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의 겨울은 나를 오래 세워두었다
그날 나는 일을 잘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나를 증명하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12월부터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프로젝트는 2023년 7월까지 거슬러
설계 초기 단계부터 나는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다.
내 역할은
이 건물의 목구조 디렉팅.
설계사가 그려온 이 조감도와 공간이
실제로 중목구조로 구현 가능한지,
구조적으로 무리가 없는지,
그리고 그 의도가 현장에서
망가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
구조설계사와 함께 검토하고 조율하는 역할이었다.
쉽게 말하면
이 건물이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예쁜 그림으로 끝날지,
아니면 실제로 서 있을 수 있는 건물이 될지를
처음부터 같이 고민하는 일이었다.
관공서 설계공모에 당선된
설계사무소들이 종종 연락을 해온다.
탄소중립, 제로에너지, 공공건축.
이런 흐름 속에서
목구조, 특히 중목구조는
더 이상 낯선 선택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소하다.
도면은 그릴 수 있어도
그 도면이 현장에서
어떻게 세워지고, 어디서 문제가 터지고,
어떤 디테일이 사람을 괴롭히는지까지
몸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결국 현장을 아는 사람을 찾게 된다.
도면 바깥의 현실을 아는 사람.
멋있게 그려진 한 줄 뒤에 숨어 있는
실제 공정과 리스크를 읽을 수 있는 사람.
비슬 책방은
내가 설계 초기부터 관여해 왔기에
이 건물에 대해 가장 오래,
가장 깊게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대표님과
함께 시공계약까지 이어냈고,
현장은 12월에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그 현장의 현장대리인이었다.
비슬산의 1월은
단순히 춥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 안쪽까지
서늘해지는 종류의 추위.
아침마다 고체연료를 피워
몸을 겨우 움직여야 했다.
작업자들의 손은 늘 굳어 있었고
당연히 공정은 더디게 갔다.
겨울 현장은 원래 계획표처럼 안 흘러간다.
특히 산자락은 더더욱.
그러다 어느 날,
방수 작업을 하던 날이었다.
그날도 미친 듯이 추웠다.
추운 날에는 방수가 잘 잡히지 않는다.
접착이든 도막이든 기온이
받쳐주지 않으면 재료도 말을 안 듣는다.
해가 올라온 뒤에야 겨우 작업을 시작했고
그날 나는 추위에 굳은 사람들을 독려하면서
어떻게든 방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퇴근했다.
퇴근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 내일은 작업 못 하겠네.” 그 정도
그런데 조금 지나자
다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연스럽게 방수 테스트가 되겠는데?'
그리고 곧바로
그보다 더 불길한 생각이 따라온다.
'설마… 새진 않겠지?'
나는 여태 까지 했던 공사들에서
방수 문제를 일으킨 적이 거의 없었기에
그래서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믿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별일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어차피 내일은 눈도 온다.
작업도 못 할 테니
그냥 조금 늦잠이나 자자.
새벽에 잠깐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가려다 창문 밖을 보니
함박눈이었다.
단순히 눈이 오는 게 아니라
세상이 통째로 덮인 느낌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는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올라온다.
몸은 분명 피곤한데
다시 자야 하는데
눈이 쉽게 감기질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옷을 껴입고
비슬산으로 향했다.
새벽 5시였다.
가는 길은 이미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비슬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은
차를 올리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
급하게 트럭 적재함에 있던
체인을 꺼내 바퀴에 감았다.
그 순간부터 기분이 더 세해졌다.
경험상 이런 예감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컨테이너에서 라이트를 꺼내 들고
전날 방수 작업을 했던
하단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렸다.
어디선가
똑.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진짜 욕이 바로 튀어나왔다.
아, X발…
집에 갈 때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이상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지금 눈이 이렇게 와 있는 상태에서
눈을 치우고 작업을 한다 해도
녹은 물 때문에 방수층을
다시 잡기 쉽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안 하자니 마감층이 계속 젖는다.
그러면 그 뒤로 생길
금전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그 몇 초 사이에
머릿속이 엄청 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힘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되든 안 되든 오늘 해야 했다.
그렇게 눈삽을 들고
진입로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침 6시 반쯤,
작업자분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빨리 현장으로 와달라고.
그런데 반응은 시큰둥했다.
자기 일 아니란 듯한 말투.
상황의 급박함이 잘 안 전해지는 그 특유의 거리감.
솔직히 쌍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일단 해결해야 했다.
다른 업체에도 급하게 연락했다.
현장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 사이 계속 혼자 눈을 치우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7시쯤 자연휴양림 관리소장님이 올라오셨다.
“오늘 입산통제입니다.
입구부터 아무도 못 올라옵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지금 올라와 있잖아요.
이건 등산이 아니라 현장 업무인데요.”
평소 가까이 지내던 분이라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도 해봤다.
하지만 그분도 그분의 일을 하고 계셨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럼 저는 어떡합니까?”
그분이 말했다.
“지금은 못 내려갑니다.
빙판이라 위험해서 내려가기도 힘들어요.”
그 말을 듣는데 진짜 머리가 아득해졌다.
아, 이거 돌아버리겠네.
어떻게 해야 하지.
걸어서라도 내려갈까.
아니면 남아서 내가 할까.
그 순간
이상하게도 답은 금방 나왔다.
내가 작업자들 방수 공정을
더 꼼꼼히 챙겼으면
이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럼 결국 이건 내 책임이다.
내가 내 할 일을 다 못한 거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때는 그 생각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당연했다.
눈을 치우자마자 방수층에
쌓인 눈과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바로 다시 방수 작업을 시작했다.
