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을 만나다.
“가족도 자존심도 둘 다 지키고 싶은 거잖아.”
“그 자존심이 뭐라고.”
가끔 그런 순간이 온다.
내가 아무리 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이게 맞는 방향인지 모르겠고,
계속 가면 되는 건지조차 확신이 안 설 때.
그럴 때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냥 더 버티거나, 아니면 포기하거나.
근데 나는 그 사이에 하나가 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사람을 만나러 갔다.
내가 빚을 갚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람.
내 인생에서 귀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사람.
근데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 사람이 내가 집을 지어드렸던 ‘건축주’라는 게.
보통은 돈을 주고받는 관계로 끝나는 게
이 바닥의 룰인데,
그 사람은 거기서 한 발 더 들어왔다.
그래서 아직도
그분의 속내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2020년 8월, 파주.
그때의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정말 밤낮이 없었다.
일이 아니라 버티는 시간이었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버텨내는 쪽에 가까웠다.
2년 동안 1억을 갚았다.
남들 기준이면 잘한 거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냥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남은 건 7억.
이자는 계속 붙고 있었고,
갚아도 줄어든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때의 빚은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얼마를 더 살아야 끝나는지
가늠이 안 되는 시간.
그 시기에 만난 사람이 파주의 건축주였다.
직원 100명이 넘는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였고,
나는 그분의 집을 짓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본채 공사였다.
그냥 맡은 현장 중 하나였다.
그런데 공사가 진행될수록
이상하게 현장에 더 자주 신경이 쓰였다.
작은 디테일 하나라도
대충 넘기고 싶지 않았고, 괜히 한 번 더 확인하게 됐다.
그게 티가 났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그분이 현장에 나오면
나를 한 번씩 더 보게 됐고, 질문도 나한테 직접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별채 공사 이야기가 나왔다.
“이건 니가 해봐라.”
그 말이 가볍게 던진 말처럼 들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나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한 시점이.
8월 말, 별채공사중이였다
태풍 ‘마이삭’이 올라온다는 예보가 떴다.
현장은 세 군데.
파주, 용인, 세종.
골조가 한창 올라간 상태.
이때 태풍을 맞으면
그냥 공정이 밀리는 수준이 아니라
그대로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하루 안에 세 현장을 다 보양해야 했다.
새벽 5시.
친구랑 같이 파주부터 들어갔다.
천막을 치고, 밧줄을 묶고,
지지대를 세우고,
손은 이미 아침부터 젖어 있었고
머릿속은 다음 현장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때 마당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었는데 건축주였다.
팔짱 끼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너 임마 거기서 뭐 하냐?”
처음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투.
근데 이상하게 그 사람은 그 말투가 자연스러웠다.
“태풍 온다고 해서 보양 중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하는 이유가 뭐냐?”
“용인, 세종도 가야 해서 좀 서둘렀습니다.”
잠깐 보더니 짧게 한마디 했다.
“그래. 조심해 임마.”
그 말이 이상하게 가볍지 않았다.
파주를 끝내고 용인, 세종까지 다 돌았다.
하루가 이동으로 다 지나갔다.
근데 마지막 현장을 나올 때
이상하게 머릿속에 파주가 남았다.
“아… 이거 아닌데.”
처음이라 보양이 어설펐고,
다른 현장을 돌면서 점점 감이 잡혔다.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뉴스를 켰다.
태풍은 남해안으로 빠진다는 예보.
“파주는 안 맞겠네.”
근데 이럴 때가 제일 불안하다.
이상하게 그런 직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
결국 다시 올라갔다.
밤 11시, 파주.
비는 이미 내리고 있었고
현장은 낮과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시 보양을 시작했다.
친구랑 둘이서 비를 맞으면서 작업을 하는데
이상하게 둘 다 텐션이 올라 있었다.
“아따 시원하이 좋네.”
“밤공기 직이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계속 웃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정신 나간 상태였다.
그때
“너 임마 밤에 뭔 그리 호들갑이냐.”
뒤를 보니 건축주였다.
퇴근하다가 우리 소리 듣고 들어온 거였다.
“너 아까 세종 간다 하지 않았냐?”
“보양이 마음에 걸려서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분이 웃었다.
그냥 웃은 게 아니라 뭔가 확인했다는 듯이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다 하고 들어와서 밥 먹고 가.”
“옷이 다 젖어서…”
“사내새끼들이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에 그냥 들어갔다.
그날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 친구를 먼저 보냈다.
“너는 가라. 나는 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문이 닫히는 순간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비 맞으면서
웃고 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제야 긴장이 올라왔다.
이 사람은 서울대 철학과 출신
그 사실 하나로 이미 벽이 하나 생겨 있었다.
