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정답
나는 그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처음 5억 빌려주셨을 때는…”
잠깐 웃었지만, 사실 웃을 얘기는 아니었다.
“솔직히 기분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그분은 말없이 나를 봤다.
그래서 나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처음엔 적개심부터 들었다.
빌려줄 거면 왜 다 안 빌려주지.
왜 7억 중에 5억만 주고,
사람을 시험하듯 대하지.
이게 정말 사람을 도와주는 건지,
아니면 끝까지 한번,
더 떠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걸 호의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차라리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힘든 사람을 돕는 척하면서도,
끝내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사람.
그렇게 여겼다.
근데 시간이라는 건 이상해서,
당장 이해되지 않던 마음도
나중엔 전혀 다른 얼굴로 돌아오곤 한다.
가만히 돌아보면 만약 그때,
7억 전부를 한 번에 빌려줬다면,
분명 나는 정말 고마워했을 것이다.
숨도 돌렸을 거고,
그날 밤은 오랜만에 편하게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딱 거기까지였을 것 같다.
불 꺼진 방에서 “이제 됐다” 하고,
처음으로 어깨를 놓는 사람처럼,
찰나의 안도감에,
몸을 기대고 한동안은 살았을 것이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돈이 해결되는 순간,
삶까지 해결된 줄 착각했을 것 같다.
조금 덜 불안한 사람은 되었겠지만,
지금처럼 사람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데 내겐 2억이 남아 있었다.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음처럼 캄캄한 것도 아닌 돈.
애매해서 더 무서운 돈.
조금만 숨을 돌리면,
다시 뒤에서 목을 조를 것 같은 돈.
그 2억 때문에라도,
더 벌어야 했다.
더 버텨야 했고,
더 움직여야 했다.
돌아보면 그게 나를 묶어둔,
족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앞으로,
밀어낸 손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동안,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의도였든,
어쨌든 그분이 내게 돈을 빌려준 건,
결국 나를 향한 호의였겠구나.
그걸 뒤늦게 알게 됐다.
사람은 꼭 도움을 받는 순간보다
그 도움의 뜻을 나중에,
알아차릴 때 더 크게 흔들린다.
한때는 세상에 내 적만 많은 줄 알았다.
내 사정은 무겁고,
누구도 내 편은 아닌 것 같고,
결국 버티는 건 혼자라고 생각하던 시절.
근데 지나고 보니 아니었다.
돌아보면 내 주변에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말없이 봐주던 사람도 있었고,
기회를 던져준 사람도 있었고,
직접 손을 내밀어 준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누군가의 호의를 제대로 느끼는,
순간사람은 조금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이상하게,
사람을 더 나은 쪽으로 데려간다.
그때 처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거창한 다짐은 아니었다.
적어도 누가 내게 건넨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
나를 믿고 맡긴 일을 대충,
해치우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
받은 것 위에 기대어 눕는 사람이 아니라,
내 쪽도 조금씩 자라야 한다는 마음.
열네 살에 품었던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그 어린 마음이 그제야 조금 자라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킨다는 걸,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돈 많이 벌면 지킬 수 있는 줄 알았다.
돈으로 부족한 걸 막아내면,
상처도 같이 막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돈을 갖다 놓는 일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에 더 가까웠다.
어떤 기준으로 일하고,
어떤 태도로 버티고,
어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느냐.
그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벌다 보니,
남의 돈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건축주들이 대체로,
돈 있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속으로 계산적인 생각도 했다.
이 정도 견적이면 괜찮겠지.
이 정도는 더 받아도 되지 않나.
내가 잘 지어주는 대가인데,
이 정도쯤은 받아야 하지 않나.
그때의 나는 빨리 벌고 싶었다.
돈이 늘 급했고, 마음도 늘 급했다.
그러니 사람보다,
숫자가 먼저 보일 때가 있었다.
근데 현장은 늘 그런 계산을,
부끄럽게 만드는 곳이었다.
해가 지고도 한참 뒤까지,
현장에 남아 있는 날들이 있다.
망치 소리는 끊겼는데,
낮의 열기만 공기 어딘가에 남아 있는 저녁.
먼지 냄새와 나무 냄새가 뒤엉킨 채,
하루가 겨우 가라앉는 시간.
그 시간에 혼자 정리하고,
빠진 것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내일 공정을 머릿속으로 다시 짜고 있으면,
건축주분들이 조용히,
다가오는 날들이 있었다.
