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활 (5)

복기

by 서대희

누군가 내 3년을 정리해줬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근데 이상하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




아마 이건 타고난 기질인 것 같다.

누가 봐도 맞는 말인데 어딘가 내 것이 아닌

느낌이 들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더 현실적인 길이 뻔히 보여도 그 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 발이 잘 안 들어가는 것.


좋게 말하면 신념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고집이고,

나쁘게 말하면 반골기질.


살면서 이게 나를 불편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손해를 덜 보는 선택이 눈앞에 있는데도 끝내 붙들고

싶은 것과 어긋나면 몸이 잘 안 갔다.

근데 돌아보면 여기까지 끌고 온 것도

결국 그 고집이었다.

그 3년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열심히 했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버텼다는 말로는 좀 싱겁고.

굳이 말하자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움직인 시간.


일을 끝내고 차에 앉으면

허기보다 숫자가 먼저 왔다.

얼마를 더 벌어야 하는지.

어디서 돈이 나가는지.

다음 달 이자가 며칠 남았는지.

밥을 먹다가도 손이 멈췄다.

누워도 머리는 계속 깨어 있었다.

눈을 떠도 개운한 날이 별로 없었다.

하루를 산다기보다 통과하는 쪽에 가까웠다.

어제와 오늘이 구분되지 않은 채

그냥 계속 이어지는 날들.

그 감각은 말로 설명이 잘 안 된다.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근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아무리 말해도 온도가 전달이 안 된다.

그냥 힘들었겠다,

그냥 고생했다.

그 말들은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 내 3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때마다

이상하게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분 말도 그랬다.

틀리지 않았다.

근데 그 안에 내가 느낀 것들이

전부 들어있지는 않았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게 있다.

대국이 끝나고 나서 처음 수부터

다시 놓아보는 것.


어디서 이겼는지,

어디서 틀렸는지.


근데 복기는 끝난 판을 보는 사람의 시선이다.

결과를 알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판 위에서 돌을 쥐고 있는 사람은 결과를 모른다.


이 수가 살리는 수인지,

죽이는 수인지.

그걸 모르는 채로 그냥 놓아야 한다.

그 3년이 그랬다.

누군가 내 판을 복기해줄 수 있다.


어디가 좋은 수였는지,

어디가 틀린 수였는지.

그건 맞는 말일 수 있다.

근데 그 판을 직접 뒀던 감각,

이 돌을 놓을 때의 손끝,


틀릴 수도 있는데 그냥 놓아야 했던

그 순간들은 복기하는 사람 것이 아니다.


사람이 궁할 때 받는 도움은 고마운 동시에

묘하게 사람을 작게 만들기도 한다.


살아야 하니까 잡아야 하는데,

잡는 순간 어딘가에서 지는 것 같아서

끝까지 손이 망설여진다.

그날도 그랬다.

자존심은 분명 무너지고 있었다.

근데 그 무너지는 자존심보다

더 큰 걸 지키고 싶었다.

끝내 놓고 싶지 않았던 것들.

내 쪽에서 먼저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삶.

그래서 결국 그분의 손을 받아들였다.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 장면의 진짜 핵심은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손을 내민 건 그분이지만,

그 손이 어떤 손인지 알아본 건 나였다.


기회는 누군가가 열어줄 수 있다.

근데 그 문을 문으로 알아보는 눈은

아무한테나 있는 게 아니다.

정수였는지 악수였는지 그때는 몰랐다.

두고 봐야 아는 수였다.




숨을 한 번 길게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대표님 말씀, 맞습니다."


그분은 말없이 바라봤다.

뭔가를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왜 5억이었는지,

왜 남겨진 2억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이제는 저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거기서 멈췄다. 다음 문장은

조금 더 천천히 꺼냈다.


"근데 저는 대표님이 내주신 숙제

푼다고 그 3년을 산 건 아닙니다."


그분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고마웠던 건 맞습니다. 정말 큰 도움이었고요."


잠깐 멈췄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보다 서른 해는 더 산 사람 앞에서,

5억을 빌려준 사람 앞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고개를 숙이고

고마움을 말하는 자리였다.


근데 그날만큼은 그냥 고마운 사람으로만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내 얘기를 해야 했다.

내 3년을 내 언어로 말해야 했다.

