘어야 오늘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점심을 먹는데, 심상치 않은 바람이 식사를 방해한다. 뒤쪽에서 검은 구름이 무섭게 뒤따라온다. 허겁지겁 점심을 구겨 넣고 출발을 서두른다.


얼마나 올랐을까? 7~8부 능선 바위지대에 눈이 가득하다. 무거운 짐을 실어서 일까? 뮬이 눈길을 지나다가  몸통까지 빠져 버렸다. 이것 참 난리다.

원정 대원 등을 포함해 마부 할아버지 힘까지 모두 모아서야 빠진 뮬을 겨우 건져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가던 리더의 고난을 지켜본 나머지 뮬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실었던 짐을 해체해 우리가 짊어졌다. 푹푹 빠지는 눈에 신발은 젖어 오고, 고도도 높아 호흡이 금방 가빠 온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옮기고, 겁먹은 뮬들을 달래 바위지대를 벗어나서야 한숨 놓을 수 있었다.

능선 너머 반대편 하산길은 바람과 어둠과의 싸움이다. 눈으로 늦어진 산행은 밤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고, 눈을 동반한 바람은 동물과 사람 모두를 덜덜 떨게 만들었다. 랜턴에 의지해 하산하는 길은 오후보다 더 길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뮬의 커다란 눈은 빛이 모자라도 길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인지, 큰 콧구멍으로 냄새를 맡는 것인지 헤매면서도 길을 찾아간다.

나는 작은 헤드랜턴으로 맨 앞에서 길을 찾아가는 녀석을 열심히 도왔다.


15시간의 모험과 같은 산행을 했다. 어제저녁, "내일 숙소는 샤워와 잠자리가 좋다" 던 가이드의 이야기는 정말 황당한 말이었다. 오늘 목적지 타프라우트가 두 군 데라는 것이다. 이름이 같은 지역이 두 곳이 있다는 것이다. 아! 진짜 짜증이 밀려온다. 아시아인을 손님을 맞은 것이 처음이라는 그의 말이 기억났지만, 가이드로서의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 기본적인 장비도 없고 산행시간도 맞추지 못했다. 다행히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나무난로는 퍽퍽한 빵으로 굶주린 배울 채운 일행을 금방 꿈속으로 이끌었다.


전날의 피곤이 풀릴 겨를도 없이 출발한다. 꼬불꼬불 산길은 끝이 없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 정안수 대원을 돕는 것은 팀의 막내인 내 차지다. 점점 팀원들에게서 뒤처진다. 산악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초보에게 쉽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 이곳을 벗어나야 했고, 나이는 작지만 무서운 선배로서 그녀를 이끌었다.


다행인 것은 어제와 같은 검은 구름도, 눈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은 것이다.

점심 식사 장소에 50cm 정도의 작은 물웅덩이가 시원한 물을 충분히 제공해주었다. 이 웅덩이는 강의 발원지이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면서 강폭은 점점 커졌다. 강의 탄생부터 커져가는 성장을 보는 것은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마치 시간을 만든 신 옆에서 농축된 시간의 세계를 몇 시간 안에 본 듯했다.


히잡을 두른 눈이 큰 중동의 미인, 별의 속삭임을 품은 사막, 장밋빛 바위들, 눈 덮인 아틀라스 산..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등반대의 일정도 아틀라스 산맥의 작은 마을에서 끝났다.



등반정보

토드라 고지는 모로코에서 가장 클래식한 석회암 암벽

와디럼은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 아카바(Aqaba)에서 북동쪽으로 35km 지점에 위치한 사막지역이다. 총 720㎢ 넓이의 와디럼은 사막 길을 따라 이어지는 지역들 중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1998년 요르단 정부에 의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574m의 럼 마운틴(Rum mountain)이며 500m의 수직 거벽과 그보다 낮지만 멀티 피치를 가진 세미 거벽들이 넘쳐난다. 1984년부터 현대적 암벽등반이 시작되었고, 특히 유럽의 클라이머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등반 허가는 따로 필요하지 않다. 봄, 여름, 가을이 등반 최적기이며 겨울은 날씨가 추워 등반하기 어려움이 있다.

1917~1919년 아랍 혁명기간에 활동했던 영국의 정보장교 로렌스를 소재로 한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의 무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요르단의 다른 볼거리로는 ‘페트라’로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영국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세워진 도시는 두 눈을 가득 채우기 충분하다.


두 번째 등반지는 모로코 아틀라스산맥의 토드라 고지(Todra gorge)와 타기아 고지(Taghia gorge). 모로코는 지브롤터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이베리아반도와 저바고, 북쪽으로는 지중해, 북서쪽으로는 대서양, 동쪽과 남동쪽으로 알제리와 접경하며, 남서단은 서사하라와 국경을 접한다. 아틀라스산맥은 지중해와 대서양으로부터 사하라사막을 가로막고 솟아 있으며 아프리카 북서부의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 걸쳐 동서로 뻗은 산맥으로, 길이는 약 2,400km다. 가장 높은 산은 4,167m의 투브칼산이다.


토드라 고지는 모로코에서 가장 클래식한 석회암 등반을 할 수 있어 각광받는 곳이다. 입구에 아름답고 푸른 오아시스와 큰 야자수가 있는가 하면 멋진 300m 높이의 갈색 석회암이 솟아 있다. 이곳에서는 수준 높은 원 피치 혹은 멀티 피치의 다양한 그레이드의 암벽등반 루트가 존재한다.

타기아 고지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최대 800m 높이의 순수 석회암벽으로 지난 몇 년 동안 트래드(Trad)와 스포츠루트 등 많은 멀티피치 루트가 개설되었고 그것들 중 일부는 아주 긴 등반 거리를 가지고 있는 개발 가능성이 많은 거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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