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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7. 2017

Part 6. 3 남극일기 #3

긴긴 이동

D-day

남극에서 보낸 3개월의 시간은 끝없이 펼쳐진 하얀 빙원, 빨간 원피스 방한복, 혹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신이 빚은 얼음의 세상은 고결하고 청아했다. 그 순수의 대륙으로 출발하는 첫날이 다가왔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가려고 아침에 서둘렀지만 공항으로 오는 길 리무진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져 일찍 도착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먼저 도착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았다. 약속한 시간이 조금 지나 모두가 인천공항에 모였다.

짐이 많아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종익 박사님, 유한규 대장님의 표가 비즈니스고 모닝캄 회원이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고, 곧바로 쇼핑 및 대기 시간으로 들어갔다.

팀원 전체가 해외여행의 고수들이라 공항에서의 특별한 일화를 만들거나 운이 나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익숙한 장소인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에서 오는 설렘 반 긴장감 반의 간질간질한 느낌이 좋다. 새롭다. 그동안 여러 곳을 다녔고 어디를 가든 내 활동 영역은 충분히 넓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울의 조그만 자취방에서 출근하고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지내다 보니 내가 가진 개척 정신이 많이 줄어들었나 보다. 이번의 남극행이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직장생활이나 경제적 자유 대신 선택한 나 스스로의 그릇 키우기에 대한 감각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메모장을 꺼내본다. 며칠을 떠나든 해외로 나가갈 때 비행기에서의 내 마음을 기록하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의식이다. 이륙하며 보이는 작은 집과 차를 거쳐 만 피트 이상의 하늘을 날며 푸른 하늘과 구름 속에서 마음을 돌아보는 것은 평소에 잊고 살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여행을 하던 원정을 가든 현장에 도착하면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가장 중요한 철학적 베이스와 초심을 잊어버리기가 쉽다. 그래서 그럴까? 비행기에서 글을 적으며 내가 왜 이번 외국행을 결정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첫 의도를 분명하게 마음에 새기는 것은 계획한 기간 동안의 큰 버팀목이 된다.

남극에 가는 것은 안전요원으로써 팀의 안전을 최우선 할 것,

내가 속한 팀을 위해 헌신하는 것, 그 방법을 항상 고민할 것, 이 박사님 유 대장님을 잘 보필할 것,

무슨 일이든 능동적으로 다가가 실천할 것, 여유시간을 사용함에 있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에 투자할 것, 내 안의 두려움을 보살피고 게으름이 날 지배하지 않게 할 것,

남극 장보고 기지의 대원과 만나는 인연들에게 좋은 인상을 만들 것-먼저 인사하고 다가갈 것


남극 가는 길은 멀구나

 길고 긴 비행을 거쳐 크라이스처치에 2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남반구의 하늘은 우리의 북반구보다 더 파란 것일까? 하는 의문을 만드는 쾌청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하기 위해 국내선 티켓팅을 하는데, 대부분의 과정이 기계로 진행된다. 어쩌면 인건비가 비싼 뉴질랜드에서 당연하게 진행되는 변화의 과정이겠지만 아직은 조금 낯설고 생각보다 효율적이진 않았다.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의 공항 근처 Sudima 호텔에 도착했다.

공항 근처에 위치하여 도보로 이동할 수 있어 편리하고 시내까지 차로 15분 정도, 대중버스 정류장도 바로 앞에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반면,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가격이 비싸다는 큰 단점이 있다. 하루에 200$! 이건 거의 내가 묵었던 호텔 가격 탑 5안에 들지 않을까? 중국에서 트럭기사들이 이용하는 20위안(3500원 정도)짜리 숙소에도 조금 더 깎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는 나인데 200$는 정말 출장비가 나오지 않았다면 웬만해서는 이용하지 않을 가격이다.

긴 이동이 끝나고 화창한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서의 하루를 마감한다.

예전 산악부 형들과 밀포드와 루트번 트레킹을 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반지의 제왕 촬영지도 있고 잘 보존된 산이 인상 깊은 곳이었다.

우리나라 극지연구소는 장보고기지로 이동할 수 있는 독립적인 항공편이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출발할 때 공항은 뉴질랜드 것을 남극에 내려서의 활주로는 이탈리아가 준비한 것을, 항공 시스템 및 주요한 결정은 미국의 것을 따라야 했다.

이종익 박사님의 말을 옮겨보자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이 남극을 오고 갈 수 있는 비행기가 없다. 그래서 미국이 뉴질랜드를 오고 갈 때를 잘 이용해서 남극 출입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비행기를 이용했다면 쇄빙선 아라온호가 미국기지 해안가로 접근하는 뱃길을 열어 준다든지 하는 보답을 해 줘야 한다고 하셨다.

각국 간의 경쟁도 항상 존재하겠지만, 남극이 인간 문명과 떨어진 척박한 환경인만큼 각국의 협력을 요구하는 곳인 것 같아 우리 인류가 환경파괴로 영화'투모로우'같은 사태를 만나기 전 팀워크를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속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은 두근거렸다.

한국에서 우리 팀보다 조금 더 늦게 출발한 다른 팀과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오는 분들의 일정으로 뉴질랜드에서 며칠 기다리며 남극에서 사용할 여분의 의류나 먹거리를 챙기고 호텔에 딸린 체육관에서 운동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뉴질랜드가 운영하는 남극센터는 팀이 묵은 Sudima 호텔에서 걸어서 몇 분 안에 갈 수 있는데,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실제 남극을 가 볼 기회가 없는 일반 관광객에게 좋은 구경거리이며, 남극 탐험과 역사에 대하여 알 수 있는 훌륭한 장소이다.

