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하는 칼
“그래서 넌, 5억을 벌면서
무슨 생각으로 돈을 벌었냐.”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3년 동안 수도 없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었다.
운전하면서도 했고,
새벽에 잠이 깨면 더 또렷해졌고,
일하다가 손이 멈출 때마다
불쑥 올라오던 질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돈을 벌고 있지.’
그걸 정면에서 들으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그분을 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말씀 못 드린 이야기부터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처음엔 가볍게 웃으셨다.
“그래, 얘기해 봐.”
그 말투는 편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숨이 조금 차올랐다.
입술을 한 번 적시고 말을 이었다.
“저번에 말씀드렸지만…
아버지가 제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고요.
형도… 제가 열네 살 때 떠났습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아까까지 가볍게 웃고 있던 그분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웃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는데,
입꼬리에 걸쳐 있던 힘이 조용히 풀리는 게 보였다.
그제야 나도 이 얘기를
정말 시작하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2005년
내가 열네 살 되던 해
우리 형이 세상을 떠났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형 하나만 떠난 게 아니었다.
불과 1~2주 사이에
사촌형이 먼저 떠났고,
고모가 떠났고,
그리고 형까지 갔다.
집안에 말 그대로 줄초상이 났다.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제대로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짧은 시간 안에 한 집안의
숨통이 여러 번 끊긴 거였다.
우리 집 웃어른들은 큰아버지부터
시작해 여덟 남매였다.
그 집안에서 남자 손자가 셋이었다.
사촌형, 우리 형, 그리고 나.
그런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둘이 사라졌다.
남은 건 나 하나였다.
그 사실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그때 정확히 몰랐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고,
부르는 말이 달라졌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렇게 준비도 없이 장손이 되어 있었다.
누가 설명해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받아들일 시간도 없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내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형 장례식장.
그 장면은 지금도 너무 선명해서
가끔은 냄새까지 기억나는 것 같다.
향 냄새.
국화 냄새.
빈소 특유의 차갑고 눅눅한 공기.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
누군가 낮게 나누는 말소리,
그 모든 게
어린 내 귀엔 너무 또렷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형이 죽었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형은 어릴 때부터
나를 정말 많이 괴롭혔다.
진짜 많이.
사소한 걸로 놀리고, 건드리고,
장난이 지나칠 때도 많았고,
어린 나한테는 형이 늘 귀찮고 버거운 존재였다.
그래서 너무 어렸던 내 마음은,
지금 생각하면 참 잔인한 방향으로 먼저 움직였다.
‘이제 안 건드리겠네.’
지금 생각하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감정인데,
그때는 그게 먼저였다.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그 사람이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는 게 먼저 와닿았다.
너무 미숙하고, 너무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상실의 무게를 알기 전에
해방감 비슷한 것을 먼저 느껴버릴 만큼,
나는 너무 어렸고 덜 자라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정말 무너졌다.
엄마는… 정말 곡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냥 눈물을 훔치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꺾일 만큼 울었고,
목이 찢어질 듯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가 우는 걸 봤지만
그날의 엄마 울음은 그때보다 더 컸다.
더 처절했고,
더 망가져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도 다가가지를 못했다.
감히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그냥 멍하니 빈소 한쪽에 앉아 있었다.
손은 무릎 위에 올려두고,
등은 굳은 것처럼 펴진 채로,
눈은 어딘가를 보고 있는데
정작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한참 그러고 있는데
엄마가 잠깐 밖으로 나갔다.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그리고 나는 빈소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그때의 조용함이 기억난다.
사람은 있는데 이상하게
공기가 비어 있는 느낌.
형 사진은 앞에 있고,
향은 타고 있고,
나는 그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게 진짜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던 시간.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때 친척분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통곡을 하며 무너졌다.
