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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5. 2017

Part 1. 2 농부의 인생

고난을 넘어


줄곧 고추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이 언젠가는 포도를 심으셨다. 

고추농사 수익만으로는 두 아들 대학 등록금이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아서였다. 자식들을 위한 삶을 건 도전이었으리라. 생존의 손짓이었으리라. 새로운 작물을 키운다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웠으랴! 부모님의 애타는 마음을 집안에서 컴퓨터와 티브이에 빠져있는 아들이 어찌 알았으랴?


포도 재배 이전 매운 청량고추가 주작물이었기에 어린 형제가 먹는 양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달달한 포도를 먹는 것에는 한계가 없었다. 여름이면 포도가 주식이 되었다.

어디에도 쉽게 빠지지 않는 대식가 동생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그 당시 포도 두 알, 세알을 한꺼번에 먹는 기술을 터득했다. 빠르게 평균적으로 많이 먹으려면 두 알 이상의 포도를 엄지, 집게손가락을 이용하여 잘 잡고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입술과 앞니를 잘 이용하여 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시작한다.  앞니가 껍질과 알맹이 사이를 벗길 수 있도록 엄지로 잘 밀어주면 된다. 잘만 잡으면 세알까지도 충분하다.

알맹이 안의 씨를 뱉어 내는 일은 '폭풍 흡입과정'에 제외한다.  입안을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니 그냥 먹으면 된다. 몸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실제 포도씨의 레스베라트롤이라는 성분이 혈청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강한 항산화 작용을 하며, 피부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도가 잘 자라 수확할 수 있게 된 어느 해 7월이었다.

대규모 포도농장은 보통 일 년에 두세 번 8~9월 사이 수확한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포도나무 위에 비닐을 입혀 출하시기를 앞당겼다. 때를 앞당겨 몇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노력이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포도만 먹으면서 작업하셨다.

한 송이 한 송이 정성스레 박스 넣어 차에 실었다. 동네가 고추가 주작물이라 근처에는 포도를 취급하는 공판장이 없기에 창원으로 가야 했다.


경매장에 박스를 내려놓고 돌아오면, 새벽녘 경매를 하고, 다음 날 돈을 부쳐 주는 시스템이다.


판매금액이 통장으로 부쳐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은행을 다녀온 부모님은 금액을 확인하고 크게 낙심하셨다.  돈이 너무 적었다. 당시에는 포도 한 박스를 10kg 단위로 거래했는데, 부쳐온 금액은 한 박스 오천 원.

100박스, 1000kg의 포도를 보냈는데, 돌아온 금액은 오십만 원이었다.

이 50만 원을 벌기 위해, 일 년 동안 이른 아침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  몇 십 번 몇 백번 포도밭을 찾았다. 솟아 오늘 해에 얼굴은 익었고, 전지가위를 든 손가락에는 물집이 잡혔다. 몇 만 원부터 몇십만 원하는 농자재가 투자되었다.


포도는 이미 팔려나갔고.. 되돌릴 길이 없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일 년의 고생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턱없이 작았기에 어머니는 너무나 분했다.

이대로는 가슴이 터지고, 눈동자가 틔어 나올 것 같았다. 조용한 시골 동네라 집안에서는 운다면 다른 이웃들에게 방해될 것이기에, 포도밭에 갔다. 자식 같은 포도나무를 보며 털썩 주자 앉아 땅을 치며 가슴을 치며 울었다. 고함을 쳤다. 비명을 질렸다.

세상이 미웠다. 무능력한 남편이 미웠다. 이토록 무거운 삶을 짊어진 내 운명이 미웠다.


억울하고 미운 만큼 그 한 맺힌 소리 역시 컸으리라. 들판을 울려 퍼지는 아내의 울음이 부끄럽고 슬프셨던지 아버지는 수건을 가지고 와 입을 막으려 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당시의 이야기를 하시며, 어머니의 음성은 떨렸고 눈가는 촉촉해졌다.

마치 아기 잃은 작은 어미새의 절규 같았다. 조그마한 덩치의 어머니가 땅을 치며 울고 있는 모습, 그 뒤로 우두커니 서게 신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나도 눈물이 핑 돈다.


