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활 (end)

뒤를 돌아본 경주마

by 서대희

경주마는 뒤를 보지 않는다.

그냥 달린다. 5년이 그랬다.

멈추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2023년 8월과 2025년 4월 사이.

그 시간을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빚을 갚던 5년 동안

늘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원하는 곳을 향한 건지,

그냥 쫓기듯 달린 건지 구분할 여유조차 없었다.

목적지가 있었던 게 아니라

멈추면 안 된다는 감각만 있었다.

달리는 게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조금은 방향을 골라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속도를 바꾸기로 했다.




대표님께 말씀드렸다.

이제 조금은 숨 쉬면서 일하고 싶다고.

그 말을 꺼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5년 동안 악착같이 달려온 사람이

갑자기 숨 쉬면서 살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들릴지 몰랐으니까.


나약해 보일 수도 있고,

의지가 꺾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근데 대표님은

그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구조를 바꿔보자."


기본급에 회사 순이익의

일정 퍼센티지를 받는 형태로.

월급을 정해놓으면 분명히 풀릴 것 같고,

그렇다고 동기 없이 살기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적게 받되 더 잘하면 더 받는 구조.

그게 맞았다.


대표님은 그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말하기 전부터.

빚을 갚던 5년 동안 개인 인스타를 삭제하고 지냈다.

SNS를 한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을 나눌 여유가 있다는 뜻인데,

그 시절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냥 올리기가 싫었다.

현장 끝내고 트럭에 앉아서

허기보다 숫자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뭘 올린단 말인가.


웃는 얼굴로 뭔가를 찍어 올리는 게

그 시절의 나랑 너무 안 맞았다.

그 계정을 다시 열었다.


5년 만이었다.

처음엔 뭘 올려야 할지 몰랐다.

올려도 되는 건지 잠깐 망설이기도 했다.

근데 그냥 올렸다.

조금은 행복한 모습,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

열심히 일하는 모습.

그동안 잠겨 있던 것들을

꺼내놓고 싶었던 것 같다.

버텨냈다는 흔적.

살아있다는 증거 같은 것.

솔직히 말하면 동정을 얻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근데 그것도 지나고 보니

그냥 나한테 취해있었던 것 같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좀 과하지만,

딱 그 경계 어딘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조금 과하다는 걸.

조금 자기 자신한테 도취돼 있다는 걸.

근데 그냥 올렸다.


5년 동안 눈치 보며 살았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었다.

그게 나다울 수도 있었으니까.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

사고 싶었던 것들도 조금씩 샀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근데 막상 그렇게 살기 시작하니까

이게 과연 행복한 건지,

이게 평범하게 사는 건지

오히려 잘 모르겠는 순간도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기도 했다.

너무 오래 달려온 사람은

멈춰도 달리는 꿈을 꾼다고 하던데.

딱 그랬다.

숨 쉬면서 살겠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몸이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즐기고 있는 건지,

즐기는 척하는 건지 가끔 헷갈렸다.

주말에 친구들과 술 한잔,

그동안 못 가봤던 곳들.

그 시절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보복적인 소비들도 꽤 했다.

비싼 건 아니었다.

근데 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것들이었다.

그 작은 것들이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어색해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 내 것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나 자신을 돌봤다.

여전히 빚은 있었지만

그 돈에 얽매인 삶보다 조금은

내 삶다운 삶을 찾으러.



낭만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입에 올려본 시간이었다.



2023년 9월 추석연휴가 내가말한 낭만이 뭘까 하다가 당근마켓 에서 30만원주고 산 자전거로 무작정 혼자 3박 4일로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를 했다.


해보고 싶었던 등산도 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던 인라인스키를 타보겠다고 겨울 내내 탔다
3년동안 거의 안마시던 술도 즐기기 시작하고


매일매일 체력을 기르려 러닝을 했는데 마라톤대회 일주일전 사고를 당해 발목을 다쳐 발목이 낫자마자 혼자라도 뛰어보겠다고 혼자 달렸다. 광안대교도 달려보고 싶어달렸다.


나름 그동안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들켜보려고 동정이라도 받고싶어 중2병 걸린환자처럼. 세상에 조금 내비췄다. 조금은 나한테 취하며 블랙코미디스럽게.. 지금보니 중2병이 맞다 .


북한산 현장 바로 앞에 송추계곡이 있었다. 퇴근 후에 낭만을 찾으러 다녔다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캠도 3개.. 드론도 3개.. 거기다 카메라까지.. 보복소비가 맞다

2025년 3월.

빚을 다 갚던 날,

마지막 이체를 하던 날,

현장..

점심을 먹다가 폰을 꺼내서 이체 확인을 눌렀다.

완료.

잠깐 폰을 내려다봤다.

전화를 할까 생각했다.

