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3월.

2025년을 돌아보며

by 서대희

2025년에는 13월이 없다.


그런데 나는 그해를 한 번 더 살아보기로 했다.

지나간 시간을 그냥 두기에는, 조금 아까웠다.




이 글은

2025년을 마무리하며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기록이다.


한동안 이 글을 꺼낼까 말까 고민했다.

그냥 두는 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 같았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마음 같았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브런치에 올릴까 말까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글을 꺼내기로 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그 시작은 내가 지나온 시간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의 일기를 조금 다듬어 이렇게 옮겨본다.




2025년 12월 말,

현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늘 기계 소리와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이 거짓말처럼 멈춰 있었다.


망치 소리도,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도 없이 바람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나는 그 한가운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시간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연말이 되면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한 해를 정리한다.


웃고, 떠들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흘려보낸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12월 중순,

긴 프로젝트 하나가 끝났고 다음 일정까지 잠시 틈이 생겼다.

그때 사장님이 말했다.


“ 2025년 남은 2주는 일 생각하지 말고 쉬어.”


여행을 가도 좋고,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말없이 봉투 하나를 건네주셨다.


두툼한 봉투였다.

그 안에는 2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올해 고생했다. 잠깐 좀 쉬다 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봉투를 한 번 보고, 다시 사장님을 한 번 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돈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숫자였고, 나를 붙잡은 건 그 말이었다.


누군가가 내 시간을 그렇게 말해준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쉬어도 된다”는 말이 이상하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쉬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쉬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쉬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인지 나는 휴가도 잘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남들은 미리 계획을 세워 여행을 떠날 때,
나는 늘 현장에 남아 있는 쪽이었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장님은 오히려 나를 더 챙겼다.

“너는 좀 가라.” 이 말은 거의 매년 반복되었고,


결국 나는 여름휴가를 반쯤은 강제로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떠난 휴가에서도 나는 완전히 쉬지 못했다.


가끔은 현장 생각을 하고 있었고,
가끔은 괜히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쉬어도 된다”는 말은

나에게 익숙한 문장이 아니었다.


멈추는 순간, 누군가에게 뒤처지는 게 아니라

그냥 나 자신에게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현장에 서 있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고,
손에 일이 없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나에게 휴식이 아니라 견디기 어려운 정적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주어진 이 ‘쉼’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낯설었다.

시간은 남아 있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결국 어디 가지도 못한 채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아무 계획도 없이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2025년의 장면들이.

현장에서의 시간들,
정신없이 흘러가던 하루들,
버티듯 지나왔던 순간들,
누군가와 나눴던 말들,
그리고 그때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감정들까지.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것부터, 떠오르는 것부터,
순서도 없이.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도

시간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을 그냥 지나간 일로 두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그해를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특별한 이야기부터가 아니라 그냥 기억나는 순간들부터.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
그 사이를 채우고 있던 크고 작은 일들,

그때는 그냥 지나쳤지만
지금에서야 조금씩 의미가 남는 순간들까지.




사실
내 브런치 서랍에는

이미 수십 개의 글감이 쌓여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적어 두었던 문장들,
언젠가는 써보겠다고 미뤄 두었던 이야기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글들을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막 지나온 시간에 대해 먼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2026년 3월.

아직은 2025년이 완전히 멀어지지 않은 시점이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이 기억들도 흐릿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 글을 꺼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2025년을 돌아보며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날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노트북에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지나온 시간을 다시 따라가듯이.

2025년을 다시 살아보며
나는 그때 어떤 감정으로 살고 있었는지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시간은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저 나를 이해해 보려는 시간에 가까웠다.

이건 기록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작은 저항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나간 시간을 처음으로 끝까지 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1월부터 다시 시작된다.

월, 목, 토 연재