“소장님,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녁은 드셨어요?”
“너무 야위신 것 같은데 꼭 맛있는 거 드세요.”
말은 짧았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러면서 저녁을 사주시기도 했고,
손에 돈을 쥐여주시기도 했다.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20만 원, 30만 원.
큰돈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먼저 보이는 돈이었다.
고생했다는 말이 지폐 모양으로,
접혀 손바닥에 올라오는 느낌.
그럴 때마다 조금 전까지,
내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괜히 민망해졌다.
나는 어떤 날엔 그 사람들을 그저,
내가 돈 버는 데,
필요한 대상으로 본 적도 있었다.
근데 정작 그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현장에 있는,
한 명의 인력으로만 본 게 아니라,
고생하는 사람으로 봤고,
애쓰는 사람으로 봤고,
사람으로 대해줬다.
그 차이가 컸다.
그래서 돈 버는 방식을 바꾸며 살았다.
어떻게든 더 많이 받아내는 쪽이 아니라,
내 가치를 진짜로 증명해서,
정당하게 버는 쪽으로.
그렇게 방향을 바꾸고 나니까,
돈에 끌려다니는 느낌이 조금 줄었다.
이상하게 마음도 더 가벼워졌다.
일에 쫓기는 게 아니라 내가 일의 기준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일에 대한 에고도 그때부터 조금씩 생겼다.
내가 하는 일이 그냥 돈벌이가 아니라,
내 이름과 태도를
증명하는 일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건축주분들이 쥐여주시던,
그 쌈짓돈 같은 마음들을,
나는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그 안에는 만 원, 오만 원, 십만 원보다 먼저,
사람이 사람을 좋게 본,
흔적이 들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돈은 빚 갚는 데 쓰지 않았다.
생활비로도 녹이지 않았다.
그냥 모아뒀다.
한 번, 한 번.
한 장, 한 장.
그러다 보니 어느새 꽤 큰돈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분께 내 계좌를 보여드렸다.
1000만 원.
건축주들이 조금씩 쥐여준 돈을,
단 한 번도 안 쓰고 모아둔 돈이었다.
그 숫자를 보시더니 그분이 말했다.
말투는 툭 던지듯 가벼웠지만
그 안에는 웃음과 인정이
묘하게 같이 섞여 있었다.
그러더니 이어서 말했다.
“근데 네 의도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잠깐 멈췄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시선을 들었다.
“네가 말한 것처럼
남의 돈이 귀한 줄 아는 거, 그건 맞다.”
“그거 모르면 절대 오래 못 간다.”
그 말은 단정적이었다.
돈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은
결국 일의 무게도 모른다는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근데 그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근데…”
시선이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너 지금 고마워서
잘하려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 툭 두드렸다.
“그건 오래 못 간다, 임마.”
“사람이 고마움으로만
움직이면 언젠가는 지친다.”
“왜냐하면 그건
네 기준이 아니라 남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생각보다 더 깊이 박혔다.
고마움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근데 평생을 끌고 가주지는 못한다.
감정은 높았다가도 꺼지고,
사람 마음은 뜻밖의 순간에 흔들리니까.
그분이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너는 지금 돈을 준 사람한테 잘하려고 하지.”
“근데 진짜로 가야 되는 방향은 그게 아니다.”
나는 그다음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돈 준 사람 말고,
돈 낸 값이 나오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 말이 그날 대화 전체를 붙드는 못처럼 박혔다.
일의 기준,
돈의 윤리,
사람의 태도 같은 게
짧은 한마디 안에 같이 들어 있었다.
“고마워서 잘하는 놈은
기분 좋으면 잘하고 기분 상하면 흔들린다.”
“근데 기준 있는 놈은 상대가 누구든 똑같이 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감정에 기대어 살아왔는지가 보였다.
누가 좋게 보면 더 잘하고,
누가 무시하면 더 이를 갈고,
누가 믿어주면 더 몸을 쓰고.
그렇게 버텨온 시간.
근데 그분이 말한 건 그런
들쭉날쭉한 성실함이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든, 기분이 어떻든,
판이 좋든 나쁘든 기준대로 가는 사람.
그게 오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분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7억 다 안 준 거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너를 살리려고 준 거지
편하게 해 주려고 준 게 아니다.”
“7억 다 줬으면 넌 지금처럼 안 바뀌었다.”
“돈 갚는 놈이 아니라 돈 쓰는 놈 됐을 거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말투부터
먼저 걸렸을 텐데 그날은 아니었다.