근데 지금은 그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현장 직원이고 이 사람은 대표다.
직원 100명이 넘는 회사의 대표.
근데 그 사람이 나를 따로 남겨
단둘이 얘기하자고 한다.
이건 정상적인 그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긴장됐다.
“내가 너 왜 남으라는 지 아냐?”
“…모르겠습니다.”
“너 임마 빚 있다며?”
그 순간 공기가 툭 끊겼다.
이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 대출 전화 때문에 몇 번씩
밖으로 나가던 걸 다 보고 있었던 거다.
나는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지금은… 맨 정신으로는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술 한잔하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냉장고를 열었다.
소주를 하나 꺼내더니 탁, 하고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는 잔을 찾는가 싶더니 맥주잔을 집었다.
그게 좀 이상했다. 보통은 소주잔을 쓰는데,
그분은 아무렇지 않게
맥주잔에 소주를 절반이 아니라 거의 가득 채웠다.
그걸 내 앞으로 밀어놨다.
“마셔.”
그 순간 잠깐 멈칫했다.
이걸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원래 이런 자리에서는 어른이 따라주면
받아서 천천히 마시는 건지,
아니면 한 번에 마셔야 하는 건지.
나는 그런 걸 배워본 적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의 술은 처음이었다.
잠깐 눈치를 봤다.
근데 이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을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잔을 들었다.
그리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대로 들이켰다.
“야 임마.”
그분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그렇게 마시는 놈은 또 처음 본다.”
그 순간 이 사람 앞에서는
어설프게 꾸미는 게 의미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나.
아버지는 내가 여섯 살 때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고,
형은 내가 열네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 두 번의 일이 우리 집의 시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어머니는 살아남기 위해 재혼을 선택했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 가족이 됐다.
솔직히 말하면 완벽한 가족은 아니었다.
근데 버티는 데에는 충분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놓는다는 선택이 어떤 건지 알고 있었다.
단순히 관계를 끊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버텨온 이유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지고 있던 빚이었다.
그건 부모의 실수로 생긴 빚이었다.
악의는 없었다.
정말 없었다.
근데 그게 더 힘들었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일 아닌 척 넘길 수도 없는 상태.
그래서 나는 그걸 그냥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버릴 수 없어서가 아니라,
버리고 나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그때 우리 사장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족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은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사람이 어떻게 가족을 버리냐고 생각했다.
근데 그 말은 단순히 관계를 끊으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누군가 때문에 내 인생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면,
그 책임까지 끝까지 끌어안고 가는 게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걸 그때의 나는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래서 말했다.
“저는 그거 못 합니다.”
“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떠안고 있습니다.”
그 말은 되게 당당하게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선택지가 없어서 한 말이었다.
나는 이미 그걸 선택한 상태였고,
이제 와서 다른 선택을 할 용기도 없었다.
그분이 잠깐 나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빚이 얼마냐?”
“7억 남았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그거 빌려줄게.”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마움보다 먼저 올라온 건 거부감이었다.
너무 쉽게 말해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내가 2년 동안 버텨서 갚은 1억이
순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분이 바로 받아쳤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지금 버티고 있는 거지 해결하고 있는 거 아니잖아.”
말이 거칠었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너희 사장님 말이 맞다.”
“가족도 못 버리고 자존심도 못 버리고.”
“둘 다 들고 가려고 하면 둘 다 망가진다.”
그 말이 정확하게 찔렸다.
나는 가족을 지키겠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건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있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버티는 방식’이었고, 그게 내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넌 지금”
“가족도 지키고 싶고 자존심도 지키고 싶은 거잖아.”
“그 자존심이 뭐라고.”
그 말이 기분 나빴다.
근데 동시에 그게 내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조건을 물었다.
“그럼… 제가 뭘 해야 합니까?”
그때 그분의 표정이 처음으로 조금 바뀌었다.
시험 문제를 낸 사람처럼.
“7억 중에 5억 빌려줄게.”
“근데 왜 5억인지”
“다 갚고 나서 이유를 알아내와.”
이건 도움이 아니라
조건이었고, 거래가 아니라 시험이었다.
“이자는요?”
“필요 없어.”
“내 돈 빌려간 놈들 중에 제대로 갚은 놈 없다.”
그 말이 자존심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이자는 제가 내겠습니다.”
그분이 웃었다.
“그래. 그럼 내기하자.”
이 순간부터 이건 돈 얘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힘 싸움이 됐다.
“내가 이기면 연 0.5%”
“네가 이기면 이자 없다.”
“종목은 내가 정한다.”
그때 옆에 있던 바둑판이 보였다.
그분이 천천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