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댛. 이제는, 어른 대희가 됐네.
2025년 3월
친구가 말했다.
“애기 댛. 이제는… 어른 대희 됐네.”
친구들은 나를 항상 그렇게 불렀다.
애기 댛.
아마 이유는 두 가지였을 거다.
하나는,
나는 내가 믿는 사람 앞에서는 조금 풀린다.
쓸데없는 말이 늘어나고,
괜히 더 장난을 치고, 애교도 부리고
가끔은 별것 아닌 걸로 투정도 부린다.
평소의 나랑은 조금 다른 모습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내가 마음을 줬다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애기 대희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마 진짜 이유는
이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18년.
스물일곱.
나는 처음으로
‘아득하다’는 감각을 몸으로 느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다.
몇백, 많게는 몇천까지.
그 나이의 친구들도
다 사회초년생이었다.
월급을 받아도 통장에 남는 게
얼마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한 명씩, 한 명씩
나에게 돈을 내줬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돈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믿음이었고,
걱정이었고,
말없이 내민 손이었다.
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그때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자존심이 아니라 겁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가 진짜 무너질 것 같았다.
어느 날,
친구들 사이에 얘기가 돌았다.
“대희 요즘 뭐냐.”
결국 나는 불려 나갔다.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
거의 청문회 같은 자리였다.
한 명씩 묻고, 나는 한 명씩 답했다.
처음에는 버텼다.
괜찮은 척,
늘 하던 대로,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근데 어느 순간부터 말이 안 이어졌다.
그냥... 터졌다.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그날은 친구들이 처음으로
내가 무너지는 걸 본 날이었다.
나중에 친구들이 그랬다.
“너 그때 울고 있는데
눈이 좀 이상했어.
독기가 가득한 표정이었어.”
그 말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울고 있었는데 독기가 있었다는 말.
지금 생각하면
아마 그때의 나는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버티려고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날 부탁했다.
위로하지 말고
평소처럼 대해달라고.
그게 나를 살리는 거라고.
친구들은 진짜 그렇게 해줬다.
“대희 오늘은 빚 0.001% 갚았겠네.”
“이거 대희 빚으로 먹는 거니까 더 먹어라.”
“소주 말고 맥주 마셔, 덜 취하게.”
웃기지.
근데 나는 그게 좋았다.
불쌍하게 보는 게 아니라
같이 웃어주는 거.
내 치부를 덮어주는 게 아니라
내 치부까지 포함해서
그냥 나를 대해주는 것.
그게 그때의 나한테는
이상할 만큼 큰 위로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 단 한 번 울고
‘애기 댛’이 됐다.
내빚은 약 8억
내 실수는 아니였지만
내가 억울하게 짊어져야했던 금액.
10년 상환.
매달 이자만 260만 원.
그때 내 월급이 300 조금 넘던 시절이었다.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늘 모자랐다.
돈을 벌어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에는 막막해서 도망쳤다.
불법 도박으로.
5천만 원을 한 번에 날렸다.
그날 진짜 정신이 들었다.
“여기서 더 가면 진짜 끝이다.”
그 말이 누가 해준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온 말이라 더 무서웠다.
그날 이후로 방법을 바꿨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짧게 밀었다.
삭발에 가깝게.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얼굴을 보면서 조금 정신이 들었다.
이제는 도망치는 쪽이 아니라
버티는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먼 현장이 걸리면 숙박비가
아까워 트럭 뒤에 천막을 쳤다.
짐칸에 합판을 깔고
그 위에 이불 하나 깔고
그렇게 잤다.
그게 그때 내 방이었다.
비 오는 날이 제일 힘들었다.
천막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처음엔 그냥 빗소리처럼 들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크게 들렸다.
결국 새더라.
눈을 뜨면
이불이 아니라 바닥부터 젖어 있었다.
등이 서늘하고,
옷이 축축하고,
몸은 이미 한번 깼는데
다시 눈을 감아야 했다.
그래도 그냥 잤다.
피곤하면 사람은 그냥 잔다.
그렇게 몇 번 자다가 경찰이 와서
말을 건 적이 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잠깐… 자고 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잠깐 멈칫했다.
그때는 몰랐다.
왜 그 말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졌는지.
지금 생각하면 초라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퇴근하고 나면 바로 대리운전을 나갔다.
콜 잡히면 차 몰고, 끝나면 다시 콜 잡고.
몸은 이미 현장에 두고 왔는데
나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낮에 일하던
현장의 건축주를 태운 적이 있다.
낮에는
“이 디테일은 이렇게 가야 합니다”
이러고 얘기하던 사람이었는데,
밤에는 내가 태워주는 손님이었다.
아는 척은 안 했다.
그게 더 편했다.
그날 대리 끝나고 현금으로 받은
돈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그리고 계산기를 켰다.
이 돈으로
이자가 몇 분 버티는지.