엄마한테.

근데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이 감정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도 몰랐고,

울 것 같았다.

지금은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밥을 먹었다.


그냥 조용했다.

오래 짊어지고 있던 게 내려갔을 때

몸이 그걸 바로 인식 못 하는 것처럼.

한참 지나서야 아, 끝났구나.

그 생각이 왔다.




그리고 4월.

이제는 인사를 드리러 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간 파주.

건축주 회사에 도착해서 친구를 먼저 봤다.

넋이 반쯤 나간 표정이었다.

파주로 올라간 뒤 얼마나

갈아 넣었는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보자마자 말했다.


"진짜 어디 가서 내 친구라고 하지 마. 몰골 봐라."


친구가 말했다.


"니는 좀 사람 같네."


역시 친구끼리는 크게 대단한 말이 필요 없다.

서로의 상태를 한 마디씩 확인하고 그냥 웃었다.

오랫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온 사람끼리만 나눌 수 있는 웃음이었다.

그 사이에 긴 시간이 있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

사장실에 들어가 건축주께 인사드렸다.


"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어? 야 인마, 너 인상 좋아졌다?

이제 좀 살만한가 보지? 하하하."


"하하, 요새 피부 관리 좀 하고 있습니다."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잠깐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저 이제 다 갚았습니다. 덕분입니다."


건축주가 말했다.


"고생했다."


그 말이 끝이었다.

의외로 돌아오는 답은 짧았다.

채무관계로 따지면 이제 끝났다는

확인 같은 말일 수도 있었다.

근데 그 말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건네는 말이었다.

태풍 맞던 새벽을 알고,

비 맞으며 보양하던 그 새벽을 알고,

이유도 모르고 자꾸 밖으로 나가던

대출 전화를 받던 그 눈빛을 알고,

그 모든 시간을 같이 지나온 사람이 그냥 건네는 말.

고생했다.

짧았는데 그게 전부였다.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

그냥 그게 전부였다.


오랜만에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하셨다.

바둑판이 놓이는 순간 이상하게 그 새벽이 떠올랐다.

처음 그분 집에서 바둑을 뒀던 밤.

거실 형광등 불빛 아래,

흑백 돌만 유난히 또렷하던 그 새벽.


그때는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더 컸다.

판을 읽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쪽에 가까웠다.

근데 오늘은 달랐다.

말씀드렸다.


"오늘은 정수로 두겠습니다.

묘수, 속임수, 함정수 없이."


그분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호오, 선전포고네."




흑을 집었다.

초반은 조용했다.

돌이 놓일 때마다 또각, 또각.

그 소리만 사장실을 채웠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소리였다.

그때의 침묵과 지금의 침묵은 온도가 달랐다.

그때는 긴장이 채운 침묵이었다면

지금은 집중이 채운 침묵이었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판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건축주는 수를 둘 때마다 잠깐씩 멈췄다.

생각이 깊어지는 사람 특유의 정지.

그 멈춤이 보일 때마다

판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끝내기로 넘어가면서 집의 차이가 드러났다.


근소했다. 하마터면 질 뻔했다.

대국이 끝나고 건축주가

돌을 하나씩 걷으면서 판을 다시 짚기 시작했다.


"만약 이 수에서 내가 이렇게 붙이면 어떻게 됐냐."


손가락으로 빈자리를 짚었다.


"이렇게 붙이면 젖히면 됩니다."


"그럼 내가 아까 이렇게 젖히면?"


"그렇게 젖히면 제가 이쪽으로 뻗으면 됩니다."


그분이 잠깐 판을 내려다봤다.

흐름을 따라가는 눈이었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셨다.

"캬… 너 나를 아주 가지고 놀았구나?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바둑은 제가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인마."


그분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럼 체스는 어떠냐."


바둑판을 치우고 체스판이 올라왔다.

속기로 두자고 하셨다.

바둑이 호흡이 긴 싸움이라면

체스는 순간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속기라는 말이 나온 순간 이건

실력보다 감각 싸움이라는 걸 알았다.


첫 판은 이겼다.

두 번째 판은 졌다.

세 번째 판은 팽팽했다.


중반쯤 상대 퀸이 움직이는 방향이 보였다.

두 수 앞을 읽고 나이트를 한 칸 옮겼다.

그분이 잠깐 멈췄다.

그 멈춤이 바둑에서 봤던 멈춤이랑 똑같았다.

결국 2대 1로 이겼다.

"너 체스도 좀 두는구나."


"사실 이건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넌 체스랑 바둑 중에 뭐가 더 좋냐?"


"바둑이 더 좋습니다."


"왜?"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체스는 킹을 잡으면 끝인데,

바둑은 끝까지 살고 죽는 걸 봐야 하잖습니까.