“어떻게 대희가 상주냐…”
“어떻게 대희가 장손이 되냐…”
“대진이, 대규는 어디 갔냐… 다 돌려내라…”
그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사람들은 우느라 목이 잠겨 있었고,
울면서도 말을 뱉었고,
그 말은 애도의 말이면서도
분노 같기도 했고,
원망 같기도 했고,
억울함 그 자체 같기도 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계속 이어진 죽음들 때문에
집안 어른들도 사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빈소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누군가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누군가는 벽을 붙들고 울었고,
누군가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나는 그 한가운데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겁이 났다.
정말 잠깐,
아주 어린 짐승처럼 겁이 났다.
이 많은 어른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모습을,
내가 처음 본 날이었다.
조문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나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며 똑같은 말을 했다.
“이제 대희는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이제 네가 엄마 지켜줘야 한다.”
“너밖에 없다.”
“이제 네가 집안 기둥이다.”
처음 두세 번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계속 반복되니까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어깨 위에 돌 하나씩 얹히는 느낌이었다.
열네 살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지켜본 적도 없고,
누군가의 기둥이 되어본 적도 없고,
나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나이였다.
그런데 어른들은 울면서
이제 네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무서웠다.
진짜로 무서웠다.
‘지킨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벌써 누군가의 마지막 책임처럼
그 말이 내 몸 안에 박혀버렸다.
그렇게 형이 떠났는데도
처음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뒤로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말 앞에서 멍해졌다.
그 말의 뜻도 잘 모르면서
그 말만 계속 가슴속에 남았다.
그 당시의 나는 지금 돌아보면
돈이라는 걸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집안 형편은 계속 기울어 있었고,
늘 뭔가 부족했고, 눈치 봐야 하는 게 있었고,
참아야 하는 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불행의 이유가
결국 돈 때문이라고
아주 어린 방식으로 믿었던 것 같다.
엄마를 지킨다는 것도
그저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리는 것.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 그림이 없었다.
몸은 커지고 있었는데
마음은 그 지점에서 멈춰 있었다.
마음이 자라야 할 자리에서
엉뚱하게 비틀려 자랐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내가 부모가 떠안긴 빚을 정확히 알게 된 날.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가끔 부모님이 싸우는 날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늘 모른 척했다.
방 안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알아서 해결하겠지’ 하고 자버렸다.
그날도 비슷했다.
잠결에 들리는 싸움 소리.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이상하게 소리의 농도가 달랐다.
평소처럼 짜증 섞인 말다툼이 아니라
진짜 무언가가 끝장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잠에서 깨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 식탁 위엔 빈 소주병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엄마와 새아버지는 마주 앉아 있었는데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의 눈빛은 화가 난 정도가 아니었다.
서로를 증오하는 사람들 같았다.
눈빛만으로도 거실 공기가 갈라질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처음이었다.
말리기 시작했고, 중재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다
알게 됐다.
내가 엄마에게 맡겨놨던 재산도 다 사라졌고,
오히려 큰 빚이 생겼고,
그걸 내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멍해진다고 하던데 딱 그랬다.
그러다가 한순간 열이 확 올랐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새아버지에게 대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다.
이제 내가 힘으로도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어릴 땐 무섭기만 하던 존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밀어붙이면
밀리는 사람이라는 걸 그날 처음 체감했다.
그 사실이
더 비참했다.
더 화가 났다.
새아버지도 그게 분하셨는지
내 생일이라고 받아온 케이크를 내 쪽으로 던졌다.
그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케이크 상자가 날아왔다.
눈앞을 가로지르듯 들어와
툭하고 부딪히며 찌그러졌다.
뚜껑이 비틀리며 열리고 크림이 벽에 먼저 튀었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 순간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냉장고로 걸어갔다.
냉장고를 부수기 시작했다.
먼저 손이 나갔다.
근데 아픈 느낌은 없었다.
발이 올라갔다.
열려 있던 냉장고 문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문이 튕겨 나오고
안에 있던 것들이 같이 쏟아졌다.
