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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artist Jul 25. 2017

Part 2. 2 나의 하얀블랙홀

책 밖의 멘토를 찾아라!

하얀블랙홀


SBS스폐셜 '하얀블랙홀' 2005년 박정헌 최강식의 히말라야 조난 생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의 이야기다. 하얀블랙홀의 두 주인공의 삶은 강력한 중력으로 내 많은 부분을 흡수했고 정신과 내면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대학교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산악부선배 강식형과 거벽등반가 박정헌 대장이 히말라야 촐라체에서 하산 중, 크래바스에 빠지는 사고로 귀국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일년 전 강식형을 처음봤다. 형의 첫 인상은 시원시원했다. 여자는 물론 남자도 좋아 할 성격의 소유자였다. 키도 크고, 술도 잘 마시고, 선배님들을 위해 트로트도 곧 잘 불러 인기있는 후배였다.


히말라야 고산등반을 간다는 소식을 들은 후,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지리산 종주에서 형을 다시 만났다. 

 힘들었던 지리산종주 중 가장 인상 깊은 선배는 강식형이었다. 뭐랄까? 몇 명의 1학년 중에 한명인 나에게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늦은 새벽까지 선배형들과 후배를 살뜰이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대피소 한 구석에서 잠시 앉아 잠들었다 일어나 에너자이저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박정헌 대장은 경상남도의 가샤브롬(히말라야 8천미터 14좌 중) 원정대 발대식에서 먼 발치에서 처음 뵜다. 무엇보다 전문 산악인을 볼 수 있어 신기했다. 포탈사이트에서 통해 사진도 찾아보고 최근 등반의 기록도 살폈다. 



그 짧은 만남이후, 나는 새내기 대학생으로서, 산악부 신입생으로서, 두 분은 히말라야의 설산의 세계를 누비며 1년을 보냈다. 그리고 슬프게도 두분을 다시 만난 곳은 경희대학교 의료원이었다. 


두 분의 상태는 심각했다.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이 검게 변해 있었다. 강식형은 다리골절도 있었다. 

삶을 향한 끝없는 수술의 여정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강식형의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렸고, 부모님 집에서 군대 갈 날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간병을 자원했다.


형의 사고 소식에 가슴만 아파하던 내가 도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죽음의 얼음골짜기를 빠져나온 생명의 가치는 작지 않았다. 경희대 의료원에서 2달간 있으며 8번의 크고 작은 수술과 매일 거듭되는 드레싱을 견뎌내야 했다. 내가 함께한 시간 이외에도 더 많은 수술과 아픔이 있었으리라. 


 검게 변한 손가락와 발가락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수술하여 손가락의 적지 않은 부분이 사라진 것을 보는 것은 더 큰 아픔이었으리라. 

그렇게 건강하던 형의 인생에 닥쳐온 시꺼먼시련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후배로서 마음 아픈 일이었다.

형이 몇 천만배 힘들었겠지만 나도 지체갔다. 형은 두 다리가 부러졌기에 모든 이동에 내가 필요했다. 손가락 수술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하니 작은 행동 하나, 작은 행위는 곧 내 일이었다.


예전 정강이 뼈가 골절되어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해 본적은 있었지만, 간병인으로서 병원에 지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등산과 평소의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젊은이라고 해도 계속 되는 병원 생활은 정말 쉽지 않았다. 병실의 사람들이 바뀌고 형의 상태도 조금씩 나아졌지만, 병원이 답답하기만 했다. 


위로를 하고, 힘을 주어야 할 사람은 건강한 간병인인 나였는데, 오히려 힘을 준것은 형의 긍정과 유쾌함이었다. 같은 병동의 의사, 간호사 모두 형의 밝은 미소를 좋아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의료원 전체의 스타가 될 조짐도 보였다. 가끔 의사선생님이 절대 피면 안된다는 담배를 몰래 피워 나를 걱정스럽게 했지만, 형은 나를 위해주었다. 26살 한창의 나이에 19개의 손가락 발가락을 잃었는데도.


5월의 완연한 봄, 어느 새벽이었다. 잠이 안 오는지 잠시 뒤척이던 형은 물었다.

"대하야! 밖에 마실나가볼까?"

"네? 못나가는거 아니에요?"

"괜찮다! 한 번 나가보자!"

경희의료원의 환자들은 병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던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경희대 의료원을 빠져나왔다. 나는 형의 휠체어를 밀고, 모두가 잠든 새벽의 어둠을 틈타 빠르게 의료원 조명 밖으로 사라졌다. 

'야호! 탈출이다!' 

육신이 아파거나 다쳐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로 가득한 병원을 벗어나 경희대의 하얀꽃과 연녹색 정원이 잘 어울려진 캠퍼스를 누볐다. 대학생의 젊음이 깃들어 있는 교정을 산책하며 그 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평화의 전당은 그 명성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작은 병실 창가로만 보던 곳을 새벽공기를 마시며 개인관람하니 운치가 있었다.   


이 일탈로 내가 답답해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강식형은 하루 한 시간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시간를 주었다. 

모든 치료와 병원 속 일과가 끝나는 11시쯤, 화장실을 갔다 온 후, 나는 서울의 밤 공기를 가르며 뛰었다. 경희대의료원을 시작으로 한국외국어대, 고려대, 멀리는 한강을 타고 한참 뛰어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달리기라는 것이 가져다 주는 마음이 평화, 힐링의 효과를 배웠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형이 남겨둔 과정은 한참이나 남았지만 경희대 의료원을 뒤로하고 해병대 입대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다.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학교의 선생님만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위인전 안에만 위대한 스승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분야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내 삶 속에서 스승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보같게도 이미 도전과 무한긍정으로 삶을 사는 멘토를 만나고서야 이 것을 깨달았다.


 강식형을 도운 짧은 그 시간은 군대 제대 이후 오지탐사대, 중동 거벽등반대, 루마니아 글러벌서밋캠프 등 각종 산악활동의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이 활동들은 박정헌 대장님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SBS스페셜 '인생횡단'의 출연자로서, 히말라야 무동력 횡단팀의 대원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산악스키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자연을 향한 탐험가를 좋아한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 인류가 수백만전부터 삶을 위해 이어온 분야이기 때문이다. 탐험정신은 위험하지만 그 보다 위대하다. 안락한 환경을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영역, 위험한 영역을 먼저 경험한 개척자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발전했고 우리는 현재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산을 통해 만난 강식형과 박정헌대장보다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의 빛나는 인생이 언젠가 나의 그늘에도 들어 올 것이다. 나는 그 선한 영향력으로 계속 성장 할 것이다. 


우리 삶의 멘토를 찾자! 오프라인 만남이 제일 좋겠지만, 요즘은 페이스북이며 온라인을 통해 관심분야의 스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망설이지 말고 연락하고, 부끄러워 말고 질문하자.


오늘은 경희대 캠퍼스 평화의 전당을 내달리던 그 때가 그립다. 내 삶에 영감(靈感)을 주신 두 분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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