이미 내 안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답 같았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어서 붙들고 있던
문장을 그분이 대신 꺼내준 느낌이었다.
그분은 마지막으로 정리하듯 말했다.
“너 지금 잘 가고 있다.”
“근데 고마워서 잘하는 단계는 지났고,”
“이제는 네 기준으로 잘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간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그러면 거기서 5억이든
7억이든 돈을 빌려주신 이유는 뭔가요?”
그분이 웃었다.
“야, 내가 그냥 빌려줬을 것 같냐?”
“네가 불쌍해서?”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 한마디는 선을 긋는 말이면서도
이상하게 사람을 세워주는 말이었다.
동정이 아니라는 것.
불쌍해서 건넨 돈이 아니라는 것.
그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마운 동시에
묘하게 허리를 펴게 만드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분은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건축주와 첫 대면을 하기 3일 전 이야기였다.
2019년 7월
그때도 나는 여전히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
파주 헤이리 쪽에 벙커힐이라는 카페가 있다.
파주의 본채는 건축물 평수만
거의 100평쯤 되는 큰 집이었다.
주택치고는 상당히 크고 난이도도 높았다.
그 정도 규모면 한 현장에 소장 한 명이
거의 전담으로 붙어도 버거운 편이었다.
근데 그때의 나는 1~2년 차 된
20대의 새파란 현장소장이었다.
말이 현장소장이지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현장소장에 가까웠다.
일반적인 현장도 겨우겨우 쳐내던 수준.
그런 내가 그 파주 현장 계약을 성사시키기엔
솔직히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실력으로 압도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태도로는 보여주자고 마음먹었다.
도면을 끝까지 읽고,
이 집이 가진 리스크를 최대한 다 숙지하고,
누가 물어도 얼버무리지
않을 정도까지는 준비하자.
그리고 조건을 걸었다.
파주 현장은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일하던 내 친구와 둘이서 들어가겠다고.
미팅 3일 전부터
다른 현장을 사실상 배제한 채
벙커힐 옆 모텔에서 숙박을 했다.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카페로 들어갔다.
오픈 시간에 맞춰 자리를 잡고 도면을 펼쳤다.
벙커힐은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라
식사도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10시에 들어가
저녁 9시까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정말 거기서 살았다.
도면을 펴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다시 선을 보고,
구조를 보고,
공정을 짜고,
리스크를 따지고,
시공 순서를 다시 뒤집고.
하루가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잠깐 눈을 붙였고,
다음 날 눈을 뜨면 다시 카페로 갔다.
시험 앞둔 사람처럼.
문제집 대신 도면을 붙든 채.
우리 둘 다 마음은 같았다.
이 계약, 우리 둘이 한번 따보자.
호기로웠고,
절박했고,
또 어렸다.
문제는 내 친구와 내가
각자 현장을 관리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는 점이었다.
도면을 해석하는 감각도 달랐고,
공정 순서를 세우는 방식도 달랐다.
예전에 우리 사장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 친구의 성격과
내 추진력이 반반 섞였으면 좋겠다고.
정확한 말이었다.
그 친구는 지나치게 신중했고,
나는 빠른 판단과 추진력으로
현장을 밀어붙이는 쪽이었다.
그러니 답답한 건 늘 나였다.
친구한테 너 그렇게 현장 굼뜨다가는
회사 문 닫겠다고 몇 번이나 싸운 적도 있었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어린 나이엔 서로의
장점보다 약점이 더 크게 보였다.
벙커힐에서도 그랬다.
첫날부터 전혀 맞지 않았다.
내가 원래 목소리가 작은 편도 아니라
카페 안에서 자꾸 소리가 커졌다.
“아 진짜 답답하네.”
“이건 이렇게 풀면 될 걸 왜
자꾸 빙빙 둘러서 해석하냐.”
그러면 친구는 바로 받아치지도 않고
한참 도면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잠깐만 있어봐.”
“이거 그렇게 쉽게 넘어가면 안 돼.”
둘이 진짜 하나도 안 맞았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티를
굳이 안 내도 될 공간에서까지 내듯
큰 카페 안에 사투리가 울려 퍼졌다.
도면 위에 손가락을 올린 채
서로 열불이 나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다시 선을 짚고,
또 우기고. 그때는 몰랐다.
정확히 4년쯤 지나서야 알았다.
그날 벙커힐에 건축주가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땐 몰랐다.
