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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7. 2017

Part 6. 10 남극일기 #10

삶은 계속 된다


다행히 큰 상처나 부상은 없었다. 만약 골절이나 동상에 걸렸다면... 비행기 편이 많지 않은 이 남극대륙에서 환자 수송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문명과 수천 km 떨어진 이곳에서 의사 선생님과 기지의 모든 분들에게 큰 짐이 될 뻔했다.

죽음이라는 헤아려 보지 못한 상황을 만나 놀랜 마음을 제외하면, 떨어지며 찍혀 이마와 몸통에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적절한 치료와 내가 한동안 잘 수 있도록 해주었다.

팀이 들어오기 3일 전 미국 남극 프로그램 팀과 일하던 영국 빙하 물리학자가 스노모빌을 타던 중 크레바스에 빠져 숨지는 일이 있었다.

캐나다 헬기 조종사가 호주 남극 Davis 기지 근처의 20m 깊이의 크레바스에 빠져 숨지는 일이 있었다. 그는 30년 이상을 북극과 남극에서 비행을 한 배터랑이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장보고 기지의 국기 게양대 앞에서 고(故) 김재규 대원의 추모식이 열렸다.  2003년 12월 남극 세종 기지의 전재규 대원은 조난사고로 실종된 동료 대원을 구하기 위해 수색에 나갔다가 순직했다.

이날따라 변화무쌍 한 남극 날씨도 함께 슬퍼하는 듯 장보고기지를 회색빛 구름으로 잠잠히 감쌌다. 사고 당시 함께 월동했던 분들도 계시고, 나의 사고도 있었던 만큼 많은 분위기는 무거웠다. 우주의 몇 십억 년의 빛과 시간을 넘어 미지의 세계를 넓히고, 3천 미터 빙하 아래를 조사하는 시대에 살지만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한다. 특히 남극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오지다. 도처가 위험지대다.

나는 나대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안전요원으로서 안전을 지키지는 못 할망정, 내가 그 대상자가 되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의무실을 나온 뒤부터 온 기지의 월동 대원, 하계 대원, 헬기 파일럿까지 나에게 안부를 물어왔다. 크게 다치지 않았고, 아직 남은 기간이 많기에 꿋꿋이 잘 생활해 내는 것이 수많은 안부에 대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해병 때 보다 더 짧게 머리를 밀었다. 필드에 나가면 한 발이라도 더 걷고 체육관에서 더 열심히 운동했다. 주방 설거지에 저녁 청소에 더 참가하려 애썼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덧 K 루트 팀은 내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월 말에 들어와 장보고 과학 기지 3차 월동대를 떠나보내고, 하계대의 연구 활동과 4차 월동대의 남극 적응 및 하역작업에 정신없이 2달이 훌쩍 지나갔다. 아름다운 얼음대륙을 실컷 누볐고 원치 않았지만 인생의 큰 배움의 순간도 있었다. 이제는 내가 속한 팀의 출남극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를 태워갈 아라온은 해빙을 깨면서 가까워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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