장갑 낀 손은 젖어들기 시작했고
손은 점점 얼어붙었다.
손끝 감각이 무뎌졌다.
손이 내 손 같지 않았다.
식은땀이 나고
옷에 붙은 눈은 녹아서 오히려 체온을 더 빼앗아 갔다.
몸은 점점 굳어가는데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빨리 해야 한다.
오늘 무조건 끝내야 한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오후 5시쯤 됐을까.
겨울 해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떨어졌다.
어둠이 밀려오는 속도가 잔인했다.
그때 관리소장님이 다시 오셨다.
따뜻한 캔커피와 컵라면 하나를 내밀며
쉬엄쉬엄 하면서 하라고 하셨다.
그제야 내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쩐지 더 춥고 어쩐지 기운이 없더라.
그걸 느낄 정신도 없이
계속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캔커피를 거의 들이붓듯 마셨다.
컵라면에 물을 부어놓고
잠깐 다른 걸 하다가 그걸 까먹었다.
20분쯤 지난 뒤
국물이 다 졸아버린 식은 컵라면을 허겁지겁 먹었다.
맛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끼고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새벽 2시쯤 됐을까.
갑자기 또 눈이 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는 순간
진짜 속에서 욕이 터졌다.
아 X발, 제발…
이제는 마른 수건도 없었다.
닦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안에 입고 있던 내복을 벗어
그걸로 덜 마른 곳의
눈을 닦아내며 방수를 계속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미친 짓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미친 짓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해야 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아침 7시가 됐다.
내복까지 벗어던지고
꼬박 24시간이 넘도록 밖에 있었더니
몸이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들오들 떨리는데
이게 추워서 떠는 건지 몸이 한계라서
떠는 건지도 분간이 안 갔다.
그때 다시 관리소장님이 오셔서
관리소 직원용 방한복을 챙겨주셨다.
나는 그걸 받아 입고 잠깐
소장님이 챙겨주신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이튿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가 됐다.
몸은 이미 너덜너덜했고
정신도 반쯤 나가 있었다.
그런데 저녁에 또 눈 예보가 잡혀 있었다.
이쯤 되니 발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내려가야 하나, 남아야 하나,
또 무슨 일이 터질까.
그때 관리소장님이
오토캠핑장에 카라반 내어줄 테니
거기서 쉬고 있으라고 하셨다.
몸을 좀 녹이려고 들어갔다가도
조금만 비나 눈이 섞여 떨어지면
다시 밖으로 나가 방수층을 쳐다봤다.
물이 새나.
안 새나.
정말 괜찮은가.
한참을 서서 지켜보다가
다시 들어와 잠깐 눈을 붙이고
또 깨서 나가 보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물이 안 샜다.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안도감이라는 게
이렇게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제야 카라반 안에서
잠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아침 9시쯤이었나.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입산통제가 풀렸나 싶어 나가 봤더니
대표님이 와 계셨다.
달성군 공무원, 작업자들
설계사사무소 소장님까지
한 여덟 명쯤 현장에 와 있었다.
그때 내 몰골은 정말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은 퀭하고 옷은 엉망이고
사람 꼴이 아니었을 테니까.
나는 괜히 쭈뼛쭈뼛
얼굴을 좀 가린 채 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대표님께서 대뜸 버럭 화를 내셨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뿌듯해할 줄 알았냐?”
순간 멍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 것 같았다.
그건 화를 내는 말이면서도 사실은 걱정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업자들에게 해야
할 말을 대신 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들었다.
그날의 나는 분명 무모했다.
혼자 오기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데 익숙한 사람이 하는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때의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그게 내가 나 자신에게
세운 어떤 기준 같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그런 기준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다.
일에서도, 사람 관계에서도, 사랑에서도.
나는 늘 어딘가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그래서 조금 더 열심히 했고,
조금 더 버텼고,
조금 더 책임지려고 했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나가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보다 조금 더 버티고
어쩌면 굳이 내가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들까지
내 몫처럼 끌어안았다.
그게 성실함이라고 믿었고
그게 책임감이라고 믿었고
그게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라고도 믿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니라,
치열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조금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늘 스스로에게 그렇게 요구했다.
조금 더 버텨야 한다.
조금 더 잘해야 한다.
조금 더 책임져야 한다.
마치 그래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
그래야만 내가 나를 용납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었다.
회사도,
현장도,
세상도 아니었다.
그건 어쩌면
내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나만의 기준이었다.
나를 움직이게도 했고
동시에 나를 너무 자주 몰아붙이기도 했던 기준.
비슬산의 그 새벽,
눈을 치우고 젖은 방수층을 닦아내고
내복까지 벗어가며 버티던 그 장면은
어쩌면 단순히
공사 현장의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어떻게든 끝을 보려는 사람.
그리고 끝내 해내고 나서도
스스로를 칭찬하기보다
“애초에 내가 더 잘 챙겼어야 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게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맞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방식이 나를 너무 자주
추운 데 오래 세워두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생각한다.
책임지는 삶과
나를 몰아붙이는 삶은 같은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버티는 것과 잘 사는 것도
같은 뜻은 아닐지 모른다고.
그 겨울 비슬산에서
결국 방수는 잡혔고 물은 새지 않았다.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내 안에 조금 오래 남은 것은
“해냈다”는 뿌듯함보다도
왜 나는 늘 이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렸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2025년 1월의 나는
분명히 추운 산속에서
한 건물의 물길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때 물만 막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내 기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내가 생각하는
‘괜찮은 사람’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겨울은 단순히 추웠던 겨울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떤 기준으로 몰아붙이며 살아왔는지를
처음으로 똑바로 보게 된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