김치통이 기울고, 국물이 바닥에 퍼지고,
그릇들이 연달아 떨어지며 소리가 엉켰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손은 떨리고,
가슴은 들썩이고,
근데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눈앞에 있는 걸 부숴야 할 것 같았다.
멈추면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욕도 했다.
목이 다 쉬도록 소리쳤다.
“갚는 건 내가 갚아야 하는데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부모랍시고 나한테 훈계냐.”
“내가 이 집구석에 다시는 들어오나 봐라.”
내 행동에 놀라 겁에 질린 어머니 표정도 봤다.
그 표정이 지금 생각하면 제일 아프다.
나는 새벽에 그대로 집을 나왔다.
너무 급하게 나와서 지갑도 없었다.
차 안에 굴러다니던 만 원짜리 두 장.
그게 전부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너무 분해서 오히려 눈물도 안 나왔다.
차에 앉아 계속 담배를 피웠다.
원래 차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진 않았는데
그날은 정말 쉼 없이 피웠다.
창문을 조금 내리고,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연기를 뱉고, 다시 물고.
그냥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대구 동화사였다.
새벽 6시쯤이었나, 7시쯤이었나.
해가 완전히 뜨진 않았고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무작정 걸었다.
그날의 나는 마음이 너무 엉망이라
절에 들어서면서도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도
그날은 그런 기본적인 예의조차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걷고 있었다.
그러다 절 앞쪽에서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 몇 분이 서 있는 걸 봤다.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그렇게 말끔한 정장을 입고
서로 모른 척 서 있는 듯한 분위기.
처음엔
‘이 새벽에 저 사람들은 왜 저기 있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는 아직 화가 다 가라앉지 않은 상태라
그저 한 번 힐끗 보고 지나쳤다.
그러다 다시 봤다.
다시 보니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용모가 단정하고,
옷차림도 깔끔하고,
어딘가의 대표쯤 되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표정이 밝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걸 짊어진 사람들 같았다.
정장을 입었고,
사회적으로는 충분히 자리 잡은 것 같은데
그 표정만큼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땐 정확히 몰랐다.
그들이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런데 그냥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분노를 조금 가라앉힌 채
그 사람들을 한참 봤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장면이 내 안에 남아 있었던 이유가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일단 무작정 돈을 벌려고만 했던 것 같다.
관계에 대한 명확한 정리도 못 내린 채,
왜 내가 이 돈을 갚아야 하는지도 납득하지 못한 채,
그냥 벌었다.
버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분노는 있었고,
억울함도 있었고,
원망도 있었는데
그걸 어디 둘 데가 없으니까
결국 몸을 더 굴리는 쪽으로 갔다.
여기까지 얘기까지가 건축주를 만나기 전에
상황이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그래. 계속 얘기해.”
나는 그분 앞에서 조금 더 솔직해졌다.
그땐 분명 그랬다.
건축주에게 5억을 받고,
그 7억 중 5억이라는 돈의 의미가
도대체 뭘까 그걸 계속 붙잡고 살았다.
돈은 분명 숫자인데
이상하게 그 숫자 안에
압박이 들어 있었고,
책임이 들어 있었고,
숨이 막히는 느낌까지 같이 들어 있었다.
대표님이 현장을 넘겨주시고
선택도, 책임도 점점 온전히
내 몫이 되어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머리가 아니라 어딘가 더 깊은 데서
계속 질문이 올라왔다.
‘이 돈은 도대체 뭐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동화사.
그 새벽. 그 정장 입은 사람들.
예전에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돈 많은 사람들도 걱정 많네.’
딱 그 정도였다.
조금은 어린 시선이었다.
조금은 가벼운 해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내가 직접 누군가의 돈을 받고,
현장을 책임지고,
내 판단 하나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서보니까
그제야 보였다.
그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회사의 대표일 수도 있고,
어느 가정의 가장일 수도 있고,
직원들 월급을 책임지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
속으로는 말 못 할 고민을 몇 겹이나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내가 동화사에서 본 건 부자의 근심이 아니라,
책임을 가진 사람의 얼굴이었다는 걸.