 10월 24일 입남극 전, 기본적인 아웃도어 장비, 화재예방에 관한 교육을 간단히 받았다. 산악활동을 하면서 대부분 경험한 것들이라 그렇게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준비하고 함께 갈 박사님과 팀원들과 교육을 받으면서 얼굴을 익히는 기회가 되었다.

24일 저녁, 연락 주기로 한 시간인데도 아직 비행기 확정 소식은 오지 않았다. 인공위성과 기상관측 장비가 아무리 발달했다고는 하나 아직 사람의 생명이 달린 비행기를 띄우는 것에는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한가 보다.

남극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예정된 날짜에서 하루 연기되었다가 다시 예정된 날짜에 갈 수도 있다고 대기를 한참이나 하고 있다.

저 옆으로 우리와 함께 들어갈 이탈리아 팀도 호텔 로비의 한편을 차지하고 비행기의 출발 소식을 기다린다.

맥주잔을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다리며 절반의 사람들은 출발하지 못할 것이라 하고, 절반은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하듯 토론을 하기도 한다.

 24일이 시곗바늘이 25일로 넘어가기 얼마 전, 비행기는 예정대로 떠난다는 확인을 받았다. 물론 그 가능성은 바뀔 수 있다는 인상을 충분히 남기고서.

그전까지만 해도 하루가 연기되었다고 알고 있었기에 일행 모두의 움직임이 실전 모드로 전환되었다.

웬만한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마무리 짐을 싸는 것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내일 새벽 일어날 생각에 긴장감이 돌고 하루의 피곤이 몰려오지만 지금의 이 기분을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확인을 받고 마지막 준비, 샤워, 간단한 기록까지 새벽 3시가 넘어갔다. 수면이 부족할 것이 분명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 앞에서 수면을 바라는 마음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다 챙긴 걸까? 나를 포함한 팀원들을 챙길 수 있을까? 온갖 걱정과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인 육신의 꿈의 나라 귀환을 방해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그래도 자야 한다는 이성이 움직인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본다. '흐음, 후~ 흐음, 후~'

보딩 패쓰 들고 셀카 한 장!

준비한다고 했지만 분명 부족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 부족한 것을 통해 나는 배워 나갈 것이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내 안의 하찮은 경험들을 믿고 독자적 판단을 하거나 팀에 방해가 되거나 대장님이나 선배 요원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일이 더 위험한 일이다.

25일 새벽 5시, 모닝콜을 주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체크아웃을 하고 팀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들 약속한 시간 안에 정확히 나오셨고, 각종 연구 장비와 개인장비를 카트에 실어 뉴질랜드 남극 센터로 향한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공항에서의 체크인과 비슷한데 짐의 무게를 재고 몸무게까지 기록하는 것이 차이점이랄까?

7시 체크인을 했지만 비행기는 연기되었고,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렇게 되는 거였으면 머리가 띵 할 만큼 수면시간을 반납하며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는데..

얄팍한 생각에 부족한 수면에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11시, 비행은 다시 연기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 이제는 기다리고 않고 대기실 구석을 찾아 잠을 청한다.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실제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남극으로 간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다른 팀원 분들도 똑같이 느끼는지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카메라가 등장하여 이 순간을 기록에 남기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남극 프로그램 로고가 붙은 하얀색 비행기가 멋있어 보인다.

착륙 준비에 바쁜 이탈리아 하계팀원

두 번의 연기 끝에 드디어 비행기에 승선했다. 그렇다! 이제 남극으로 가는 것이다!

정신없이 들어간 기내 안은 전기선 및 온갖 장치들이 그대로 보였다. 투박한 좌석은 하계시즌을 위해 개조한 허접하고 수직으로 고정되어서 불편한 것이었다. 미지의 대륙과 인연을 맺은 수십 명의 사람을 빡빡하게 실고 남극으로 가는 8시간 이상의 비행의 쾌적한!? 질을 예상해본다.

비행기를 타며 받은 샌드위치가 유일한 낙이었다면 남극대륙에 다가가며 쌀쌀해져 오는 날씨와 방음이라고는 전혀 안 되는 기내, 좁은 공간 속에서 장시간의 비행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딱히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저 남극이라는 지구의 끝을 향해 간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참을 인자를 수 없이 그리는 수밖에.

조종사가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하고 기내는 바빠졌다. 옷을 더 겹쳐 입고, 아이젠을 바로 신을 수 있게 준비했다. 프로펠러의 굉음 속 바퀴가 내려가는 기계음이 들리고, 곧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벨트가 몸을 당기고 고도를 내려가고 있음을 느낀다.

'덜커덕' 해빙과 바퀴가 부딪치며 기체는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선배 안전요원을 따라 내리니 장보고 월동대 분들이 해빙 위 활주로에 마중 나오셔서 북적거린다.

도착한 활주로에 마중 나오신 월동대 분들과 이탈리아 쪽 분들 때문에 여기가 남극인가? 아니면 어느 추운 지방 공항인가 싶은 느낌이다. 남극의 첫 발을 사진으로 남겨야지 했던 계획은 실행할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짐을 옮겨 싣는 것으로 랜딩을 마친다.

장보고 기지는 서울에서 13,283km 떨어진 곳에 있다. 내 삶에서 한국을 가장 멀리 떠난 곳으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나는 한껏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장보고 기지로 향하는 설상차에 몸을 맡기며 남극의 차가운 공기를 듬뿍 들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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