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1)

어버이 날

by 서대희

신이 내가 태어날 때 난이도 선택을

매우 어려움으로 해놓은 건 아닐까.




4월이 지나고 조금은 더 행복해지겠지 싶었다.

그 생각이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시험은 예고가 없다.

공부할 시간도 없고,

준비할 틈도 없고,

그냥 어느 날 문 앞에 서 있다.

시험지를 펼쳐보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제들이 나와 있고,

시간은 이미 흘러가고 있다.

빚을 다 갚고 채 두 달이 안 된 시간이었다.

파주에서 내려오던 그 길,

핸들 위에 손을 올려두고


이제는 방향을

고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그날로부터.

그 다짐이 아직 따뜻할 때였다.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2025년 5월 8일.

어버이날.


새벽에 식탁 위에 도톰한 봉투 하나를

올려놓고 출근했다.

직접 건네기엔 아직 낯간지러운,

무뚝뚝한 경상도 아들 나름의 감사 표시.

말로 하면 이상하게 작아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봉투로 했다.

그게 우리 집 방식이었다.

아침에 카톡이 왔다.

엄마였다.

고맙다고.

대충 낯간지러운 말투로 받아쳤다.

별거 아닌 척.

근데 폰을 내려놓으면서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요즘은 매일 엄마 얼굴을 보고 있었다.

기존에 살던 집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엄마는 가게 근처 월세방을 하나 잡았다.

그렇게 치킨집 코앞에 살게 됐다.

마침 그 무렵 몇 년 만에

대구 근처에 현장이 생겼다.

타지를 전전하던 아들이

매일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그게 꽤 좋은 눈치였다.

말은 안 했지만 저녁에 들어오면

밥상이 차려져 있는 날이 늘었다.

그게 표현 방식이었다.

우리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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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오랫동안 하시던 택시를 그만두시고

택시를 판 돈으로 고향에 농막을 지어

주중엔 거기서 자연인처럼 지내고 계셨다.

그러니 저녁엔 엄마랑

단둘이 있는 날이 많았다.

근데 이상하게 단둘이 있어도

깊은 얘기를 잘 안 했다.

밥 먹고, TV 보고, 각자 방으로.

그게 전부였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처음 시작했던 목수.

그 기억만 가지고 있다.

매일 입고 들어오는 옷에

항상 뭘 묻히고 오거나,

먼지 구덩이가 된 채로 들어오니

그냥 아직 목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현장관리소장이라고 하기엔 하는 짓이

영 그 모양이었으니까.


그만큼 집에서 대화가 없었다.

서로 옆에 있는데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냥 우리 집이 원래 그랬다.

말이 없어도 밥상이 차려져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집.





퇴근길에 잠깐 멈칫했다.

고등학교 이후로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적이 없다는 생각이

그날따라 불쑥 들었다.


매년 어버이날이 오면 봉투로 때웠다.

그게 편했으니까.


말로 하는 것보다

돈으로 하는 게 덜 낯간지러웠으니까.

근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게 부족한 것 같았다.

꽃집에서 카네이션을 하나 샀다.

손에 들고 나오면서 이게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것들을

하나씩 배워가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 치킨집은 집에서 걸어서 1~2분 거리다.

말이 치킨집이지

공장단지 근처에 있는 호프집 같은 곳이다.

퇴근 후 직장인들이 밥도 먹고,

치킨도 먹고,

만들어달라고 하면 음식 솜씨 좋은

엄마가 뭐든 다 만들어주는 집.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보험금으로 차린 가게였다.

그 자리를 30년 가까이 지키고 있었다.

30년.

한 자리에서 30년을 버틴다는 게 어떤 건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흔들렸을지.

근데 엄마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게 엄마의 방식이었다.


떠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

어쩌면 그 고집이 어디서 온 건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저녁 손님이 빠진 시간이었다.

아직 치워지지 않은 테이블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빈 맥주병들, 덜 치워진 접시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름 냄새.

낮에는 현장이고 밤에는 여기가 집 같은 사람.

엄마는 이 공간에서 30년을 살아온 것 같았다.


"왔다."


한마디 하고 카네이션을 계산대 한쪽에 올려놨다.

엄마는 주방 쪽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어, 왔나." 한마디.

평소랑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릇 몇 개를 들고 주방으로

가져다주면서 엄마 얼굴을 봤다.

순간 뭔가 싸했다.

아침 카톡이랑 분위기가 달랐다.

표정이 무거웠다.


아니, 무거운 게 아니라 뭔가를

꾹 누르고 있는 얼굴이었다.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붙들고 있는 사람의 얼굴.

이 사람이 저 얼굴을 하고 있으면

보통 좋은 얘기가 아니었다.

테이블을 하나씩 닦으면서

어떻게 물어야 할지 생각했다.


그냥 모른 척 넘길 수도 있었다.

아마 예전이었으면 그랬을 것 같다.

피곤하다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을 것 같다.


근데 그날은 그게 안 됐다.