건축주 회사가 그 카페 근처였다는 걸...
그분이 말했다.
“너네들 그날 카페에서
너무 시끄러워서 내가 눈이 가더라.”
“근데 내가 3일 카페를 갔는데
3일 내내 거기 죽치고 앉아 있더라.”
그분은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옆에 다 먹은 음식 팽개쳐놓고 둘이 열불 나서
서로가 정말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도면 얘기하는데 가관이더라.”
듣고 있으니 그 장면이 내 눈앞에도
다시 떠올랐다.
커피잔 바닥에 녹아 있던 얼음,
밀려 있는 접시,
도면 위를 어지럽게 가로지르던 손가락,
점점 높아지던 내 목소리.
그분은 웃으면서 덧붙였다.
“누가 봐도 나 경상도에서 왔다고
자랑하듯이 사투리 쓰고,
큰 카페 사람들 다 들으라고 떠들고.”
민망해서 웃음이 났다.
근데 그분은 그때
너희가 우리 집 지으러 오는 줄은 미팅 날에야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물었다.
“근데 왜 내가 너희 회사를 선택했는지 아냐?”
그전에도 이미 다른 시공사들과
몇 번 미팅을 했다고 했다.
경험도 더 많고, 시공 능력도
더 좋아 보이는 회사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정말 몰라서 물었다.
“왜요?”
그리고 괜히 농담처럼 덧붙였다.
“저희가 그날 미팅을 너무 잘해서요?”
그분이 바로 웃었다.
“웃기는 소리 하네.”
“너네들 그날 미팅 무슨 대학생
과제 발표하듯이 하던데 뭘.”
그 말을 듣고 나도 그 자리에서 깔깔 웃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웃겼다.
우리는 잘해 보이려고는 했지만
노련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러고 나서 그분이 말했다.
“너네들은 그날 카페에서
무슨 얘기했는지 기억 안 나지?”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너네들은 회사 이득 보려는
얘기를 전혀 안 했어.”
“그냥 너네들끼리 지 말이 맞다고,
각자가 해석한 게 맞다고 서로 우기고 있었거든.”
잠깐 웃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나는 조금 의외였다.
보통은 그런 모습을 준비 안 된
사람들로 볼 수도 있으니까.
근데 그분은 달랐다.
“너네들은 한참 부족할 수는 있어도
공부를 계속하면서 집을 지을 것 같았거든.”
“둘이서 잘난 척하고 자만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계속 경계하고 있더라.”
“우리 집 가지고 장난칠 놈들로는 안 보였어.”
그 말이 생각보다 깊이 박혔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잘난 척할 실력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부족하니까 더 봤고,
부족하니까 더 싸웠고,
부족하니까 더 붙잡고 늘어졌다.
그분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근데 맞더라.”
“매일 밤 지나갈 때마다 맨날 불 켜진 컨테이너에서 둘이 싸우는 소리 들릴 때마다 내심 흐뭇하더라.”
그 장면이 떠올랐다.
밤이 깊었는데도 컨테이너 안
형광등은 꺼지지 않고,
도면은 여전히 펼쳐져 있고,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로
친구와 또 부딪히고,
그래도 결국 끝까지 보고
다음 날 다시 현장으로 나가던 시간.
그분은 물 흐르듯 정리했다.
“그래서 나는 너한테
고마움의 표시로 건넨 거야.”
“너는 네가 잘할 수 있는 걸로
우리 집이 잘 지어지게 도와준 거고,
나는 내가 가진 걸로 너를 도운 것뿐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선을 그었다.
“네가 잘해서 돈을 빌려준 거지
절대 널 불쌍히 여겨서 빌려준 건 아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 한쪽을 세게 쳤다.
위로처럼 들리면서도,
평가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사람을 꼿꼿하게 세워주는 말 같았다.
동정이 아니라는 것.
불쌍해서가 아니라는 것.
그건 단순히 기분 좋은 말이 아니라
내가 해온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값으로 보였다는 뜻이었다.
그분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7억 중에 5억은 그냥 어른으로서
네가 그런 상황에서 방향을 잃을까 봐
조금의 숙제를 내준 거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근데 너는 반은 맞췄어.”
“그걸로 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올라왔다.
나는 그동안 돈을 갚았다는
사실이 이 대화의 핵심일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 돈을 다 갚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다른 걸 받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인정.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쪽의 확인.
그리고 그 순간 그분이 나를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