어디를 살리고 어디를 버릴지, 판 전체를

처음부터 읽는 게 저한테는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무릎을 탁 쳤다.


"캬, 그거지."


굉장히 흡족한 표정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분이 체스판을 천천히 치우면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바둑은 끝까지 살고 죽는 걸 봐야 한다."


그 말을 다시 되뇌는 것처럼.


그리고 잠시 뒤 처음 들어보는 말투로 말씀하셨다.


"선생에게 많이 배웁니다."


순간 멈칫했다.

처음으로 나에게 쓰는 공손한 말투였다.

100명이 넘는 회사를 이끌어온 사람이,

서울대 철학과 출신이,

나보다 서른 해는 더 산 사람이

현장 소장 출신 젊은 놈한테

선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이 사람이 그래서 그 자리에 계신 것 같았다.


충분한 자리에 올라와 있음에도

배움이 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자세를 낮출 줄 아는 사람.

여든 먹은 노인도 세 살 먹은 아이한테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그냥 말이 아니었다.

그 말 한마디가 어떤 칭찬보다 오래 남았다.




둘만 있는 사장실에서 건축주에게 큰절을 드렸다.

절을 드릴 생각을 하고 들어온 건 아니었다.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선생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이상하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게 있다.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을 해도

그 말이 담을 수 없는 무게가 있을 때

사람은 결국 몸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손을 짚었다.

머리를 숙이면서 이상하게

여러 장면이 한꺼번에 지나갔다.


태풍 맞던 새벽, 빗속에서 현장을 다시 올라가던 밤,

그분 집 거실에서 처음으로 속얘기를 꺼내던 그 자리,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던 그 손,

그 조용한 거실에서 돌 놓는 소리만 들리던 새벽.

그 모든 게 여기까지 이어져 있었다.


절을 드리고 고개를 드니

그분이 살짝 눈을 피하고 계셨다.

머쓱해하는 얼굴이었다.

이 사람한테도 머쓱한 게 있구나.

그게 이상하게 좋았다.

그분이 손을 저으며 말씀하셨다.


"됐어 인마. 밥이나 잘 챙겨 먹고 다녀.

나도 너한테 빌려준 걸 잘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네가 했던 말 듣고 느낀 게 많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고맙다는 말을 또 하기엔 이미 절을 드렸고,

그것도 부족한 것 같았고.

그냥 웃었다.

그분도 웃으셨다.

그게 전부였는데 그게 충분했다.




사활.

돌의 삶과 죽음.

처음 이 단어를 배웠을 때는

바둑판 위의 얘기인 줄만 알았다.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

나무 냄새가 배어 있던 바둑판,

선생님이 내주시던 사활 문제.

이 돌이 살 수 있는지, 결국 죽는지.

한 수만 달라져도 살던 돌이 죽고,

죽은 줄 알았던 돌이 살아났다.

그때는 그게 그냥 바둑 얘기인 줄 알았다.

근데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내내 사활 문제였다.

이 수가 살리는 수인지, 죽이는 수인지.

결과를 모르는 채로 그냥 놓아야 했던 시간.


어릴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활을 오래 본 사람은 어디가 막다른 길인지,

어디가 살아나는 길인지 감각으로 안다고.

그때는 그게 바둑 얘기인 줄만 알았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린다.

그리고 그 빚.

그 무게가 끝까지 움직이게 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 갚고 나서 돌아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다.

압박이 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초심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숨 쉬면서 살겠다고 했을 때도,

낭만대로 움직이겠다고 했을 때도,

그 밑에는 항상 끝을 내야 한다는 감각이 있었다.

해방감보다 먼저였다. 즐기면서도 잊지 않는 것.

처음 그분 앞에서 속얘기를 꺼내던

그 새벽의 마음.

어떻게든 내 손으로 끝내겠다던 그 마음.

그게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내내 거기 있었던 거다.

그러니 어쩌면 끝까지 가게 한 건 압박이 아니라

그 초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파주에서 내려오는 길.

창밖을 보다가 핸들 위에 올려진 손을 봤다.

손등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거칠었다.

손톱 밑에는 아직 현장 먼지가 남아 있었다.

이 손으로 도면을 짚었고,

망치를 잡았고,

이자를 계산했고,

트럭 핸들을 잡고 새벽을 달렸다.

그리고 지금 이 손이 여기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오랜만에 앞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엔 살아남는 수를 찾는 게 전부였다.

죽지 않으면 됐고,

버티면 됐고,

다음 수만 놓으면 됐다.


근데 이제는 어떻게 둘지 고를 수 있다.

그게 다르다.

아직 다 모르겠다. 어디로 갈지, 뭘 하게 될지.

근데 그게 이번엔 불안하지 않았다.

그냥 궁금했다.



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