테이블을 다 치우고 나서 가게가 조용해졌다.

주방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그제야 물었다.


"무슨 일 있나."


엄마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선을 피하면서 행주만 만지작거렸다.

이 사람이 말을 못 꺼낼 때는

진짜로 무서운 게 있을 때다.


"혹시 뭐 사고 쳤나."


그 말에 엄마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그냥 얘기해. 들을 때까지 집 안 들어갈 거야."


협박도 아니고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들을 준비가 됐다는 말이었다.

그제야 엄마가 입을 열었다.




몇 년 전 그 일 이후로

엄마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걸 알고는 있었다.

모른 척했던 것도 있었다.

재건축이 확정된 후

엄마는 집 명의를 나한테 넘겼다.

말은 안 했지만 그게 일종의 죄책감에

대한 보상이라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근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내 명의로 이미 난 기대출이 크게 있어서

재건축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았다.

섣부른 명의 변경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엄마 명의로

따로 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내야 했다.

아버지는 택시를 판 돈으로

이미 중도금 일부를 내셨다.

그 돈이 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핸들을 잡고 벌어온 돈이었다.

남은 중도금이 5천만 원.

엄마가 받을 수 있는 대출은 4천만 원이 조금 안 됐다.

천만 원이 모자랐다.

그 천만 원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치킨집 근처 아줌마들이랑

용돈벌이 삼아 주식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많게는 3~4만 원,

적게는 1~2만 원.

단타로 조금씩.

치킨집 쉬는 시간에 폰을 들여다보면서

한 종목씩 들어갔다 나오는 정도.

그 자체는 괜찮았다.

근데 그 무리 중 누군가가 말했다.


조만간 코스닥에 상장될 비상장주식이 있는데,

지금 사면 나중에 몇 배 이익을 남길 수 있고,

떨어져도 원금은 지킬 수 있다고.

천만 원이 모자라던 엄마한테

그 말이 들어간 거였다.

단순히 욕심이 아니었다.

그 돈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했던

엄마한테 그 말은 너무 딱 맞게 들어온 거였다.

엄마는 그 돈을 넣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주식 리딩방.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뒤에 올 말이 뭔지도.


설마....


했는데...


엄마의 뒷말은 뻔했다.


사기였다..


잠깐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그냥 멍했다.

빚을 다 갚고 채 두 달.


신이 내가 태어날 때 난이도 선택을

매우 어려움으로 해놓은 건 아닐까.


그 생각이 스쳤다.

웃기지도 않은데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황당할 때 사람은 웃는 것 같다.

눈물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고, 그냥 헛웃음.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그 웃음.

근데 그 웃음 뒤에 분노가 올라왔다.

허탈함도 올라왔다.

왜 또,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왜. 왜 또. 채 두 달인데.


근데.

그것보다 먼저 엄마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공포에 질린 눈빛.

예전에 봤던 그 눈빛이었다.

그때랑 똑같은 눈빛.

이 사람이 나한테 말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혼자 들고 있었을까.

며칠을. 아니면 몇 주를.

치킨집에서 혼자 테이블 닦으면서,

손님 받으면서, 설거지하면서.

아침에 카톡으로 고맙다고 하면서.

이걸 혼자 품고 있었던 거다.

분노보다 그게 먼저 올라왔다.

화가 나는데 안쓰러운 게 먼저였다.

예전의 나였으면 이미 소리를 질렀을 것 같았다.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 같았다.

근데 그날은 달랐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참는 게 아니라 뭐가 먼저인지 아는 것.


분노보다 안쓰러움이 먼저라는 걸 아는 것.

잠깐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말했다.


"일단 퇴근하면 집으로 와. 거기서 얘기하자."


가게를 나오면서 계산대에 올려뒀던 카네이션이 생각났다.

다시 들어갔다.


엄마는 아직 주방에 서 있었다. 등이 보였다.

조용히 다가가서 엄마 앞치마에 카네이션을 달아줬다.


아무 말 없이.

엄마도 아무 말 없이 받았다.

잠깐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순간 엄마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울지는 않았다. 소리도 없었다.

그냥 아주 조금.

그게 그날 우리 사이에서 제일 긴 대화였다.

집에 돌아와서 혼자 앉아 있었다.

조용했다.

아버지는 농막에 계셨고,

엄마는 아직 가게를 마저 닫고 오는 중이었다.

혼자였다.

머릿속이 다시 하얘지기 시작했다.

얼마를 잃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지금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숫자들이 다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몇 년 만에 다시 느끼는 감각이었다.

이 감각. 이걸 또 꺼내야 하는구나.

근데 이상하게 그 감각이 낯설지 않았다.

무서운데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그동안 이 감각을 다루는 법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문이 열렸다.


엄마였다.

공포에 질린 그 눈빛 그대로였다.

가게 문 닫고 오면서 더 작아진 것 같았다.

앞치마에는 카네이션이 아직 달려 있었다.




"엄마, 앉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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