그게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솔직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 3년 동안 제가 느낀 건 대표님도 모르십니다."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분이 가만히 나를 봤다.


"제가 매일 현장 끝내고

차에 앉아서 뭘 먼저 생각했는지,

새벽에 잠이 깨면 뭐가 먼저 떠올랐는지,

어떤 날은 그냥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을 때 그걸 어떻게 눌렀는지."


말을 이으면서 목 어딘가가 조금 뻑뻑해졌다.


"그건 그 시간을 직접 산 사람만 아는 겁니다.

아무리 옆에서 봤어도,

아무리 정확하게 읽었어도.

그 온도까지는 모르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꺼내고 나서야 비로소 편해졌다.

오래 품고 있던 문장을 이제야

제자리에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대표님이 앞이 안 보이던

제 앞에 나타난 건 분명 운이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고,

정말 마지막 같은 손이었습니다."


숨을 골랐다.


"근데 그 손을 잡은 건 결국 접니다."


그 말이 떨어지고 공기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대표님 말씀은 맞는데,

그게 제 3년의 전부는 아닙니다."


한 박자 쉬고 더 또렷하게 말했다.


"저는 그냥 제 삶을 산 겁니다.

안 무너지려고 살았고,

제 손으로 끝을 보고 싶어서 살았고,

적어도 제 안에서는

저를 부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버텼습니다."


그 말까지 하고 나자 가슴이 조금 후련해졌다.


고마움과 자존심이 그제야

같은 자리에 앉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창밖을 잠깐 봤다가

다시 이쪽으로 시선이 돌아왔다.

뭔가를 천천히 소화하는 사람의 침묵.

그 침묵을 같이 견딜 수 있었다.

잠시 뒤, 그분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래."


짧은 한마디. 근데 그 안에

생각보다 많은 뜻이 들어 있었다.


"그래야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컵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피식 웃었다.

"넌 원래 내가 숙제 하나 던져줬다고

그것만 얌전히 풀 놈은 아니었어."

모르게 웃음이 조금 났다.


기분이 좋아서라기보다,

이 사람이 결국 여기까지 보고 있었구나

싶은 묘한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분이 잠깐 뜸을 들이다 말을 꺼냈다.


"소크라테스 알지?"

"예."

"소크라테스는 책을 한 줄도 안 썼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아는 건

플라톤이 받아 적었기 때문이야.

근데 플라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

스승한테 배웠지만 결국 자기 철학을 만들었거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심해.

플라톤 밑에서 20년을 공부하고 결국

스승의 이데아론을 정면으로 뒤집었으니까.

눈에 안 보이는 관념이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진짜라고.

스승한테 배운 언어로 스승을 넘어선 거야."


잠깐 멈췄다가 나를 봤다.


"배신이 아니야.

그게 철학이 앞으로 나아간 방식이었어."


서울대 철학과 출신.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괜히 벽 하나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었다.


말의 층위가 다를 것 같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것 같고.

근데 그분이 철학을 꺼내는 방식은

그런 느낌과 전혀 달랐다.


강의를 하지 않았다.

개념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삶 얘기를 하듯이

소크라테스를 끌어왔다.

어쩌면 그분은 오래전부터

사람을 읽을 때마다 그 렌즈를 써왔던 것 같다.


이 사람은 받아 적는 사람인가,

아니면 결국 자기 문장을 쓰는 사람인가.


"배울 건 배우되 결국 자기 언어로 가는 거다."

"너도 그쪽이었어."


칭찬 같으면서도 평가 같았다.

이제는 너를 좀 알겠다는 사람의 말.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서

아까 내가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꺼내야 했던 그 문장들.


어쩌면 그분은 그 반골기질

자체를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얌전히 고개 숙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인지.


"내가 숙제를 내줬다고

그 숙제만 풀어야 할 놈 같진 않았어.

그랬으면 애초에 안 빌려줬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인 동시에

내 삶을 내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 앞에 앉아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테이블 위를 누르던 공기가

그제야 아주 조금 풀어졌다.




그러고 나서 그분 표정이 바뀌었다.

철학 얘기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설계 도면을 펼치듯.


"자,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고."


"내가 이제 회사 본사를 신축해야 하는데.

프로젝트 매니저, 너가 해볼 생각 없겠냐?"


분명 좋게 본다는 뜻이었다.

말로만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다음 판을 건네는 방식의 인정.