그때의 나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얼마를 벌었는지가 아니라
몇 분을 더 버텼는지의 문제였던 시절이었다.
배달도 했다.
헬멧 쓰고 현장 끝나고 바로 뛰었다.
한 번은 내가 일하던
현장에 일하시던 분 숙소에
배달을 간 적도 있다.
“어? 소장님?”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칫했다가 그냥 말했다.
“여기 배달이요.”
그 한마디 하고 돌아서는데
민망함이 먼저였는지, 서러움이 먼저였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현장 점심시간,
다들 밥 먹으러 갈 때
나는 혼자 남아서 배달 앱을 켰다.
먹으려고가 아니라 일을 잡으려고.
배가 고픈 것보다 통장이
비어 있는 게 더 무서웠다.
쉬는 날이면 인력시장에 나갔다.
아침 일찍 가서 줄 서 있다가
하루 일 받아서 일하고.
그때는 쉬는 날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하루라도 멈추면 내가 쌓아 올린 게
바로 주저앉을 것 같았다.
점심값 아끼려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 묶음으로
조금 싸게 파는 걸 사서 먹었다.
그때는 배고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돈 쓰는 게 무서웠다.
천 원, 이천 원도
그냥 돈이 아니었다.
지금 나가는 돈,
다음 이자에서 빠지는 돈,
내일의 불안을 조금 더
키우는 돈처럼 느껴졌다.
핸드폰 알람도 이상하게 바뀌었다.
아침 알람이 아니라
이자 빠져나가는 날 알람.
그날만 되면 통장을 확인했다.
“아직 버티고 있네.”
그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빠져나가는 날이
내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 같았다.
대리운전
배달
인력시장.
그렇게 하루를 쪼개서 살았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일을 했다.
굳이 다 꺼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냥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정말 빚을 갚으면서 돈이 되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했던 거 같다.
버티면서 불안장애도 겪었다.
그전까지 나는 진짜로 불안장애라는 게
의지가 약한 사람이 겪는 건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이 있었다.
정말 이유가 없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가빠지고,
잘 자다가도 심장이 먼저 깨어나고,
아무 일 없는데 자꾸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그 감각은 설명할 수 없어서 더 무서웠다.
어떤 날은 자기 전에 깡소주를 마셨다.
잠이라도 자보려고.
좀 조용해져 보려고.
그래도 진정이 안 되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그만하라고, 제발 그만하라고
혼자 소리친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강했던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고 악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2~3년 은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밥을 잘 못 먹어서인지,
신경을 너무 써서인지
10에서 많게는 15kg까지 빠져있었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서도 많이 물었다.
무슨 일 있냐고.
나는 그냥
“요즘 좀 바빠서”라고 넘겼다.
이 이야기들은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조금은
부끄러워서.
그리고 내가 너무
미련해 보일 것 같아서.
7년.
그렇게 버텼다.
정말 긴 시간이었고, 또 지나고 나니
이상하게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버티는 시간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안에 있을 때는 끝이 안 보이고,
지나고 나면 한 덩어리로 남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빚이 끝났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상하게 아무 느낌이 없었다.
울 줄 알았다.
펑펑 울 줄 알았다.
근데 안 울어졌다.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허탈했고, 어이가 없었고,
조금은 비어 있는 느낌도 있었다.
너무 오래 끌고 온 짐이라
막상 내려놓으니까
어깨가 가벼워진 게 아니라
어깨가 허전했다.
친구들이 물었다.
“너 그 빚을 어떻게 갚았냐.”
나는 말했다.
“내가 좀 잘 나가 잖냐.”
애써 말을 아꼈다.
말해도 내 감정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안 겪어보면 모른다.
자존심 내려놓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평소의 나를 접어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어떤 건지.
친구에게 담배를 하나 달라고 했다.
“야, 담배 하나 줘봐.”
친구들이 잠깐 의아한 눈으로 나를 봤다.
“너 담배 끊었잖아?”
나는 그냥 웃으면서 말했다.
“불이나 붙여봐.”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고
꽤나 시시껄렁하게
연기를 한 번 뱉었다.
잠깐 조용해졌다가,
친구가 말했다.
“애기 댛. 이제는… 어른 대희 됐네.”
그리고 우린 전부 다
깔깔 웃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나는 그동안 잘 산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버틴 거였다.
버틴다는 건 그때는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빚을 다 갚은 날
집에 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 진짜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된 건가.
아직도 그 질문에
선뜻 대답은 못 하겠다.
여전히 부족한 것도 많고,
여전히 흔들릴 때도 있다.
근데 하나는 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해도,
초라한 순간을 몇 번이나 지나와도,
도망쳤던 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다시 버티는 쪽을 선택하는 것.
어쩌면 어른은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의 나는
아주 대단한 어른은 아니었어도,
적어도 예전의 나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