처지는 다를지 몰라도
무게는 비슷했을 거라고.
그들도 결국 책임을 짊어진 채 자기 자리를 버티고 있었던 거라고.
그 생각이 들자 그날 부모님에게 했던 내 행동이
조금씩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던졌던 말들,
밀어붙이던 눈빛,
끝까지 밀어붙이던 그 감정.
분명 내가 잘못한 건 아니었다.
부모가 잘못한 것도 맞았고,
상황도 분명 나빴다.
근데 그 위에
처음으로 이 생각이 얹혔다.
‘사람이 나쁜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거지
그 사람이 나를 해치려고 한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은 분노가 먼저였는데
그날은 이해가 먼저 올라왔다.
그리고 어느 날
정확하게 이 문장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그 문장은 생각이 아니라
거의 질문처럼 박혔다.
근데 그때까지도 나는 아직 답을 낼 수 없었다.
분노가 아직 너무 뜨거웠으니까.
그래서 결론을 바꿨다.
돈을 벌어야겠다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켜야겠다고.
그렇게 방향을 바꾸니까 다시 질문이 생겼다.
‘그럼 어떻게 지킬 건데.’
그리고 결국 돌아온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돈이었다.
근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됐다.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망가진 이유가 돈이라고 믿었으니까
나는 그 원인을 향해 달려갔다.
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면 뭔가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
그전까지의 나는
타지에서 일하고 주말마다 내려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엄마가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도 잘 먹지 않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 같았고,
우리 집이 제일 불행한 집 같았고,
나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굴었다.
괜히 더 생색을 냈다.
피곤하다고 티를 냈고,
내가 혼자 다 감당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어쩌면 속으로는 부모가
나를 좀 더 안쓰럽게 봐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책임감이 아니라
어린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마음을 조금 바꿔보기로 하고 나서는
일부러라도 달리 행동하려 했다.
아침마다 힘들어도 조금 일찍 일어나
밥상 앞에 앉으려고 했다.
엄마가 차려준 그 한 끼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들어 있는지 생각하려고 했다.
많이 못 먹어도 한 숟갈이라도 뜨려고 노력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조금씩 관계를 다시 붙였다.
그러다 내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엄마가 TV 보면서
“영화 이거 재밌다던데.” 툭 던졌다.
별말 아닌 한마디였는데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생각해 보니 엄마랑 아버지가 함께
영화를 본 게 3~4년은 된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망설임 없이 말했다.
“영화 보러 가자.”
정말 별말 아닌 한마디였는데
부모님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따라나섰다.
그 반응이 지금 생각하면 좀 아프다.
그 정도로
사건 이후로,
나는 집에서 무뚝뚝한 아들이었던 거다.
그렇게 셋이 영화를 보고 나왔다.
엄마가 먼저 말했다.
“집에 가서 저녁 해 먹자.”
그 말 안에는 돈을 아끼려는 마음도,
괜히 나한테 부담 주기 싫은 마음도,
평생 몸에 밴 습관도 함께 들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됐어, 밖에서 먹어”
그날 우리는 3~4년 만에 외식을 했다.
작은 삼겹살집이었다.
시끌벅적하고, 고기 굽는 냄새가 진하게 나고,
소주병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주 평범한 고깃집.
밖에서는 멀쩡한 척하면서도
집에서는 늘 말수가 적던 아들이
부모님 앞에서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집게를 들고 괜히 바쁘게 움직이면서
어색함을 감추려고 했다.
소주도 한 잔 따라 드리고,
나도 한 잔 마시고,
별거 아닌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웃음이 나왔다.
짧게 터지는 웃음이 아니라 조금 길게 이어지는 웃음.
그걸 들으면서 알았다.
아, 긴장이 풀렸구나.
오랜만에 진짜 가족 같았다.