근데 이상하게 거기서도 곧장

"해보겠습니다"가 나오지 않았다.

그 고집이 또 올라왔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그 친구는 그 무렵 좀

이상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못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잘하고 있었다.

현장도 돌아가고 있었고, 일도 쌓이고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게 다인 것 같은 느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고,

계속 가면 되는 건지조차

확신이 안 서는 시기.

그 친구한테도 그런 시간이 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말로 꺼낸 적은 없었지만

같이 일하면서 느끼는 게 있었다.

예전엔 도면 앞에서 눈빛이 달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사람이 정체될 때는 잘하고 있어도 표가 난다.

그래서 망설였다.


이걸 내가 꺼내는 게 맞는 건지.

내가 못 하는 걸 걔한테 넘기는 건지,

아니면 진짜 걔한테 맞는 판을 열어주는 건지.

그 경계가 생각보다 얇았다.

.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그거라면 돕고 싶습니다만…"


말을 골랐다.


"아시다시피 300억 이상 프로젝트를

맡을 정도는 아직 아닙니다."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건 저보다

제 친구가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마음이 두 갈래로 갈렸다.

미안했다.

이게 걔한테 기회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기회가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파주라는 현장이 어떤 곳인지,

그 건축주가 어떤 사람인지.

옆에서 누구보다 잘 보고 있었으니까.

근데 동시에 확신이 있었다.


걔는 나보다 훨씬 꼼꼼했다.

한 현장에 끝까지 붙어서 끝을 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빠른 판단으로 밀어붙이는 쪽이라면 ,

그 친구는 놓치지 않는 쪽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그 친구한테는 이 판이 필요했다.

정체돼 있는 사람한테 더 큰 무게를 얹어주는 게

가끔은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너무 무거우면 쓰러지지만,

딱 맞게 무거우면 오히려 사람이 펴진다.

그게 이 판이 걔한테 맞는 이유였다.


"걔는 저보다 훨씬 꼼꼼하고,

이런 프로젝트는 분명히 잘해낼 겁니다."

웃으며 덧붙였다.


"저는 사실 한 현장에

오래 붙잡혀 있는 성격이 못 됩니다."


"아무래도 걔가 너보단 훨씬 집요하긴 하지."

그 말을 하시면서 그분이 피식 웃으셨다.


아까 철학 얘기 하던 표정도 아니고,

뭔가를 꿰뚫어보던 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흐뭇한 표정이었다.

벙커힐에서 도면 앞에 앉아 서로가

진짜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둘이

이제는 서로를 먼저 밀어주는 사이가 됐다는 것.

그게 그분 눈엔 그냥 좋아 보이셨던 것 같다.


보통 사람은 자기 기회를

자기 쪽으로 당기려 드는데,

거기서 내 친구 이름을 먼저 꺼내고 있었다.

계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더 맞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을 뿐이다.

기회를 욕심내는 것도 용기지만,

기회를 알맞은 사람에게

넘기는 것도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친구를 아는 일이기도 했다.


"그럼 너는 남은 2억을 어떻게 갚을 생각이냐?"


이번엔 바로 대답했다.


"이때까지 한 5년은 너무

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산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번 돈은 늘 어딘가로 먼저 나갔다.

빚으로, 이자로, 다음 공정으로.

쓰고 싶은 것보다 갚아야 할 것이 늘 먼저였고,

가고 싶은 곳보다 가야 할 현장이 늘 먼저였다.


"그래서 조금은 제가 생각하는

낭만대로 움직이면서 벌어보겠습니다."


낭만.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스스로도 조금 어색했다.

그분도 잠깐 멈칫하셨다.

예상 밖의 단어를 들은 사람처럼.

그러더니 별 망설임도 없이 물었다.


"2억 빌려줘?"


단칼에 대답했다.


"아니요."


그분도 더는 묻지 않으셨다.


5억을 받던 날의 나는 살기 위해 받아야 했다.

근데 이미 다른 국면으로 넘어와 있었다.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남은 2억만큼은 내 방식으로

건너가고 싶다는 뜻에 가까웠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언어로

시작해서 결국 자기 발로 걸어간 것처럼.


그분은 그걸 알아들으신 것 같았다.

곧바로 대표님께 전화를 거셨다.


참고로 그 친구는 우리 대표님 아들이다.