얼마나 울었을까?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포도밭 근처에는 청각장애와 정신장애를 가진 아저씨가 계셨다. 울음소리를 듣고 구경을 오신 그 아저씨는 혀 짧은 목소리로 "와 우노?(왜 울어), 와 우노?"를 연신 물어됐다.


아저씨의 어눌한 말투와 지금의 상황이 황당하고 웃겨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와울긴! 다 이유가 있다! 몰라도 된다!"

그러자 아저씨는 "이제 다 우릇나(울었나)? 더 울어라! 울어봐라~ "

"울다가 웃으면 궁둥이(엉덩이)에 털 난데이"( 혀 짧은 소리)

이 한마디에 어머니는 더 크게 웃어야 했고, 가슴을 찢어 놓았던 현실은 과거의 기억의 한 챕터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이후, 장례식, 마을의 큰 행사에서 어머니를 만난 아저씨는 시간을 잊은 듯, 다시금 어머니를 놀리셨다. "울어봐라! 더 울어봐라!" 그리고 어머니는 웃음으로 대답 할 수 밖에 없었다.


슬픔과 기쁨의 순서가 바뀌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모순적인 일들이 많다. 울다가도 웃을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 모두 어떤 일이 있든,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해 여름, 포도 작업을 하는데, 아버지는 놀러 오신 친구분들과 반주 삼아 마신 낮술에 운반 작업을 못하게 되었다. 힘을 써야 할 장정들이 술이 취해 일을 못하게 된 것이다. 포도를 다음 날 경매장으로 가져간다면, 가격은 훨씬 낮아질 것이기에, 어머니는 친하게 지내시던 친구분들의 도움을 청했다. 술 취해 있는 친구분들의 아내분들이기도 했다.


세명의 시골 중년 여자들에게 포도 한가득 실린 트럭을 운전해 도시로 나가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세분 중 운전에 가장 능한 오현이네 어머니가 운전대를 잡았고, 2명은 조수석에 앉아 이정표를 찾으며 보조를 했다.

한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길을 잃고 헤매길 몇 시간, 겨우겨우 경매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매장에는 수천수만 개의 채소, 과일들이 거래되기에 포도박스를 내려줄 전담 직원은 없었고, 수십 개의 포도박스는 어머님들의 손을 거쳐내려졌다.

저녁 먹을 짧은 시간도 없이 아파오는 허리를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하늘 별들이 총총이고 있었다.


그날 새벽 3시, 경매사가 연락이 왔다. "얼마라꼬?" 전화를 받으신 아버지는 금액을 다시 확인했다.

경매 가격이 보통 시세보다 너무 낮아 연락이 온 것이었다.

"뭐라꼬? 마 팔지 마라! 안 팔란다!"

포도 가격이 너무 헐었다.  한-칠레 FTA 체결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더라도, 그 가격은 납득할 수 없었다. 차라리 주변의 친구분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낮겠다고 생각하셨다.

 어머니 특공대 세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포도를 찾으로 간 그곳에는 쌓여진 포도박스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안 좋은 일이 몰아서 오려는 것일까? 태풍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고 이미 비는 시작되었다.

오전 10시, 평소 어머니와 같은 절에 다니던 신은미 씨가 전화가 오셨다. "비 오는데 이상 없나? "

"논에 물이 많이 찼다. 그카고 어제 경매 봤던 포도는 팔지도 못하고 한 트럭이나 있다!"

"아이고! 걱정 없을끼다. 내가 하나님한테 전화했다. 포도는 다 싣고 온나. 우리 아파트로 싣고 온나!"

아주머니는 사람을 좋아하는 부녀회장님같이 착하고 푸근하신 분이었다.


부모님은 걱정반 기대반으로 창원의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도착하니, 아주머니는 바로 손뼉을 치면서 장사를 시작하셨다.

 "자~! 자~! 포도 한 박스 만 원! 신선한 포도 한 박스 만 원! 당도가 장난 아님미데이(아닙니다)!"

평생을 농작물만 키우며 직접판매를 해본 경험이 없던 어머니였다. 당연히 손님들에게 포도를 판매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 못했고 부끄러워 트럭 뒤에 숨어 그 모습을 구경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역시, 말 없는 식물을 벗 삼아 한 평생을 사셨으니 장사 수완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우렁찬 목소리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울렸고, 그 사자후는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찾아오더니, 시식을 해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따 맛나네!" "아~ 맛있네"

막 수확하여 7월의 태양을 머금은 포도는 싱싱했고, 여러 유통과정을 건너뛰어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몇 분이서 구입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0박스의 포도는 금세 팔려나갔다.