그러다 내가 어릴 적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30년 가까이 치킨집을 하고 계신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반장이 되면 햄버거를 돌리는 게
그냥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분위기가 있었다.
나도 반장이 됐다.
그런데 나는 엄마한테 그 얘기를 못 했다.
우리 형편에 그 햄버거 몇십 개가 부담이라는 걸
어린 나이에도 알았으니까.
말하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반장 됐다는 얘기도
엄마한테 제대로 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학교에 치킨을 들고 왔다.
스무 마리쯤.
기름 냄새가 복도까지 퍼졌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나는 그 앞에 서있었다.
그날 나는 완전 스타였다.
진짜 세상을 다 가진 느낌.
“그때 엄마 진짜 든든했어.”
“나 그때 진짜 햄버거가 아니라
치킨이라 더 자랑스러웠다.”
“엄마 치킨집 해서 치킨 맨날 먹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대희가 햄버거 진짜 좋아하는데…
엄마가 일 년에 한 번도 잘 못 사줘서 미안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한 감정이 확 올라왔다.
목구멍 어디쯤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울 수가 없었다.
그냥 꾹 눌러 담았다.
삼켰다.
모른 척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나는 현장에 일찍 나가야 해서 새벽 3시쯤 일어났다.
엄마랑 아버지가 먼저 일어나 있었다.
부엌 불이 켜져 있었고,
미역국 냄새가 났다.
새벽 공기 속에서 그 미역국 냄새가 이상하게 진했다.
부모님은 조용히 밥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빨리 나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나가려는데 아버지가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초를 꽂고 불을 붙여줬다.
그 순간,
예전에 나한테 케이크를 던졌던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아버지가 이번엔 새벽부터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에 초를 켜주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진짜 이를 악물고 눌러 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초를 불고 출근했다.
그날 현장은
전편에 사진으로 올렸던 idif 프로젝트였다.
아무래도 난도가 있는 공사라 공정이 더뎠다.
뒷공정을 맞추기 위해 가구 설치 작업이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내 생일은 1월 초순이라
친구들이 매년 내 생일 겸 신년회를 한다.
그날도 펜션을 잡아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이 밀리다 보니
공사는 자정을 넘겼고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았다.
원래 생일에 큰 의미 두지 안 는 편이라
평소 같으면
‘에이,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겼을 거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진짜 설명 안 되는 서러움.
‘내가 왜 생일날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 생각이 가슴 깊은 데서
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문득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왜 나는 잘해준 기억만 붙잡고 사는데
엄마는 못 해준 기억만 붙잡고 살까.
왜 항상 미안해하면서 살까.
그 마음을 만든 데 내가 없었을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죄스러움이 확 올라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건넸던 케이크.
그 어색하고 서툴고
미안함이 섞여 있던 방식.
그걸 떠올리는 순간
버티고 있던 게 무너졌다.
나는 그날 새벽 2시쯤
건물 비상구 계단으로 갔다.
사람 없는 곳.
찬 콘크리트 계단.
형광등은 희게 켜져 있고
공기는 싸늘했고
문틈으로 현장 소리가 멀리 들렸다.
그 계단에 앉아서
진짜 서럽게 울었다.
참았던 게 한꺼번에 터졌다.
소리 죽여 울다가 나중엔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체감으로는 한 시간쯤 울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래 울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답을 하나 냈다.
그 질문.
그 질문에 대한 답.
나는 품기로 했다.
서로에게 적어도 악의는 없었다는 것.
감정이 모나게 엇나간 적은 있어도
본질적으로 나를 해치기 위해 그런 건 아니었다는 것.
상황은 나빴지만 사람이
나빴던 건 아니라는 확신.
실수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깨달음.
그래서 나는 그 칼을 품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 나는 돈으로 뒤덮인
감정 때문에 돈을 번 게 아니라
빚이 아닌 다른 걸 찾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나는 그분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처음 5억 빌려주셨을 때는…”
잠깐 웃었다.
“솔직히 기분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그분이 가만히 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