예전에 브런치에 쓴

<<여러분은 책을 왜 읽으시나요? >> 에 나온

나랑 파주 건축주의 집을 같이 지은 친구





전화는 평범하게 시작됐다.

근데 어른들 대화는 짧을수록

더 무서울 때가 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끼리 하는 대화가 있다.

오래 살면서 사람을 많이 봐온 사람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감이 와 있는 사람들.

그 두 분이 딱 그랬다.

건축주는 100명이 넘는

회사를 이끌어온 사람이고,

대표님은 수십 년째 이 바닥에서

현장을 굴려온 사람이었다.

둘 다 젊은 놈들이 어떻게 크는지,

어디서 꺾이는지,

어떤 판을 줘야 다음 단계로 가는지를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 대화는 사실

우리 둘한테 묻는 게 아니었다.

이미 결론은 나 있었다.

그냥 우리한테 알려주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아드님을 우리 회사 PM으로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 조건으로 이 프로젝트 일부 공사도

대표님 회사에 맡기겠습니다."


스피커폰이었다.

방금까지 소크라테스 얘기를 하던 사람이 ,

전화 한 통으로 두 사람의

다음 몇 년을 설계하고 있었다.

그 속도와 무게가 묘하게 같이 느껴졌다.


잠깐 정적 뒤 대표님이 말했다.


"그럼 아들이 해야 할 프로젝트들을

대희가 다 떠맡아야 할 텐데요."


말은 걱정하는 투였지만

그 안에 이미 수락이 들어 있었다.

오래 같이 일한 사람끼리

굳이 말 안 해도 아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대희가 버티겠나 싶네요."

그 말도 사실 버티겠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버텨야 한다는 말이었다.

건축주가 바로 말했다.

"옆에 있는데 물어볼까요?"


어른 둘이 판을 다 깔아놓고 마지막에

젊은 놈한테 마이크를 넘기는 장면이었다.

뭔가 엄숙하게 대답하면 오히려

더 우스울 것 같은 순간이었다.

스피커폰을 향해 말했다.


"대표님, 그냥 원래 하던 대로 까라면 까라고 하십쇼."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이쪽에서도.

그 웃음은 단순히 말이 웃겨서 나온 게 아니었다.


어른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젊은 놈들은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 올라타는 척 했고,

그게 전부 다 자연스러웠다는 걸

모두가 같이 확인한 웃음이었다.

조금 전까지의 무거운 공기가 그 한마디에 다 풀렸다.


철학과 출신 건축주,

현장 소장 출신 젊은 놈 둘,

순댓국집 냄새가 아직 옷에 배어 있던 오후.

참 이상한 조합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어른들이 판을 깔고, 젊은 놈들이 올라탔다.

근데 그 판 위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는 결국 우리 몫이었다.




그렇게 내 친구는 볼모로 잡혀간

왕세자처럼 파주로 끌려갔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표현이 좀 웃기긴 한데,

근데 진짜 딱 그 느낌이었다.

억지로도 아니고,

가볍지도 않게.

운명처럼 떠밀려가는 얼굴.

왕세자라는 표현이 찰떡인 게,

억울하지는 않은데 본인이 선택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근데 어쩐지 그 자리가 맞는 것 같기도 한,

그 묘한 상황이 딱 그거였다.


"서로 둘 다 힘들겠지만 좀만 참자."

친구는 담담하게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자기한텐 이게 퀀텀점프 할 기회 같다고.


꼭 입대하는 친구 같았다.

말은 담담한데,

표정엔 이미 마음을 정리한 사람

특유의 묵직함이 있었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묘하게 대견하기도 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그냥 서로 알고 있었으니까.

기회는 주어진 게 맞다.

근데 그 기회를 기회로 본 건 결국 각자였다.

친구는 올라갔다. 파주로, 더 큰 판으로.


대전현장 미팅후 대전역에 세워놓고 전역사진이라고 찍어줬다. ㅋㅋ 잘가~




원래 하던 삶으로 내려왔다.

현장은 계속 굴러갔고,

일은 여전히 빽빽했고,

숫자들은 여전히 쫓아왔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계절이 바뀌고, 현장이 바뀌고,

사람들이 흩어지고,

다시 내 몫의 시간을 통과했다.


그리고 2025년 4월. 다시 한번 파주로 갔다.

그분을 만나러.



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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