그렇게 부모님은 신은미 불자님의 도움으로 일 년의 고생을 겨우 보상 받았을 수 있었다.



더 큰 위기


태풍 '매미'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2003년 9월 12일 저녁, 경남 사천 부근 해안에 상륙한 매미는 태풍 관련 이전 기상 기록을 모두 갱신하며 경남을 중심으로 영호남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사망 실종자가 127명, 재산피해자 3조 4천억 원을 넘을 것으로 미디어 보도했다. <사망자, 재산 피해 다시 조사>

그리고 그 피해액에는 부모님의 논과 포도, 고추 비닐하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현재의 삶을 지탱해주고, 미래 준비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들이었다.

더 맛있는 농작물을 생산을 위해 청도천(지방하천) 근처의 비옥한 논을 선택한 부모님의 선택은 태풍 '매미'를 만나 재앙이 되어버렸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피해 현장은 그 어떤 것보다 충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  논과 비닐하우스는 강둑이 터지면서 쏟아져 나온 검은 진흙과 떠밀려 온 각종 쓰레기로 뒤덮여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각종 농기계, 농장비들은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였고 수 킬로 미터를 떠내려가서 고철 쓰레기가 되어 발견되었다.


가을의 파란 하늘과 더불어 황금빛으로 익어가던 벼와 채 다 수확하지 못했던 포도는 수장되었다. 여러 방송국에서 태풍 피해 현장 취재를 위해 동네를 찾아왔다.  전국에서 손꼽을 만큼 피해 상황은 처참했고, 정치권이며 행정부에 높으신 분들도 이곳을 찾아왔다.

마을 입구가 물에 잠긴 동네의 친구는 집에 돌아가기 위해  돛단배를 이용해야 될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어머니는 하늘을 원망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펌프를 동원해 물을 퍼내며 당장은 물이 빠지길 기다려야 했다. 수위가 점점 내려가고 잠겼던 농작물이 드러났다.  태풍 매미에 무너진 재방이 삼켰던 벼와 포도나무는 강한 생명력으로 삶을 보전했다.  벼는 논바닥에 누워 병이 들어 대부분이 상품성을 잃었지만 죽지 않았다.

물속에서 숨 쉬지 못해 시들시들 힘들어했지만 포도나무도 살았다.

생명은 어떤상황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부모님 역시 포기하지 않으셨다.


검은 진흙과 쓰레기, 떠내려온 각종 건축, 농자제로 가득한 논밭을 치우는 일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진흙 잔뜩 묻은 작업복이 한가득 쌓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걱정되어 찾아온 친척이나 이웃의 일손 돕기가 이어졌다. 더디게 진행되던 복구작업은 몇 주일 뒤 군인들이 지원 나오면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끼니를 굶지 않고, 학교도 갈 수 있었다.


벌써 십 년이 넘은 일이다. 현재는 이전과 비교해 많은 것이 나아졌다. 제방을 보수하고 자연재해에 대한 보험이 생겼다.  한편 한국 사회의 농업은 점점 더 공장화, 시장경제화되었다. 부모님 같은 소규모 농가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농부는 알 길 없는 자연에 순응하며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한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생물을 돌보느라 육체적으로 힘들다.  공산품처럼 정해진 가격 없이 변덕쟁이 꼬마 아이 같은 시장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 생물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삼성 같은 대기업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국 사회에 몇 % 밖에 되지 않는 농촌도 챙겼으면 한다. 농업은 그 충분한 가치가 있다. 농업과 농촌은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 외에도 환경보전, 경관 제공, 전통문화 유지 계승 및 식량안보 같은 일반적 산업과 다른 다원적 기능이 있다. 헌법 123조에도 '국가의 농어업과 중소기업의 보호 육성과 농어촌 종합개발과 지원 의무' 명시되어 있다.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맡겨 놓기에는 너무 약하고 중요하다.


인생에 어디 꽃 길만 있으랴? 진흙길도, 돌길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농부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해줬으면 한다.  민초의 삶을 품은 국가가 내 부모님이 길을 잃지 않도록 더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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